-
사람 만나는 게 일이다 보니 식사나 술자리가 남들보다 많은 편입니다. 친구도 제법 많아 하루는 일로, 하루는 친구로 이사람 저사람 만나게 되지요. 그러는 사이 맞는 바지는 줄어들고 정장 입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조금만 힘 주면 터질 것 같은 와이셔츠의 단추들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그랬던 제가 최근에는 살 빠졌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전성기(?)보다 8㎏ 정도는 뺐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도 있었지만, 다이어트를 도와준 건 사실 '거리두기'였습니다. 서울시 출입을 지난해 6월부터 했는데, 공교롭게도 코로
BBS 취재수첩
최선호 기자
2021.02.23 13:39
-
‘수습기자’ 딱지를 떼기도 전인 지난 2017년 말, 나눔의 집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정신없이 현장 취재를 마친 제게 소장님은 점심 공양을 권하셨고, 그렇게 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시는 생활관으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국수 한 사발을 먹고 계단을 내려가던 길, 1층 거실에 멍하니 앉아 계시던 한 할머니께서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또 놀러 와요.”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깊었던 목소리. 형식적인 듯 형식적이지 않은, 할머니의 초대에 저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 한 마디 속에 내재된 깊은 슬픔과 외
BBS 취재수첩
조윤정 기자
2021.02.20 13:09
-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 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을 하고 산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든다. 거짓말을 못 하게 돼 일상이 제대로 꼬여버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가 '웃픈(웃기면서 슬픈)'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거짓말은 대부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악의 없는 소소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남을 속이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BBS 취재수첩
류기완 기자
2021.02.16 16:49
-
십여년 전, 가수 '프라이머리'의 '입장정리'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던 때가 있었다. 좋은 친구에서 이제 연인이 되고 싶다는 절절한 심정을 담은 랩 곡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다이나믹듀오가 피쳐링한 곡의 클라이막스 부분이다. 연모의 마음을 숨겨왔던 화자는 "나 이제 네게 그 얘기를 하고 싶어"라며 뜸을 들이다 "네 주변에서 중심으로 가고 싶어"라는 고백을 비트에 실어 조곤조곤 쏟아낸다. 청춘을 방황과 좌절, 눈물의 대서사시라고 말한 소설가가 있었던가. 나도 아주 어렵게 결혼했지만, 누군가의 마음자리 한 가운데를 차지한다는 건 쉬
BBS 취재수첩
박준상 기자
2021.02.15 14:05
-
이른바 '카 셰어링(Car Sharing : 차량 공유)'을 표방하는 단기 렌터카 업체 '쏘카'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얼마 전 발생한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때문이다.30대 용의자가 채팅을 통해 만난 13살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을 저질렀는데, 범행 당시 쏘카의 차량을 이용했다. 그런데 경찰이 용의자 신상을 확인하기 위해 쏘카 측에 정보제공을 요청했지만, 쏘카 측이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는 것이다.논란이 발생하자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했다. "내부 매뉴얼에 따라 수사에 협조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
BBS 취재수첩
유상석 기자
2021.02.12 14:24
-
기자로 일하면서 늘 자문하고 점검하는 것은 미래이다. 그중에서도 10년 후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중간점검까지도 가능한 시간이다. 설날에 나갈 보도특집을 준비하면서 머릿속 화두는 조계종 재정공영 논의였다. 이는 지난해 상월선원 자비순례 양평 대중공사에서 공론화가 됐다. 재정공영 논의는 1994년 종단개혁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94년 종단개혁으로 이뤄진 현재의 종단체제는 교구본사 중심제이다. 재정공영은 일정부분 중앙 집중을 의미하며, 시대변화에 따른 체제 변화의 필요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BBS 취재수첩
홍진호 기자
2021.02.05 15:44
-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해 이맘때, 새학기 등교개학은 사상 초유의 원격수업으로 전면 대체됐습니다.이제 1년여가 흘러 다시 새학기를 한달여 앞둔 지금. 정부는 '지난해처럼 개학연기는 없다'며 대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대략적인 것은 유아와 초등 저학년 등 제한된 학생들의 선택적 등교방안 등의 내용으로 내일(28일) '2021 신학기 학사운영방안'이 발표될 모양입니다.그러나 오늘(27일) 현재 코로나 상황을 보면, "모든학교, 모든학생의 안전한 등교수업은 쉽지 않을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지난 1년여를 돌아볼까요?지난해초 신천
BBS 취재수첩
박성용 기자
2021.01.27 14:41
-
"모레는 명동성당 앞으로 가봐"영하 13도의 한기가 몸을 스미던 지난 주,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조계종 원각사의 무료 급식 현장을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에서 노인들과 노숙인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점심밥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원래는 무료 급식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도시락으로 대체됐습니다. 촬영 카메라를 본 어르신은 모레 명동성당 앞에 가면 빵을 나눠주는 것도 찍을 수 있다고 가보라고 채근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밥이나 빵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지 다 외우고
BBS 취재수첩
최선호 기자
2021.01.27 14:34
-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차분했다. 거대 기업을 상대로 수년째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투사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하나씩 되짚을 때는 애써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의 기억 속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최근 일처럼 너무나 생생했고, 수년 전 날짜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머리로 수천 번을 되뇌었고, 마음으로 얼마나 긴 세월을 붙잡고 있었으면 이럴까라는 생각에 순간 경외심이 일기도 했다. 십여 년간 사랑하는 아내의 병간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지난해 아
BBS 취재수첩
류기완 기자
2021.01.25 14:05
-
지난 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강창일 주일대사의 발걸음이 조계종 총무원으로 향했습니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가장 먼저 제기된 화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봉환' 문제였습니다. 작심한 듯 수첩까지 꺼내든 강 대사의 입에선 유해 봉환을 위한 해결 과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핵심은, 현재 여러 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봉환 사업을 통합해야 한다는 겁니다. 강 대사는 특히 불교계가 일본 측과 봉환 문제를 논의하는 '단 하나'의 창구가 될 때, 정부 지원도 가능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BBS 취재수첩
김연교 기자
2021.01.20 15:52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어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습니다. 사실 그간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를 예상하는 여론이 꽤 많았습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 중 하나로 고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삼성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동안 이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재판장이 최후 진술 기회를 부여했지만, 이 부회장은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습니다. 변호인단 역시 “판결문을 본 후 재
BBS 취재수첩
조윤정 기자
2021.01.19 22:32
-
새해가 왔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인류와 함께 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한숨 또한 깊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부동산과 주식 등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산의 상승보다는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이동하는 시대에 자율 주행차 등 머지않은 시기,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김종회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시대의 변환기, 화합의 가치가 우선이다’라는 제목으로 모 일간지에 실린 본인의 글
BBS 취재수첩
홍진호 기자
2021.01.15 11:06
-
여권에서 ‘사면론’이 처음 나온 건 지난해 5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퇴임 기자회견장이었다. 누군가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 국정운영 방향을 물었다. 문 의장은 '통합'에 방점을 두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입법부의 장이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건 금물이다. 퇴임 시점에서 나온 본인의 지론이었을 것이다. 마침 문 의장 옆자리엔 유인태 당시 국회사무총장이 자리했었다. ‘아! 이것이 고참 선배들이 말하던 봉숭아 학당인가?’
BBS 취재수첩
박준상 기자
2021.01.09 10:30
-
상점을 지날 때마다 따뜻한 호빵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운 계절이 됐다.호빵이 태어난 건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삼립식품 창업자 고(故) 허창성 회장이 개발해 1971년 모습을 드러낸 것. 찐빵이야 그 전에도 이미 국민 간식으로 자리잡아 있었지만 가정에서도 쪄먹을 수 있는 호빵의 등장은 간식계의 혁명이 돼 버렸다. '뜨거워서 호호 불어먹는다', '온 가족이 호호 웃으며 함께 먹는다'는 취지로 호빵이란 이름을 붙였다던가. 어려웠던 그 시절, 호빵은 서민들에게 따뜻한 행복을 제공했다.허창성 회장의 '빵 장사'는 둘째 아들인 허영인
BBS 취재수첩
유상석 기자
2021.01.06 19:42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손흥민 선수의 소속 구단 '토트넘 핫스퍼'가 리그 초반 선두자리를 내주고, 중위권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조세 무리뉴 감독의 선수 기용에 말들이 많습니다.최근 관련 공식이 회자되고 있습니다."선발로 뛰는 '손흥민 선수'를 교체하면 그 경기는 반드시 놓친다."가만보니, 매 경기 상대수비 3명 정도는 거뜬히 끌고 다니던 손흥민 선수를 빼면, 상대 공격숫자가 자연스럽게 늘게 되고, 그 지점에 토트넘에게 실점의 빌미가 생겨 낭패를 본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손흥민 선수와 토트넘'을 보면서, 연말 '교육부'에도
BBS 취재수첩
박성용 기자
2020.12.29 14:28
-
저는 비(非)흡연자입니다. 평생 담배를 손에 쥐어본 적도, 쥐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하얀 막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때면, 불쾌함에 반사적으로 코를 찡그리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흡연과 금연의 차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법원이 지난 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을 때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흡연을 시작하는 것은 물론, 흡연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 라는 판
BBS 취재수첩
조윤정 기자
2020.12.28 19:29
-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사과문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에 대해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과문에는 어떤 말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표현은 피해야 하는지 나열한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할 때 쓰는 표현, ‘본의 아니게’, ‘그럴 뜻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신중하게’는 하지말아야 할 말입니다. 대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잘못했고, 누구에게 피해를 끼쳤으며, 얼마나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야 합니다. 이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물의를 일으킨 공직자나 연예인들이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 꼭 참
BBS 취재수첩
박세라 기자
2020.12.23 14:20
-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가 모두 서초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이 법원과 검찰을 들락날락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난해부터 이미 서초동에선 정치가 시작됐다. 법무부와 검찰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이미 정치 그 자체다.경제는 또 어떤가. 유명 기업들의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이 서초동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다. 가끔은 이들의 자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해당 기업의 법무나 대관 담당자들은 "회장님을 회사보다 서초동에서 더 자주 뵙는다"고 너스레를 떤다.그런데, 이런 우리나라
BBS 취재수첩
유상석 기자
2020.12.22 19:32
-
지난 12일,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1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출소 몇 달 전부터 그가 사회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세상은 술렁거렸다. 이 때부터였다. 일부 '유튜버'들 사이에선 조두순이 출소하면 직접 찾아가 보복을 하겠다고 예고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들이 올린 영상에는 자극적으로 표출한 분노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적개심만이 가득했다. "출소하면 내가 죽이러 가겠다", "직접 만나면 몇 대를 때려줘야 하나"라는 제목을 단 영상으로 우리가 갖는 사회적 공분을 부추겨 조회수 확보에만 혈안이 됐을 뿐, 왜 우리가 조두순에게 분노해야
BBS 취재수첩
류기완 기자
2020.12.22 19:13
-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뒤, 국제사회 화두에 오른 국내법이 있습니다.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입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 살포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 이 법을 문제 삼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 섭니다. 대북 인권 단체가 북한에 정보나 자금을 전달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는 건데요. 미 의회 산하 인권위원회는 다음 달 관련 청문회를 예고했고
BBS 취재수첩
김연교 기자
2020.12.22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