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뒤, 국제사회 화두에 오른 국내법이 있습니다.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입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 살포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 이 법을 문제 삼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 섭니다. 대북 인권 단체가 북한에 정보나 자금을 전달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는 건데요. 미 의회 산하 인권위원회는 다음 달 관련 청문회를 예고했고, 영국과 일본에서도 비난과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대북전단 살포가 이뤄지는 곳, 접경 지역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8일, 비무장지대 서부전선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한 ‘통일촌’ 주민 일동이 대북전단 금지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내용을 보면, 대북전단으로 인해 접경 지역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대북단체의 무책임한 대북전단지 살포로 인해 북한에서 전단지 살포장소에 “조준 사격을 실시한다”하여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으며, 민방공 대피소가 위치한 지하벙커에서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생활하고, 주 소득원인 영동활동을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중략…) 통일대교 통제로 생활필수품도 구입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등교를 못하고 지하대피소에서 스스로 공부하며 생활했다.”

 대북전단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엔, 강화·웅진·김포·고양·파주·연천·철원 지역 주민들이 합동으로 환영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적극 지지하고 환영하는 바이다. (북한의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접경지역 주민들은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보듯 남북한이 우발적 충돌을 벌일 경우 대북전단을 살포한 접경지역이 1차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중략…) 탈북민 단체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으며, 생업을 뒤로 한 채 밤낮으로 기습적인살포행위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었다.”

  우리 정부의 입장 역시 접경 지역 주민들의 호소와 맞닿아있습니다.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정부는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나 국가 안보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 해, 법률로 명확히 규정되는 형태로 일정한 제한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피해 증언과 함께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북전단 금지법’이 이토록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법안이 통과된 ‘타이밍’과 그간 정부가 보인 행보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북전단 문제가 남북 합의사항에 오른 건 지난 2018년 4.27 판문점선언 때입니다. 당시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고,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지를 명시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 이후에도 끊이지 않던 대북전단 살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정부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을 맹비난하는 담화를 내면서부터입니다. 우선 담화 4시간 만에 브리핑을 열어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단을 살포한 2개 탈북민 단체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고, 법인설립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돌연 등록 법인 109개를 대상으로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보겠다”며 사무 검사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대북전단 금지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겁니다. 

 ‘대북전단 금지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김여정 담화 이후 정부가 보여 온 행보가 쌓아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이 아닌, 북한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일 겁니다. 정부가 이제 와서 아무리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들, 모양새는 이미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 부랴부랴 대응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정부가 판문점 선언 직후부터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안을 개정했다면, 어쩌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 있지 않았을까요. 힘없이 묻혀버린, 누군가의 ‘표현의 자유’에 의해 매일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호소가, 더욱 안타까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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