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非)흡연자입니다. 평생 담배를 손에 쥐어본 적도, 쥐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하얀 막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때면, 불쾌함에 반사적으로 코를 찡그리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흡연과 금연의 차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법원이 지난 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을 때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흡연을 시작하는 것은 물론, 흡연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 라는 판결문 속 문구가, 기존의 제 생각과 궤를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담배소송 기획을 시작하면서, 고정관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담배소송 사례에 대한 취재를 맡았지만 담배 자체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난생 처음 ‘담배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담배연기에 4천 가지 종류가 넘는 화학물질이 담겨있다는 것을. 그 중에서도 발암물질은 60여 종에 이르며 여기에 중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십 가지 첨가물까지 사용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추상적인 인식이 단번에 깨진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단순한 인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넘쳐난다는 겁니다. 이미 담배의 늪에 빠져버린 수많은 흡연자들의 첫 흡연도 어쩌면 담배에 대한 안일함에서 시작됐을지 모릅니다. 또 청소년과 같은 잠재적 흡연자들 역시 유해성에 대한 무지(無知) 속에서 앞으로 담배에 손을 뻗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아직 담배 회사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지난 1999년 시작된 흡연 피해자들의 국내 첫 소송은 15년 만인 2014년 결국 ‘원고 패소’로 끝이 났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1차전에서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나서 대형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합의 끝에 담배 회사가 약 2천억 달러의 비용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더 나아가, 미 법원은 담배회사들이 소비자들을 조직적으로 기망했다며 ‘징벌 배상’까지 부과했습니다. 캐나다 퀘백주에서도 역시 흡연 피해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전혀 다른 사법적 판단이 나온 겁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항소로, 법원에선 담배회사와 공단 사이의 2차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제조와 판매 과정에 있어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2014년 대법원 판결 논리를 내세우며 방어전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공단 측은, 이번 판결이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물이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거액의 배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에 대한 보다 더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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