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사회복지원각)는 노인들과 노숙인들을 위해 매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원각사(사회복지원각)는 노인들과 노숙인들을 위해 매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모레는 명동성당 앞으로 가봐"

영하 13도의 한기가 몸을 스미던 지난 주,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조계종 원각사의 무료 급식 현장을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에서 노인들과 노숙인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점심밥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원래는 무료 급식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도시락으로 대체됐습니다. 

촬영 카메라를 본 어르신은 모레 명동성당 앞에 가면 빵을 나눠주는 것도 찍을 수 있다고 가보라고 채근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밥이나 빵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지 다 외우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등병 시절, 고참들이 시켜 식단표를 달달 외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곳까지 취재갈 일은 없었지만, 딱히 할말도 없어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야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 공중파 TV프로그램에 자신이 야구광(?)으로 소개된 적이 있답니다. 기자의 반응이 못 미더웠는지, 본인의 야구상식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응룡은 부산상고 출신, 누구도 부산상고, 어쩌고 저쩌고."

다행인지, 기자도 야구를 좋아해 몇 마디 대화는 더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여든셋이라고 했습니다. 나이 얘기가 나오니 이번에는 건강과 외모 자랑이 시작됐습니다. 자기한테 이 정도 추위는 별거 아니라네요. 도시락을 받으려 줄 서 있는 다른 분들 흉도 봤습니다. 돈 5천원만 주면 머리 깎을 수 있는데, 일부러 정돈을 안 하고 다닌다고. 굳이 모자를 벗어 이발해 깔끔한 본인 머리도 자랑했습니다. 자기는 다르다는 거지요. 그러다 다른 일정으로 자리를 떠야 해 인사를 나눴습니다. 

“정정하시네요, 어르신 건강하세요.”
“내가 말해줬지? 모레는 명동에 가봐”

갈 곳 없는 이웃들은 코로나19에 20년 만의 북극 한파까지 더해져 더 춥고, 외로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서울시와 불교계 등의 노력으로 밥 한끼 해결하고 매서운 칼바람도 잠시 피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진짜로 더 바라고 그리워하는 건 소소한 일상의 대화, 말 한마디 건낼 상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동성당 앞에 가면 본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거기서 또 야구 이야기를 하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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