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일하면서 늘 자문하고 점검하는 것은 미래이다. 그중에서도 10년 후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중간점검까지도 가능한 시간이다. 설날에 나갈 보도특집을 준비하면서 머릿속 화두는 조계종 재정공영 논의였다. 이는 지난해 상월선원 자비순례 양평 대중공사에서 공론화가 됐다. 재정공영 논의는 1994년 종단개혁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94년 종단개혁으로 이뤄진 현재의 종단체제는 교구본사 중심제이다. 재정공영은 일정부분 중앙 집중을 의미하며, 시대변화에 따른 체제 변화의 필요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사망자가 출생자 보다 많은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산중이 아니라 도심지에 종단의 역량을 집결해서 사찰을 짓고 포교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묻어난다.

오는 12일과 13일 방송되는 설날 보도특집 제작을 위해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스님과 흥천사 회주 금곡스님,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에게 차례로 전화를 드리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모두 흔쾌히 수락했지만 교구장급 이상의 스님들과 한 번의 통화로 날짜를 잡고 촬영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동국대 이사회 등 취재 틈틈이 문자 등으로 연락해 진우스님과 금곡스님은 직접, 덕문스님은 BBS 광주지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욕심 같아서는 94년 종단개혁을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체제를 여는데 크게 기여한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과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 등도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한정된 시간과 여건 속에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월선원 양평 대중공사 발제 당시 재정공영화에 방점을 찍었던 진우스님은 출가자와 신도 감소 등의 시대적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공영화가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덕문스님은 재정공영화가 현실적 어려움은 분명히 있지만, 이제는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덕문스님은 코로나19라는 시대적 변곡점이 가져온 양극화가 이미 한국불교 안에서도 가속화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덕문스님은 재정공영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각 사찰을 특성에 맞게 집중해서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흥천사 회주 금곡스님 또한 재정공영화가 승려노후복지 등을 위해서 필요한 측면이 크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금곡스님은 재정공영화 또는 94년 체제의 변화 보다 중요한 것은 종단이 부처님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21년 지금의 방법으로 사찰재정 감소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종이 94년 종단개혁 이후 교구본사중심제를 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권력 분산과 함께 종단의 규모가 너무 방대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조계종을 천태종과 진각종 처럼 중앙 집중으로 운영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런데 천태종과 진각종을 보면 중앙집중 체제의 변화와 함께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 엿보인다. 최근 취임한 진각종 통리원장 도진정사는 교구자치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동안 중앙에 집중 된 인력과 재정을 교화의 주체인 지방교구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종정중심제로 역시 중앙 집중의 천태종은 각 지역 도심 한복판에 종단 차원에서 큰 규모의 사찰을 지었다. 주목할 점은 불사에 재정을 집중화 했으나 인력은 철저하게 분산 했다는 것이다. 춘천 삼운사와 분당 대광사 등의 불사를 이끌었던 전 총무부장 월도스님은 현재 김해에서 다시 신도들과 함께 불사 중이다. 4년마다 있는 대대적인 정기주지인사에서 스님들은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고 인사가 결정되면 이에 따른다. 물론 한국불교의 장자종단이자 유무형의 가치를 크게 계승한 조계종과 다른 종단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계종이 재정공영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종단 전체는 힘들겠지만, 교구본사 차원에서라면 참고할 점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재정공영화 논의는 변화에 대한 상징일 뿐, 그 자체가 무조건 적인 해법이지도 않고 목표 또한 아닐 것이다. 또한 조계종은 4년 마다 총무원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설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재정결집을 시도해 왔다. 현재 원행스님 체제의 조계종 집행부가 추진하고 있는 백만원력결집불사 또한 그 일환이다. 꼭 필요한 불사이지만 중앙의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재정공영화가 된다면, 역대부터 지금까지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들이 정치적 역량으로 시도해온 불사를 시스템적으로 시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과 함께 총무원장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 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증가할 것이다. 권력분립이라는 94년 체제의 장점을 이을, 새 시대 새로운 변화는 재정공영이라는 화두로 어느새 종단내부에서 움트고 있다. 지금의 논의와 차기 집행부에서의 실천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불교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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