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가 모두 서초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이 법원과 검찰을 들락날락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난해부터 이미 서초동에선 정치가 시작됐다. 법무부와 검찰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이미 정치 그 자체다.

경제는 또 어떤가. 유명 기업들의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이 서초동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다. 가끔은 이들의 자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해당 기업의 법무나 대관 담당자들은 "회장님을 회사보다 서초동에서 더 자주 뵙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이제는 서초동에서 양재동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행정법원 때문이다.

2012년부터 지금의 양재동 청사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행정법원. 하지만 예전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자들의 입장에선 서초동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눈에 띌 만한 재판이 열리지도 않아서 큰 관심을 가질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반 시민들 중엔 행정법원이 양재동에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리라.

그러던 게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윤석열 검찰총장 측이 법무부의 처분에 불복해 벌써 두 번째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행정법원은 그 존재감을 새삼(!) 드러내고 있다.

행정법원으로 달려오는 건 윤 총장만은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내린 중징계는 부당하다"며 행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돌이켜보면 올해 9월, '금융당국의 임원 해임 권고 조치는 부당하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삼바 측 손을 들어줬다. 불법대출 의혹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직무정지 징계를 받았던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는 행정법원의 결정으로 대표직을 유지했다(구속되긴 했지만, 이는 나중의 일이다). 이렇게 보니, 공공기관이든 사기업이든 피징계자들이 행정법원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트랜드'처럼 돼버린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바꿔 말하면, 정부·당국과 회사가 그만큼 권위를 잃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법원 만능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법원 만능주의'를 온전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지나침을 잠재우는 방법은 특별한 게 아니다. "법원에 달려간다고 해결되는 건 없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수밖에.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논리와 명분일 것이다.

해임과 징계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손상하는 처분이다. 그렇기에 누구든 불복할 가능성은 있다. 권위로 찍어누를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법원 만능주의'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원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만반의 논리적 준비와 명분을 만들어 두는 수밖엔 없다.

법원으로 달려가는 순간, 해임과 징계 처분을 내린 공격과 방어권은 언제든 뒤바뀌 수 있다. 해임과 징계라는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 "방어 할 준비, 충분히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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