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어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습니다. 사실 그간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를 예상하는 여론이 꽤 많았습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 중 하나로 고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

삼성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동안 이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재판장이 최후 진술 기회를 부여했지만, 이 부회장은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습니다. 변호인단 역시 “판결문을 본 후 재상고 여부를 결정 하겠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서둘러 법정을 나섰습니다.

이번 파기환송심의 핵심 쟁점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였습니다. 이 위원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룹 내부 비리를 걸러내고 또 예방할 수 있느냐, 이 점을 평가해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재판부의 뜻이었습니다. 삼성은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앞세워 새로운 감시위원회를 출범했고, 이후 이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 방침을 없애고 경영권 승계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유리한 양형 조건으로 참작할 만큼,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과연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판결문을 들여다봤습니다.

“준법감시의 본질이 제재가 아닌 예방이며, 준법감시에 있어 해당 기업의 전력(前歷)을 분석하는 것은 향후 발생이 예상되는 법적 위험의 분석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필수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판결문 中」

재판부는 준법 감시제도의 본질이 ‘위법행위 예방’에 있다고 봤습니다. 또 미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의 행보는 재판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또는 ‘감시위 출범 전 사안에 대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와 대책 수립에 나서지 않은 점은 치명타였습니다. 또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 타워’에서 위법행위가 주로 발생했는데, 현 제도에는 이러한 성격의 조직에 대한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았던 점 역시 감시위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린 요소였습니다.

여기에, ‘미래’를 향한 삼성의 미흡한 준비 역시 준법감시위에 대한 재판부의 의구심을 더 키웠습니다. 재판부가 ‘임직원을 동원한 차명주식 보유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자, 삼성은 “현재 차명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자칫하면, ‘지금 당장 위험 요소가 없으니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현재 삼성그룹 내 감시 대상인 7개 계열사 외에 다른 회사에서도 위법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점, 이번 재판에서도 문제가 됐던 ‘허위 용역 계약’에 대한 관리 방안이 부족했던 점 등 또한 삼성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평가할 때, 새로운 삼성 준법감시제도는 비록 실효성 기준에 미흡한 점이 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법윤리경영의 출발점으로서 대한민국 기업 역사에서 하나의 큰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 - 파기환송심 재판부 발언 내용 中

이번 판결을 둘러싸고 여론은 극명히 엇갈립니다. 준법감시위에 대한 평가부터 양형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까지, 모두의 생각이 다른 상황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특검의 재판부 기피 신청과 국민들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에게 기회를 줬음에도 이를 삼성이 놓쳐버렸다는 것입니다. 총수의 구속은 큰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위를 향한 관심과 책임감이 줄어들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국내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 기업인 삼성이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는 재판부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때란 생각입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