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강창일 주일대사의 발걸음이 조계종 총무원으로 향했습니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가장 먼저 제기된 화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봉환' 문제였습니다. 작심한 듯 수첩까지 꺼내든 강 대사의 입에선 유해 봉환을 위한 해결 과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핵심은, 현재 여러 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봉환 사업을 통합해야 한다는 겁니다. 강 대사는 특히 불교계가 일본 측과 봉환 문제를 논의하는 '단 하나'의 창구가 될 때, 정부 지원도 가능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강 대사가 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봉환 사업의 주체로 '불교계'를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대부분이 일본 사찰에 방치돼 있다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동원돼 일본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은 8만 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만 3천 구 정도의 유해가 수습됐고, 아직 2천7백여 위가 일본 각 사찰에 흩어져 있습니다. 한일 불교계 간 협력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실제 지난 2017년에는 당시 대전 광수사 주지 무원 스님이 상임위원장으로서 이끌던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위원회'가 일본 도쿄 국평사와 협력해 유해 33구를 봉환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종단협 소속 관음종이 매해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42년 2월 3일 수몰된 조세이 해저 탄광에는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감독관 47명의 유해가 그대로 묻혀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회사의 은폐로 역사 속에 잊혀있던 사고는 1970년대 후반에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고, 지난 2016년 국내 단체로는 처음으로 종단협이 현지를 찾아 추모제에 동참했습니다. 이듬해부터는 관음종이 매년 희생자 위령재를 열고 있습니다. 관음종은 현재 조선인 유골 발굴과 국내 봉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의 무관심과 한일 관계 악화 속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강창일 대사가 원행 스님 예방 자리에서 밝힌 유해 봉환 관련 구상은 꽤 구체적입니다. 우선 부임하면,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일본 측 스님들과 접촉해 봉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불교계가 이끄는 한일 간 유해 봉환 관련 '유일한' 창구가 구축되면, 정부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강 대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할 때도 일본 측 의원들과 이 문제를 여러 번 논의했었다"면서 "일본에서 유골을 갖고 오게 된다면, 경색된 한일 관계가 풀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첩을 꺼내들고,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일본 측 대표는 누구냐, 한번 만나보겠다'며 적극적으로 묻는 강 대사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한일 관계를 풀어내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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