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임차인이다. 지난달 전세 계약을 연장했고 서울시의 신혼부부 프로그램을 적용받아 목돈을 빌릴 수 있었다. 2년 전과 다른 것은 역대급 기준금리와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으면서 1%대 초저금리를 적용받았단 것이다. 또 있다. 은행 직원은 “투기과열지구 내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금은 즉시 환수된다”는 고지를 전해줬다. 무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을 활용한 ‘갭투자’를 막기 위한 ‘6‧17 대책’의 효력이었다. 10년째 납입 중인 청약통장을 혹시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란 희망에 갭투자는 생각도 못 해봤다. 하지만, 22차례에 걸쳐 LTV‧DTI를 옥죄고 투기과열지구를 넓혀가면서도 ‘내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놀랐고, 셈에 능한 이들은 청약 욕심을 일찌감치 버리고 갭을 벌려 달아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된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발언을 국회 본회의장 참관석에 앉아 대형 전광판으로 보게 됐다. 처음엔 스크린에 물결이 이는 ‘우는 현상’이 나타난 줄 알았다. 덜덜 떨리는 왼쪽 팔목을 오른손으로 붙잡으면서도 차분하게 “이 법을 만든 분들, 그리고 축조심의 없이 이 프로세스를 가져간 더불어민주당은 우리의 전세 역사와 민생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하는 윤 의원의 발언엔 힘이 있었다. 윤 의원을 향해 “임차인처럼 위장했다”고 일갈한 민주당 박범계‧윤준병 의원이 도리어 ‘다주택자 논란’으로 링 위에서 사라지자, ‘임대차 3법’이 완성된 지난 4일 본회의장에선 무주택 경연대회가 열렸다. “보증금 3,000에 월세 70을 내는 진짜 임차인”이라는 신동근 의원, “서울 상경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만 살았다”는 장경태 의원,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은평의 빌라에 사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까지. 진짜 진보진영의 무주택자들이 앞다퉈 ‘임대차 3법’에 힘을 실었다. 

  여야 둘 다 임차인이라지만, ‘임대차 3법’이 ‘전세 종말’을 가져올 것이란 야당의 지적엔 소구력이 있다. 초저금리와 다주택자 규제로 전세 비중은 감소해 가는데 법 제정 이후, 임대인의 재산권과 임차인의 거주권이 충돌을 빚어내는 사례들까지 쏟아지고 있다. 물론, 여당의 주장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동안 전세 매물이 서울 주택의 56.5%에 이르는 ‘갭투자’ 를 부추겨 왔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수요를 차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쉬운 건 ‘나’의, 그러니까 여당 임차인도, 야당 임차인도 아닌 앞으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그냥 임차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삶이다. 어떤 집 주인이 지금의 보증금 금리만큼 월세를 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해줄까. '전세금 금리 보전'이라는 사회안전망이 내벗겨지는 동시에, 여권이 만지작거리는 전·월세 전환율을 손본다 해도 주거비 부담이 오르는 건 필연적이다. 나중에 부동산 가격이 잡히면 훨씬 득이 되지 않느냐? 이때부턴 끝없는 논쟁이다. 그리고 그 숙의를 되풀이할 때도 월세는 다달이 통장을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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