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21대 국회 불자의원모임 '정각회' 창립 법회 여기저기서 성토가 들렸다. 서울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A의원은 테이블에 함께 앉은 의원들을 향해 '불자 국회의원'의 고충을 한참 털어놨다. "우리 지역구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산이 없고 대형 교회들만 손에 꼽는데 말이야. 한번은 내가 '연꽃' 장식을 자동차에 달고 활동을 했더니 교회에서 난리가 난거야. 그래서 결국에 작은 염주를 매다는 걸로 바꿨지." 뒤늦게 법회를 찾아 정각회에 이름을 올린 경기도 지역 B의원도 이원욱 정각회장과 악수한 채 웃으며 말했다. "이제 목사님들한테 혼나는 일만 남았네!"

 

177석 거대 여당의 등장은 '정각회' 구성면에서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13명에 불과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각회 의원들이 21대에 26명으로 2배 늘어나면서 여야 구성의 전복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기존에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보수정당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오히려 13명이 됐다. 재밌는 일은 법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의 '자기소개' 시간에 벌어졌다. 어딘가 허술한 신앙고백이 줄줄이 이어졌던 것이다. 초코파이 때문에 군에서 수계를 받았다(이정문 의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소풍으로 항상 사찰을 다녔다(문진석 의원), 종립대 동국대를 졸업했다(이규민 의원). 평소 생각이 부처님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김종민 의원).

 

'찐불자(진짜 불자)'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팔공총림 동화사 신도회 부회장 출신의 미래통합당 조명희 의원은 "역시 민주당 의원님들은 전략과 전술에 강하신 것 같다"면서 뼈있는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오늘의 50%의 불심을 4년 뒤 100%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불자 며느리'를 보기 위해 아들의 선을 십수번 보게 한 '찐불자'다. 부모님이 '창녕 감로사'를 중창했고, 학창시절엔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받았던 채플 수업이 힘들어 밤새 악기를 배워 성가대 옆에 서서 '음악 수업'으로 활용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 밖에도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각각 지역구에 산재한 교구본사 사찰들을 소개하면서 든든한 뒷배를 꺼내보이며 일당백의 기세로 숫적 열세를 극복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국회 안에서 '불세'라는 종교 권력의 역접이 일어났던 현장이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들었지만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정각회 영입에 나섰던 C의원은 당내 불자는 많지만 '불자'라는 타이틀을 다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총선 참패 후 정체성 재정립에 나선 통합당의 핵심 기치는 '혁신'이다. 혁신은 묵은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미래통합당은 '반공'과 '근대화'로 대표되는 노회한 보수의 개념을 부수는 작업에 한창이다. 영남권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불세'의 지형도를 넘어서기 위한 미래통합당의 몸짓이 어쩌면 절반이 줄어든 정각회 명단 안에 담긴 게 아닐까. 

 

더불어민주당 소속 회원들이 늘어난 것도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 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 지역을 비롯해 산세가 없고 아파트가 가득 들이찬 서울 등 수도권의 종교인구 중 불자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열세하다. (서울시 종교인구 4백만 명 중 불교 102만, 기독교 228만 / 광주전북전남 종교인구 206만 중 불교 48만, 기독교 117만 - 출처 :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26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이같은 정치적 이해를 셈하기 보다, 본인의 마음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설령 '아니 불(不)자'라 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정각회'의 문의 두드렸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 틀림 없다. 

 

'불교'가 믿음으로 신앙하는 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수행하는 이들의 종교라는 특징은 여야 정각회원들이 한 데 어우러질 수 있는 큰 밑바탕이 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허술하지만 신실한 고백이 마음에 걸림 없이 여겨지는 이유다. "불법을 만나는 것은 거북이가 천 년 만에 바다 위로 목을 내어서 나무 판자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한다. 21대 국회 정각회가 국회라는 고해 위에서 잠시 기대 쉴 수 있는 '나무 판자'가 되기를 발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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