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두천 : 자존심 강한 두 천재들의 대결

흔히들 정치인의 종교를 '기천불교'라고 한다. 정관가의 오래된 관용어다. '기천불교'라고 해서 새벽에는 예불가고 아침에는 예배가고 저녁에는 미사를 본다는 건 아니다. 구태여 종교를 묻는 당신을 넉넉하게 이해한다는,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으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하는 정치인이기에 허용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개인이기에, 종교적 배경과 완전히 단절된 존재일 수 없다. 그래서 기천불교 안에서도 선후가 있고, 악센트가 있다.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 직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 김태년 원내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차담회는 '기천불교'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느낀 현장이었다. 운을 먼저 뗀 건 조계사가 있는 종로구를 지역구로 둔 이낙연 위원장이었다. 이 위원장은 총무원장을 지냈던 법장스님이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에게 종교를 물었던 당시 대화를 회고했다. "김윤규 사장이 기천불교라 하니, 스님은 '기불천'으로 개종을 권유 했습니다. 불교를 2등으로 올리신거죠."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연고전인가 고연전인가. 북미정상회담인가 미북정상회담인가. 기독교 신자인 이낙연 위원장이 기천불교에 순번을(기독교는 어떻게든 1등인) 부여하자, 독실한 불자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농을 받았다. "기천불이면 그게 맞는데, 기천불'교'면 앞에 '기천'은 '불교'를 수식하는 말인게 맞지" 앞에서 순번을 매기던 사람들을 뒤에서 단숨에 엎어치는 경지. 이 때 옆에서 껄껄 웃고있던 김태년 원내대표가 주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저도 주호영 원내대표가 알려줘서 이제 누가 종교를 물으면 기천불교라고 합니다." 김태년 원내대표의 종교 역시 기독교이다. 하지만 이 대답으로, 며칠 전, 청와대 오찬에서 '미남불'에 올리는 시줏돈을 대납해준 주 원내대표에게 진 빚을 톡톡히 갚았으리라.

공교롭게도 21대 국회의원 임기는 올해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시작됐다. 상황은 좋지 않다. 어느새 우리의 삶은 코로나19에 잠식돼 버렸고, 답답한 마스크를 언제 벗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서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고, 그래서 더 강력한 안전망과 위정자들의 리더쉽이 요구되고 있다. 청와대 부처님 앞에서 여야가 양손을 모아 올린 상생과 협치의 서원이, 21대 국회에 꽃 피울 수 있을까. 주호영 원내대표는 조계사를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마음은 동근(同根)이고, 너와 나가 다름없다는 정신을 새긴다면 상생과 협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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