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법정에 들어선 가수 조영남 씨. ‘그림 대작’ 논란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 씨가 법정 피고인 석에 앉았습니다. 대법원이 오늘 오후 2시 조 씨의 사건과 관련해 개최한 공개변론. 법정에는 미술계 전문가들과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대중적 관심을 실감케 했습니다. 권순일 대법관은 “미술 작품 창작 과정과 거래 관행 등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법정에서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공개변론 개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조영남 씨는 무명 화가와 대학원생에게 돈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 뒤 넘겨 받아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행세하고 판매한 ‘사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로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오늘 열린 공개변론에서는 여러 가지 쟁점이 논의됐습니다. 조수가 작가의 작품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인지? 조수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작품 구매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지? 조수와 대작 화가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입니다. 

검찰은 조 씨가 조수를 둔 게 아니라 대작 화가를 쓰고 사기행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씨는 작품의 추상적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 대작 화가들이 스스로 재료와 도구를 선택해 독립적인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조 씨의 조수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또한 그림 대부분을 조 씨가 아닌 제3자가 그렸는데,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판매한 행위는 구매자를 속인 사기라고 했습니다.

반면 조 씨 측은 대작 화가가 아닌 조수를 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강애리 변호사는 “세계적인 작가들도 조수 도움을 받는다”며 ”조수의 존재는 작품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거래 관행상 구매자들은 조수 도움 받았는지 묻지 않고 갤러리 판매자도 고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조수가 있다고 해도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기냐 아니냐, 법률 전문가인 대법관에게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김선수 대법관은 검찰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화가의 작품이 조수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어디까지가 적법한 조수 사용이고 어느 선을 넘으면 위법한 대작 화가를 사용한 것인지, 이런 구별 기준이 뚜렷하게 제시될 수 있을까요?” 조영남 씨의 대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음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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