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불었지만 그리 춥지 않았다. 땅이 녹으면서 흙은 질척거렸다. 큰맘 먹고 산 가죽구두에 진흙이 묻을까 신경이 쓰였다. 주변에서 눈을 번득이던 낯선 가죽점퍼 역시 마음을 편치않게했다. 곁에 있던 친구는 소매를 잡아끌었다. 떠나자는 메시지였지만 스피커 소리에 묻혀버렸다. 후보 연설과 함께 말이다. 청중들의 조심스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당선돼야할 후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1985년 2월, 마포의 한 초등학교 교정의 표정. 내가 경험한 첫 선거였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정작 투표권은 없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의가 반영되는 제도인 것이다. 우리의 정치사도 숱한 역경 속에서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키워왔다. 멀게는 1960년 4.19 혁명의 원인이 된 3.15 부정선거에서부터 대통령 직선제가 제기된 1985년 2.12 총선,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1997년 대선 그리고 가깝게는 촛불혁명과 2017년 대선까지. 그래서 선거 구도를 말할 때, 가장 간명한 구도를 ‘민주 對 반민주’로 삼는 게 아닐까 싶다. 역사적 검증을 통해 인식된 구도가 유권자의 선택기준을 단순 명료하게 해주는 것이다. 프레이밍이론에 따른다면 ‘민주 프레이밍’이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 하지만 선거마다 이런 단순한 구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후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는 좀 더 다양한 이슈들이 다양한 선거 구도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총선은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이, 2007년 대선은 경제성장의 과제가, 2012년 대선은 보수·진보 진영논리가 선거를 좌우했었다.

이제 21대 총선이 보름 남짓 다가왔다. 달라진 것은 18세로 하향 조정된 투표연령과 이해하기 어려운 비례대표제뿐이다. 그러나 역대 어느 선거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미증유의 상황을 맞고 있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생전 처음으로 선거의 흐름을 엿봤던 그 초등학교는 아직도 개학을 못한 채 문이 닫혀있다. 2020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새로운 선거 구도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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