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 때문이다. 여기엔 사제관계가 나오는데, 소설 속 선생님은 주인공 ‘나’에게 거듭해 “당신은 진지합니까?”라고 묻는다. 그 이후, 생의 진실을 병풍처럼 펼쳐 보인다. ‘진지함’은 타자와의 깊은 유대를 가능케 하는 태도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일정을 공개하면서 “기자들은 제약 없이 묻고, 대통령은 진지하게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 전날인 13일 모든 일정을 비운 채 회견을 준비했다. 마침 그날 국회에서 ‘검찰개혁’의 마지막 조각이었던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검찰개혁의 제도적 완성. 그 안에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정권 초부터 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조국 사태 한 가운데에서 진보언론은 조 전 장관을 ‘개혁의 불쏘시개’라고 말한다. 보수언론은 조 전 장관을 ‘이중인격의 후계자’라고 말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문 대통령 마음속에 있는 조 전 장관의 위치였다. 국론 분열, 진영 논리가 가열되며 “송구하다”는 표현은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사자의 심장’이 없다는 조 전 장관 역시 “임명권자의 뜻에 따를 것”이라며 굳세게 버텼다. 이것은 조폭 느와르였거나, 어떤 사명감과 인간적 유대가 없다면 당장 유권자 머릿수를 세기 바쁜 정치권에서 가능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문 대통령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질문자로 지목되고, 옆자리에 있던 기자가 실수로 일어나는 해프닝은 긴장을 풀어줬다. 웃으면서 시작된 질문이었지만, 조국 전 장관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문 대통령의 표정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굳어갔다. 마주한 15초 동안 대통령은 입을 앙다물고 초승달보다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통령께 조국 전 장관은 어떤 사람이었나”라고 말할 때, 뒤에서 누가 코웃음 소리를 내는 걸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고, 더 놀란 것은 짧은 한숨을 한 번 쉰 대통령의 진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라는 뻔한 정답이 있는데 대통령은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마음의 빚을 졌다”며 그야말로 허심탄회하게 답해줬다. ‘조국을 놓아주자’는 마음에 있던 말을 들려주었다.

  기자회견 이후 ‘조국 역할론’이 대두되는 것과 함께, 문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대통령은 두 번째 질문이었던 ‘조국 전 장관의 임명을 밀어붙인 배경’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앞서 질의된 윤석열 총장을 신임하는지를 묻는 직접적인 질문도 피해갔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들은 것만으로 집권 4년차, 각본 없는 110분의 기자회견은 진지한 물음에 진지하게 응답받은 순간인 것은 확실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