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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보물 제74호로 지정된 조선 최초의 한글 대장경인 '월인 석보'는 훈민정음 창제에 불교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월인석보와 더불어 경복궁 경내에 자리했던 왕실의 사찰 내불당에서도 조선시대 불교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요.

서울 법련사에서 이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특강이 열렸습니다. 

최선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가 경복궁옆 법련사에서 특강을 가졌습니다. 

정 교수는 먼저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 불교계의 흔적을 불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먼저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조선 왕실의 사찰, 내불당.

세종대왕이 당시 유생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안에 내불당을 지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사실을 거론했습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처음에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4매와 두골.패엽경.가사 등을 흥선사 석탑에 안치했는데, 1418년 세종이 경복궁에 내불당을 창건하고 이들을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세종이 왕비인 소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 수양대군을 시켜 경전 ‘석보상절’을 집필한 점도 강조했습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한글로 소개한 석보상절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처음으로 한글로 편찬 된 책입니다. 

이후 3권으로 된 찬불가집 ‘월인천강지곡’이 만들어지고, 이 두 책을 합친 한글 대장경 월인석보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정 교수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적 고증 사료를 월인석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신미대사와 10명의 스님들이 자문단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우리가 몰랐던. 신미스님과 열명의 자문단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월인석보 책에는 나와요. 훈민정음에는 신미스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종과 세조의 합작품인 월인석보에는 특히 훈민정음 언해 축약본이 서두에 수록돼 있어, 초기 한글 연구의 자료로도 가치가 높습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세종이 불교를) 엄혹하게 했었던 임금인데 초창기에는. 불교를 좋아하는 군주가 돼서 아들 세조와 함께 월인석보를 짓게 되고,이게 경복궁에서 이뤄지고. 모든 작업들이 예정돼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의 임금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집필하고, 궁궐 안에 사찰을 뒀다는 점은 문화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분석됩니다.

조선시대 불교계의 숨겨진 모습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 발굴돼야하는 이유입니다. 

BBS 뉴스 최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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