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남은 앙상한 팔과 다리,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근육이 말라버린 자리에는 핏줄이 선명하다. 2500여 년 전 깨달음을 위해 고행을 하던 부처님이 눈앞에 있는 듯하다. 필자가 조계종 대표단과 함께 지난 18일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부처님 고행상을 마주한 첫 느낌이다. 생생한 사실성과 예술성에, 부처님이 깨닫기 전이라는 특수성, 고행상 자체가 현재 10여 점 전해지는데, 그 중 최고작이 가장 잘 보존 돼 있기에 라호르 박물관 부처님 고행상을 간다라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손 꼽는다. 

라호르 고행상을 보고난 후 아내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 자랑했다. 아내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 이론을 가르치는 강사인데, 아마 그 자리에는 필자보다 아내와 같은 불교학자와 불교미술학도들이 더 오고 싶어 했을 것이다. 다행히 지난 16일부터 24일까지 7박 9일간 이어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파키스탄 국빈방문기간, 이 지역 주지사에서부터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모두 다 흔쾌히 라호르 박물관 부처님 고행상의 한국전시를 수락했기에, 머지않아 국내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고행상의 감동을 느낄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간다라 미술은 BC 2세기부터 AD 5세기 사이에 현재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에 시작된 그리스풍의 불교미술 양식이다. 부처님 성도 후 수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복했고,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는 부처님을 그리워하며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탑에 모셔 공경했다. 그 당시 감히 누가 신성한 부처님을 조각해서 예배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을 했겠는가? 불상은 불교의 종교화 과정에서 동양 정신문명을 서양의 미술양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다라 지역이 한국불교에 의미 있는 것은 마라난타 스님과 이곳이 대승불교의 주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1600여 년 전 이곳 ‘초타 라호르’에서 탄생한 스님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옛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 고구려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면, 백제불교는 그 시원지가 대승불교가 발전했던 간다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4세기 마라난타 스님이 전법을 위해 떠났던 실크로드를 따라 7세기에는 혜초스님이 이곳을 다녀갔으니, 한-파키스탄의 불법의 인연이 너무나도 지중하다.

파키스탄은 불교 세계화에 크게 공헌한 아쇼타 대왕의 마우리아 왕조가 생겨난 곳으로, 불교사적으로 또 문명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인 찬드라 굽타는 알렉산더 대왕을 만나 병법을 배웠고, 알랙산더 사후에 마가다 왕국을 폐하고 마우리아 왕조를 선포하며 그리스 통치를 종식시켰다고 한다. 파키스탄 간다라는 동서양 문명이 만나고, 전륜성왕이라 일컬어지는 아쇼카 대왕의 근거지라는 이점 등이 후에,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에 이르러 대승불교와 간다라 양식이 함께 절정기를 맞는 씨앗이 된 것이다. 여기에 동북아시아에서 대승불교가 활짝 꽃 핀 것은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가 이 지역까지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실크로드를 오간 중국의 상인들은 고산과 사막 등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불심을 키웠고, 상업으로 축적된 부는 실크로드의 중국 쪽 관문인 돈황에 막고굴 등 전무후무한 불교유적 조성과 전법으로 이어졌다. 

라호르 부처님 고행상 앞에 서니, 본토에 흔적만 남은 불교가 필연과도 같은 여러 조건 속에 한반도에 전래돼 발전 됐음을, 그 고난하고 장엄한 여정의 시작이 부처님 고행에서 출발함을 절감하게 됐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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