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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과 역사문화체험관’ 건립은 대구 자존심 걸린 문제”
박명한 기자 | 승인 2019.11.14 08:50
최주원 대구사과 120주년 기념행사추진위원장 (오른쪽)

■ 대담: 최주원 대구사과 120주년 기념행사추진위원장

■ 방송: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08:30∼09:00)

■ 진행: 대구 BBS 박명한 방송부장

[박명한] 대구는 한때 사과의 도시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대구에 사과가 도입된 지 올해로 꼭 120년을 맞았습니다. 파워인터뷰, 오늘은 대구사과 120주년 기념행사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광복소나무사랑모임 최주원 회장을 만나보겠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최주원 회장]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박명한] 대구에 사과가 도입된지 올해로 120년을 맞았는데요. 먼저 대구사과의 역사를 한번 짚어주시겠습니까?

[최주원 회장] 예. 우리 대구에 서양사과가 최초 도입된 것은 1899년 10월 경으로 미국인 선교사이며 동산병원장 초대 원장인 우드 브릿지 존슨 박사입니다.

그가 고향 미국 미조리주에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당시 동산병원 사택 주변에 심었습니다. 오늘날 약전골목 내 옛 대구제일 교회로 현재 교회 역사박물관 자리입니다.

당시 사과나무와 2세목은 노령으로 죽고 지금은 수령 10여년의 3세목이 대구동산병원내 의료선교박물관 옆에 자라고 있으며, 사과 크기는 매우 작지만 빨간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대구사과의 상업적 재배는 1904년과 1905년 시작되어 대구가 사과재배에 이상적인 기후와 토양을 가져 1920, 30년대에 대구사과로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0,50년대에 절정기를 맞이했으며, 이후 군사기지, 도시팽창에 따른 공장 및 택지화, 채소 재배 등으로 1960, 70년대에 과수원이 정체되거나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대구사과의 명성 회복, 새로운 전기 마련, 빛나는 전통 전승을 목적으로 1976년 11월 처음으로 대구능금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77년 10월 대구시민축제와 함께 제1회 대구능금잔치가 개최되었으며, 이때 유명세를 떨친 능금아가씨 선발대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국에 명성을 떨치던 대구사과는 1980년대에 급격한 쇠락을 맞이하여 이제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금년은 대구사과 120년으로 사과역사상 매우 뜻 깊은 해라고 생각합니다.

[박명한] 지금은 사과 주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했는데요. 현재 대구의 사과 재배 면적, 얼마나 됩니까?

[최주원 회장] 지금 사과가 최북단 강원도 인제와 양구지역에서도 재배가 되고 있습니다.

대구사과 재배는 점점 줄어들어 현재 160여 농가에 128헥타 정도로 전체 면적의 95%가 팔공산 자락인 동구 평광동과 공산지역에 재배되고 있습니다.

생산량은 약 3천톤으로 쉽게 말씀드리면 10Kg 기준 30만상자, 대구인구 250만 기준으로 1인당 약 50개정도 돌아갑니다.

[박명한] 사과 생산량은 줄었습니다만, 대구 사과의 품질은 어떻습니까?

[최주원 회장] 먼저 대구에는 쓰가루와 후지, 홍옥 등 13개 품종이 재배되고, 유목부터 수십년 된 노목까지 분포되어 있습니다.

주산지인 평광동은 해발 2, 300미터 정도이며, 산골로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일교차가 크고,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로 사과재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100년이 넘는 재배기술과 노하우로 사과에 당도가 높고과즙이 많으며, 맛이 좋아 대구도매시장은 물론, 서울 가락동 시장, 부산, 광주, 포항 등 여러 시장에 출하되고,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인기가 많습니다.

[박명한] 최근 대구사과 120년 기념행사를 하셨죠? 어떤 취지로 120년 기념 행사를 가지셨고, 또 어떻게 치르셨습니까?

[최주원 회장] 과거 대구하면 사과, 사과하면 대구로 불리만큼 명성을 떨쳤던 사과가 아직까지 건재하고 소중한 120년을 맞이 했습니다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대구사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과 재배농가의 자긍심 고취와 대구사과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우리 고장 대구사랑운동의 일환으로 기념행사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가 회장으로 있는 광복소나무사랑모임에서 지난 9월초행사비용 일부를 지원하기로 하고, 평광동 마을 주민 모임체인 평광동 발전위원회와 대구경북능금농협, 동촌과 공산농협 등 사과관련 기관단체가 흔쾌히 참여해 주어 기념행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후원 업체도 많이 참여해 주어 지난 11월 2일 옛 평광초등학교에서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였습니다.

행사내용은 오전에 평광동 왕건길인 과수원길 체험 건강 걷기와 오후에는 기념식에 이어 사과 퀴즈, 먹기 등 사과잔치와 색소폰, 아코디언 연주, 초청 가수 노래 공연을 개최하고, 대구사과 품종 전시와 사과관련 사진 전시회도 가져 사과농가와참가자들에게 즐겁고 뜻 깊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박명한] 회장님께서는 대구사과 역사문화 체험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데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까?

[최주원 회장] 대구사과는 섬유와 함께 과거 대구의 훌륭한 인재 육성과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으며, 아직까지도 시민들의 뇌리에 대구사과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이자 이미지입니다.

대구시가 지난 6월 자매도시인 중국 청두시에 2015년 자매 결연 기념으로 대구시 상징 사과 조형물을 건립하였다는 언론보도를 보았습니다.

또한 7월달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구시 신청사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 입상자 90여명 중 대구상징으로 사과를 내세운 사례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고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대구사과를 대구상징물로 인식하고 있어 매우 놀랐습니다. 대구사과가 과거에 이어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로 이어지고 있어 매우 뿌듯합니다.

우리 대구의 경북대학교가 1952년 전국에서 최초로 원예학과를 개설과 함께 사과 연구를 시작했으며, 1996년 사과연구소를 개소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도 지역단위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구경북능금 농협이 있습니다.

비록 사과면적과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소중한 역사와 문화, 전통은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구사과 120년 역사자료 집대성과 함께 보존 계승이요구되고, 대구시민과 경북도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자존심이 걸려있기에 더 늦기 전에 대구사과 역사문화 체험관 건립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명한] 최주원 회장님은 공직자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사과와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최주원 회장] 대구시에서 공직생활을 하던 중 2003년초 동구청 경제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업무와 관련 사과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일년 후 사과 주산지 관할인 동구 도평동장으로 발령이 나서 수시로 사과농가와 사과를 접 할 수 있게 되어 사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박명한] 그렇다면 공직에 계실 때 사과와 관련한 업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최주원 회장] 제 자랑의 인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만, 사과 주산지인 도평동장을 하면서부터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원과의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탈출로인 평광동 과수원 길을 2005년 전국에서 처음 ‘왕건길’로 이름을 붙이고 걷기행사를 개최하여 평광동과 대구사과를 다시금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에는 근래 대구사과 단독으로는 처음으로 검역이 까다로운 대만에 수출을 하고 이듬해는 말레이시아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대구사과 111년 기념행사로 대구사과 역사 재조명과 미래 구상 심포지엄 및 서울 나들이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구사과 홍보와 대구찬가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 부활을 위해 5개월 여 동안 음반과 악보를 찾아내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노래 관계자를 만나 음악저작권 협회에 등록을 하고, 2009년 3월 노래연습장 반주기에 수록을 완료 하여 오늘날 다시금 부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금영 노래반주기 곡번호를 말씀 드리면 84114번입니다. 연상 되시는 것이 없으신지요? 노래와 대구사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팔공산, 사과, 안내 글자를 조합한 숫자입니다. 당시 제가 금영 회사에 특별히 부탁을 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퇴직 후 입니다만 2013년 3월 동구청을 비롯해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건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그해 10월 동구 지저동 금호강변에 노래비를 건립하고 패티김 가수를 모시고 제막행사를 가져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2016년부터는 매년 봄에 노래비 공연장에서 능금꽃 피는 고향 금호강 벚꽃길 시민음악회를 개최하여 노래비와 대구 사과 홍보와 함께 시민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박명한] 현재 광복소나무사랑모임 회장을 하고 계신데, 광복소나무사랑모임은 어떤 단체입니까?

[최주원 회장] 예, 먼저 광복소나무는 동구 평광동 큰마을에 있는데, 단양 우씨 첨백당문중에서 애국심의 발로로 1945년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해방 기념식수로 첨백당 재실 앞에 심은 소나무입니다.

2004년 소나무를 심으신 우채정 옹에게 유래를 조사하면서 광복소나무라 이름을 붙인 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퇴직 후 2013년 100여명의 회원과 함께 광복소나무사랑 모임을 발족하였습니다

주요 활동은 광복소나무 보호관리와 홍보는 물론 태극기 바로알기 및 달기운동, 무궁화 심기 등으로 애향․애국 활동자원봉사단체입니다.

[박명한] 비록 주산지로서의 위상은 낮아졌습니다만 지역 발전을 위해 대구 사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최주원 회장] 대구사과의 주산지인 평광동은 마을과 골짜기 전체가 사과밭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색있는 자랑스러운 마을로 왕건과 신숭겸 장군의 설화와 효자,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고, 애국심이 깃든 광복소나무가 있습니다.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측백나무숲과 불로동고분군, 팔공산과 금호강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저는 평광동을 대구의 숨은 보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과와 함께 이를 원료로 한 다양한 먹거리 제품을 개발하고, 주변 역사문화 자산과 연계하여 체험관광 으로 스토리텔링 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많은 외지 사람들이 대구와 대구사과를 찾아와 성공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박명한] 끝으로 회장님께서 사과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인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주원 회장] 대구사과와 인연을 맺은 후 지난 16년 동안 많은 것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대구사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보존하고 후대에 계승하는 ‘대구사과 역사문화체험관’ 건립입니다.

대구섬유 박물관은 동구 봉무동에 4층 규모로 웅장하게 세워져 있고, 기초자치단체인 충주시에도 사과과학관이 있는데 사과를 상징물로 부르고 있는 대구에는 사과 관련 조형물이나 시설이 전무하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얼마가지 않으면 대구에 사과가 없어지는데 뭐 필요하냐고 반문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과재배 농가와 사과 관련 기관단체, 많은 시민들의 염원이자 대구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후대에 미룰 수 없는 사업입니다.

대구사과 역사문화체험관 건립은 무엇보다 정책과 예산을 수립 반영하는 대구시장님과 동구청장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의 관심과 의지, 노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사과의 본 고장 대구에 대구사과 역사문화체험관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리고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각계 각층과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을 비롯해 열심히 활동해 나갈 계획입니다.

언론과 대구시민들께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리며, 또한 시민들께서 대구사랑 마음으로 맛좋은 대구사과를 많이 애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명한] 앞으로도 지역발전을 위한 많은 역할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바쁘신데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주원 회장] 감사합니다.

[박명한] 파워인터뷰, 오늘은 대구사과 120주년 기념행사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광복소나무사랑모임 최주원 회장을 만나봤습니다.

박명한 기자  mhpark@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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