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군 어성전리 만월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명주사. 명주사 저녁 동종 소리는 예부터 어성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라 했다.

천년고찰 명주사(明珠寺)! 설악산을 바라보는 양양 어성전리 만월산(滿月山) 자락 명주사에 오색단풍 가득하다. 소담한 산사 한 구석 붉게 물든 단풍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설악(雪嶽)을 향한 그리움 깊이 품은 주지 스님 단심(丹心)이라. 붉게 물든 단풍마저 고졸(古拙)하다.

예부터 산사모종(山寺暮鍾) 어성팔경(魚城八景)이라 했다. 은은한 저녁 종소리에 마음을 뺏기고 문득 산사를 둘러보니 사형(師兄) 그리는 스님. 사형 향한 깊은 정(情) 품은 노스님, 이러저러 담담하게 가을 단풍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단풍인지, 단풍이 내 마음인지, 내 마음 가득 담았는지, 사형과 함께 그 시리게 푸른 하늘 훨훨 날아도 그리움 쉬이 달래지지 않는다. 하릴없이 하늘 한 번 바라보고 가슴 한번 쓸어내리다 뒷산 밭 일구며 돌탑을 쌓아 허허한 마음 달랜다. 절집 문짝에 붙여 놓은 스님 선화(禪畵)가 그리움을 달래고 적적함을 더한다.

명주사 주지 죽전 지혜스님의 선화(禪畵).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산집 고요한 밤 홀로 앉아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온갖 것 돌아가고 이 누리 잠겼네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저 바람 잠든 숲 깨워서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 찬 기러기 울음소리 먼 하늘 울고 가는고

죽전 지혜(竹田 智慧) 스님, 명주사를 지키고 있는 스님은 지난 해 열반에 드신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당 무산(雪嶽堂 霧山) 대종사님 사제(師弟)다. 조실 스님께서 시(詩)로 화두를 주시면 스님은 선화(禪畵)로 답해드렸다.

지혜 스님의 선화. 신흥사 조실 설악당 무산 대종사님 선시(禪詩)에 바친 선화이다.

별경(別境)  - 설악 무산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이고 있다. 가을 하늘은

밀물과 썰물 사이 너울을 부서뜨리며

그 바다 금린(金鱗)들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을 하늘은 무슨 말로도 말할 수 없다.

가을 하늘은 무슨 말로도 말할 수 없다.

이 가을 햇볕을 일며 사태(沙汰)하는 새여, 새여

         ㅡ 《설악무산 죽전지혜 시서화일률집

                    말한 바 없이 말하고 들은 바 없이 듣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정이 60여년, 가을이 오니 어찌 사형이 그립지 않겠는가. 새벽달 찬 기운에 마음이 깨어나니 느껴지는 묵은 가을 한 철이 기껍다. 하릴 없이 절 오르는 길 서성이다 또 한 번 하늘 올려보니 새벽달에 사형 환한 웃음 서려있다. 앙상하게 말라가는 가시나무 가지를 베어 준다. 잘라낸 나뭇가지 한 손에 쥐고도 허공에 톱질 이어가다 문득 아득해지고 하늘과 숲과 하나가 됐다.

만월산 명주사를 물들인 오색단풍이 선연(鮮然)하다.

단풍은 설악(雪嶽)을 넘어 남으로 양양 만월산에 이르고 명주사 스님 마음 깊숙이까지 물들었다. 스님은 오늘도 하릴없이 가을 한 복판에서 그리운 사형님을 그린다. 그리운 사형님 환한 웃음이 따스한 새벽달로 떠오르고 사형님과 함께 새벽달을 보며 정(情)을 달래고 가을을 노닌다.

만월산 명주사 오색단풍. 스님의 단심(丹心)이 배어있는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
지혜스님 그리움을 가득 담아 붉게 물든 명주사 단풍

 

명주사 스님

 

가을, 명주사 스님은

지난 해 가신 사형님 보고 싶어

하릴없이 절 아래 길 다지고

가시나무랑 씨름하며

그리움 달랬다 하시네

 

어느 한 날

한 손에는 잘라낸 나뭇가지 그러쥐고

한 손으로는 텅 빈 마음에 톱질하다

눈 깜빡할 새

하늘과 땅과 숲이 되고

사형님과

껄껄 웃었다 하시네

 

명주사 스님은

사형님과 나눈 속 깊은 정

캐어내듯

이제는 절 마당

깊이 박힌 돌들 걷어

탑을 여덟 개나 쌓으며

시절을 낚는다 하시네

 

명주사 스님은

가을 청명한 어느 날

보고 싶은 사형님과 새벽달 함께 보며

한 철을

그렇게 놀았다 하시네

지혜 스님은 사형님 그리운 깊은 정(情) 달래려 절 뒷 산 밭을 일구며 거둔 돌로 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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