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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오세영 서울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자전 에세이 '정좌'...인문학은 돈 버는 학문 아닌 투자해야 되는 학문"
김봉래 기자 | 승인 2019.10.28 10:16

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선임기자     
출연 : 오세영 서울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방송 : 10월 27일(일요일) 저녁 6시(BBS 라디오)

김봉래 선임기자(이하 김봉래) : 우리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우리 인생은요 우연과 필연이 함께하는 인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연의 참모습은 부처님만이 완전히 아신다라고 하는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자 국문학자 한 분을 모시고 인생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마침 최근에 <정좌>라고 하는 자전 에세이를 내신 분이죠. 오세영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님과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오늘은 오세영 서울대 명예 교수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이하 오세영)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김봉래 : 네. 교수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에세이 <정좌>, 바를 정(正)자, 앉을 좌(坐)자 하는 책을 내셨는데, 인생 전반을 쭉 돌아보신 어떤 소회 어떠신지요.

오세영 : 네. 한 생을 영유하면서 돌아갈 때가 되니까 자신을 한 번 둘러보면서 뭔가 후세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제 인생의 이야기를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든 단점이든 혹시 제가 단점이라면 반면교사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제 인생을 돌아보는 자서전 비슷한 그런 문학 에세이를 냈었습니다.

김봉래 : 네. 교수님께서는 두 가지 소임을 사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편에는 시를 쓰시는 시인이셨고 또 무엇보다 학문을 사랑한 국문학자이셨습니다. 저도 책을 읽어보니까 정말 많은 사연들이 이렇게 겹치고 하는데, 그런데 돌아보실 때 굉장히 그 어려웠던 시절 또 괜찮았던 시절, 겹칠 것 같은데요. 먼저 가장 그 때 좀 어려웠다는 순간은 어느 때였습니까?

오세영 : 어려웠다는 게 사적인 그런 측면에서 어려울 때도 있었고, 또는 공적인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시대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웠을 때도 있었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적으로 어려웠던 때는 제 나이 28살, 30살 넘어가기 직전이죠. 이 때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넉 달 유복자로 세상에 태어나서 독자입니다. 그 때 어머니가 22살이셨고 어머니는 결혼해서 지아비를 잃은 지 만 2년 후였죠. 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쭉 살아왔는데. 제가 28살 때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너무 충격을 받고 어머니에게 효도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서 정말 죄의식 때문에 제가 잠을 모사고 우울증에 시달려서 한 1년 우울증을 치료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아마 제 개인사적으로는 제일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 같고요.

김봉래 : 네. 저도 책을 읽어보니까 그 때 선생님께서 시간강사 시절이었던 것 같고 굉장히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은.

오세영 : 네. 그 때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아직 그 정식 전임을 구하지 못해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궁핍했고,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그래서 어머니께 효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김봉래 : 그 또한 또 하나의 인연이 아니었을까 풀어보기도 합니다만 정말 지금 생각하시면 아쉽고, 죄스럽고, 송구스럽고 그런 것 같은데. 공적으로는 또 어떤 면에서 어떤 때가 힘드셨던지요.

오세영 : 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시를 쓰는 일과 학문을 하는 일인데 제가 공적으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그 80년대 중 후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 사회적으로 권위정부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아주 심했을 때죠.

김봉래 : 네. 저도 사실 그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교수님.

오세영 : 그 때 학교를 다니셨군요. 학교에서는 거의 강의가 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권위 정부, 독재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굉장히 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김봉래 : 그렇죠. 사실은 저희 때는 이 국가의 미래가 굉장히 암울하다 생각이 되었고, 공부해서 뭐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그게 불과 몇 년 후에 87년도 사건으로 해서 사회 전체가 뒤바뀌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닌가 저는 그 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교수님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다는 거죠.

오세영 : 네. 그래서 대학에서 사실은 학문다운 학문을 할 수 없던 시절이죠. 당시 학생들이 원했던 것은 교수들이 앞장서서 반독재 투쟁에 선봉에 서기를 바랐고 또 학생들이 교수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들이 권위정부에 제도적으로 입에 재갈을 물려서 자유스럽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그 때 학생들이 교수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받지 못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게 참 어려웠고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고요. 또 한편 시를 쓰는 입장으로 보면 그 시기에 한국 문단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민중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독자의 지지를 받았고 사회적인 요청이 문학 작품을 통해 독재 항거를 해야 한다는 그런 일반적인 묵계가 있었기 때문에 시 창작이라는 것 자체도 순수시보다도 민주화 투쟁을 위한 선전 도구,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서 시를 썼던 시대였는데 이런 시기를 겪으면서 문학의 어떤 순수성이라고 할까, 시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스럽고 또 가슴이 아팠던 시절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시 분야에서는 그 이른바 순수참여논쟁, 그것이 사실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것 같고요.

오세영 : 그렇습니다. 그 때 서울대 국문과는 시 창작은 거의 없거든요. 학문이 우선시 돼가지고 학생들에게 시를 쓰는 것을  권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사립대 문예창작과에 나가서 시 창작 교육을 한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입장이니까 혹시 사립대학의 문예창작과에 가면 천재적인 문학청년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강의를 하는데 그 강의라고 하는 게 학생들이 써온 작품을 읽고 그리고 학생들하고 같이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한 학생이 시를 써가지고 왔어요. 읽어보니까 그 당시에 학생들이 유행했던 통일시, 분단시, 이런 시들이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고 분단을 하루 속히 넘어서야 된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그런 주장이나 이념이 강하다보니까 시가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시를 이렇게 쓰면 되겠느냐, 그리고 통일이라고 하는 것도 이렇게 한 순간에 될 수 있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학생이 반발해서 선생님은 가진 자 아닙니까, 통일을 반대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내가 가진 자냐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은 서울대 교수니까 봉급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또 이러더라고요. 이를 어떻게 하나 싶어가지고.

김봉래 : 가진 자가 아닌 건 또 아니니까.

오세영 : 그렇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북이 통일되면 선생님은 서울대학교를 그만둬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왜 내가 그만 두냐 그러니까 남북 통일되면 서울대학교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러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제가 그 강의를 그 이상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당시 대학뿐만 아니라 문단에서도 이념적인 갈등이라고 할까, 지식인으로서 어떤 책무, 시대적인 책무 그런 것이 요구되거나 강요되었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순수학문이나 순수시를 쓴다는 것이 터무니없던 시절이 아니었었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아무리 순수하다하더라도 공동체 내의 사건이라고 보면 그런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 이것을 또 전혀 배제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현실 참여하는 방식이 다르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순수시를 써 나가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현실 참여 방식이다 저는 정리를 하는데, 그것을 너무 기계론적으로 참여시다, 참여시가 아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조금 과도한 분석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는 지식인의 책무 이런 것에 경도되어 있고 거기서 어떤 이른바 순수를 비판하는 데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학생이었는데, 죽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만 선생님도 어떻게 보면 그런 문단, 문학 세계에서 굉장히 그 외톨이처럼 외로웠던 그런 이야기들이 죽 나오거든요.

오세영 : 네. 그런데 그 문제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대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이고 역사 의식에 부응하는 올바른 길이죠.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900여년 전에 몽골군이 우리 국토를 짓밟았을 때 어떤 사람들은 창이나 칼을 들고 맞서 싸웠지만 또 어떤 분은 밀실에 갇혀서 꾸준히 팔만대장경 하나하나를 새기지 않았습니까. 그런 팔만대장경이 지금 한 1,000년 뒤에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세계사적으로 한민족의 어떤 위대성을 예시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에도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는 그런 분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몽골군과 맞서 싸우는 이런 분도 있어야 되는 거겠죠.

김봉래 : 그렇죠. 그러니까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마음, 그것이 어떤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사회의 이익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한 이익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둘이 다르지 않다, 불교적으로 보면 불이(不二)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이제 교수님의 시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선생님께는 시가 어떻게 보면 좀 운명적이었다, 불교적으로 보면 인연이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중학교 때 선생님이신가요.

오세영 : 네. 양영옥 선생님.

김봉래 : 양영옥 선생님의 인연으로 사실 오늘날의 오세영 시인, 학자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좀 해보는데요. 선생님의 시세계는 어떻게 스스로 평가를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오세영 : 근데 제가 그 시인이 된 것은 하나의 운명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환경 자체가 그랬고 또 제가 자란 그 외갓집이 정철, 정송강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학문을 문학을 충성하는 분위기였고 또 제 성격 자체가 문약하고 나약해서 사회성이 부족하고 그래서 홀로 있기를 좋아했던 것이 한데 어우러져서 그렇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제 시간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갖고 어떤 소명을 가지고 쓴다기보다 태생적이고 운명적이고 나도 모르게 그런 문학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저는 시를 말하자면 삶의 영원성이라고 할까.

김봉래 : 삶의 영원성이요.

오세영 : 네. 영원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 또는 영원이라고 하는 곳에 찾아들게 된 책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흔히 불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문학도 결국 상구보리의 정신과 하화중생의 정신을 잘 조화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런데 이제 문학도 시가 있고 소설이 있지 않습니까. 시가 있고 산문이 있는데, 시와 산문의 기본적인 차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 문제에 있습니다. 그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데 이제 시와 산문의 구분이 있는데, 저로서 생각할 때 시라고 하는 것은 상구보리 쪽에 속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물론 하화중생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본질적으로 상구보리 정신이고, 산문은 하화중생 쪽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 시기에 어려웠던 시기에 저항적인 시도 몇 편 썼고 또 개인적으로는 고초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치 수단이나 어떤 이념 전달의 도구는 아닌 것이다. 소설이나 산문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하고 그럴 필요성도 있지만 시는 그 장르적인 본질 때문에 그 자체가 이념이나 철학이나 정치의 수단은 될 수 없다. 그 대신 시라고 하는 것은 존재의 영원성을 탐구하는 그런 문학 장르가 아닐까 그런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선생님의 또 특유의 시철학 말씀을 해주셨는데, 시란 신이 없는 종교다 이런 뜻도 표현도 하셨던 것 같은데요.

오세영 : 그것은 제가 총체적 진리와 부분적 진리라고 하는 그런 개념을 말씀드린 제가 책에 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 기독교와 좀 관련이 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를 나왔거든요, 중고등학교를. 아주 철저한 강압적인 기독교 교육을 받았죠.

김봉래 : 점수도 잘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세영 : 모범생이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제가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김봉래 :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야 됩니다.

오세영 : 학교에서도 성실한 그런 기독교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어요. 중학교 1학년 성경 첫 시간이었습니다. 그 학교가 성경을 가르치는데, 근데 교목님께서 목사님께서 첫 시간에 들어오시더니 제일 앞줄에 있는 학생들을 하나씩 이렇게 불러 세워요. 제가 키가 작아서 앞줄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더러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지 이렇게 물어요. 그래서 제가 아 착하고 선하면 천국에 가죠 라고 이야기 했더니 목사님 말씀이 아니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아니 착하고 선하면 극락세계 가야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못 간다니까 제가 좀 어리둥절했죠.

김봉래 : 천국은 좀 다르다 이거죠.

오세영 : 어떻게 하면 갑니까 하니까, 목사님께서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시더라고. 그런데 저는 그 기독교 교리를 몰랐을 때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물었어요. 그럼 옛날 백제 사람들은 예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예수를 안 믿었는데, 그럼 그 분들은 전부 지옥에 갔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이 대답을 못하시더라고. 그리고 한참을 뜸을 들이시더니 마침내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 이랬거든요. 그리고 그 후에 후일담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제 마음 속에 하나의 화두가 된 게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뭘까, 왜 백제민은 예수를 안 믿어서 지옥에 가야 했을까,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대학 다니면서 이제 칼 야스퍼스라고 하는 철학가의 책을 읽으며 문뜩 깨달은 게 있었죠. 그게 뭐냐하면 이 세상에는 논리나 합리로써 이해할 수 없는 진리가 있는 것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수학이나 과학의 진리는 물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겠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어야겠죠.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과학적 진리가 아닌 모순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진리를 총체적 진리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종교는 총체적 진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총체적 진리의 핵심은 모순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그 모순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놓고 기독교는 절대자,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자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데, 그런데 불교는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이죠. 그런데 불교는 서구신학자들이 말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불교는 종교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견해가 있거든요. 아 불교야말로 그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될 존재가 아닐까, 그게 아마 이제 불교의 기독교의 기본적인 차이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문학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불교가 지향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제가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제 나름의 시론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교수님의 종교관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사실 교수님 인생에 있어서 또 불교와의 인연도 운명적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는데, 그 운명적인 만남에 어느 스님이 계셨죠.

오세영 : 네. 불교와의 인연은 따지고 보자면 제가 외가에서 자랐는데, 외할머니께서 불교 신자였던 것 같아요. 한국전쟁 나기 전이죠. 외가 근처에 암자에 비구니 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외가에서 무슨 대소사가 있을 때는 외할머니께서 그 비구니 스님을 모시고 항상 자문을 구하고 하셨어요. 근데 그 비구니 스님이 이제 집에 오셨을 때 외갓집에 오셨을 때 항상 외조모가 저를 당신 옆에 꿇어앉히고 인사드리라고 하면서 비구니 스님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스님 이 아이 좀 보세요,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랍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랍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세요. 그럼 비구니 스님이 그 말씀을 듣고 맞장구를 치시는 거죠. 아 참 옳습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입니다, 저 잘생긴 귀를 보세요,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의 뜻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저는 제 마음 속으로 나는 보통 아이가 아닌가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아버지 없이 유복자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을 외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때 그 비구니 스님이 저한테 들려주신 말씀, 이 아이는 보통 애가 아니다 라는 말씀, 그게 제 일생 동안 저는 뭔가 다른 사람과 달리 뭔가 다른 일을 해야 된다는 그런 어떤 인생관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심어준 것 같아요. 그리고 장성하고 난 뒤에는 제가 우연히 작년에 열반하신 신흥사 조실 오현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현스님과 가까이 지내고 오현스님 모시면서 제 여러 가지 깨달은 바도 많고 또 배운 바도 많습니다.

김봉래 : 만해축전도 주관하시고 큰 일 많이 하셨죠, 문인들 위해서도.

오세영 : 그 분이 또 시조를 쓰시는 분이라 문인들 일을 많이 해주셨어요. 장성해서는 오현스님으로부터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죠.

김봉래 : 스스로 불자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지는 않으시지만 내면에 그 어떤 불심, 깊은 신앙심을 간직하고 계신 시인으로 저희들은 이해를 하겠습니다. 사실 이제 불교방송에 나오셨으니까 불교와의 인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선진국으로 되다보니까 사실 굉장히 반목하는 분열이 굉장히 심하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쏠림 현상도 심하고요. 아까 80년대 초반 말씀하셨습니다만 참여와 순수 사이에서 어떤 쏠림 현상, 그것이 지금 30년 이상 흐른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사실 연기법과 또 중도의 법으로써 정말 두루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철학과 실천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불교의 역할이 또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생각도 하거든요.

오세영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오세영 : 짧은 시일 내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도 확립을 했고 경제 성장을 해서 아주 잘 사는 나라가 됐죠.

김봉래 : 그것은 굉장히 물질주의적인 측면에서 이야기죠.

오세영 : 네.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성급하게 물질 발전이랄까,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결과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인문정신이 상실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인간 존중, 생명 존중의 가치관이 많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또 다르게 말씀드리면 물질 우선 가치관이죠.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말하는 말하자면 물질숭배, 물신주의, 인간소외 이런 것이 다른 선진국에 대비해서 너무 극단화 되었다고 할까 너무 치우쳐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잃어버린 인문정신을 회복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죠. 우리 정부나 사회 지도자들이 최근에 와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그런 말씀도 많이 하시고 그런 운동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좀 아쉬운 부분이 뭐냐 하면 이 분들이 강조하는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인문정신을 고양하거나, 인간 존중 가치관을 널리 선양하고 고취하는 데 있기 보다는 요즘 우리 경제가 한계선이 와서 주춤하고 있고 또 수출도 잘 안 되고 하는 국면에 와 있는데, 이것을 인문학을 통해서 좀 주춤한 우리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수출도 이룩하자, 다시 말하면 인문학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한 번 연구해보자 이런 태도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사실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돈을 버는 학문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돈을 투자해야 되는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빵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거거든요. 빵을 먹기는 먹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가 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될 것 같은데, 바로 이런 문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지금 인문학 또는 인문 정신의 고취나 강조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조금 더 보자면 이것을 경제적 측면에서 평가하기보다는 순수한 인간 정신의 고양 또 인간 삶의 발전을 위한 그런 차원에서 인문학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김봉래 : 그렇죠. 빵을 먹되 얼마나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나눠 먹을 수 있는가. 빵의 근원을 생각해서 이 빵이 오기까지의 수많은 그런 과정들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뭐 이렇게 한다면 모든 문제를 푸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그 어떤 인문 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런 인문 정신을 심어주셨던 스승들 또 친구 분들, 그런 이야기가 책에 가득 담겨 있어요. 이 순간 어느 분이 주로 많이 생각이 나시는지요?

오세영 : 첫 번째는 아까 말씀드린 중고등학교 스승인 양영옥 스승, 제 인생에 가장 존경했던 그런 분인데 그 분이 제게 문학을 가르쳐 주시고 철학을 가르쳐 주시고. 중고등학교 때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뭐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인생을 사는 도리 같은 것을 제가 배웠죠. 제가 가난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버는 일이라든지 권력을 갖고 싶은 그런 생각보다도 오히려 시를 쓰는 한 생을 택한 것도 아마 그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그 예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저는 처음에 이름 때문에 여자 선생님이신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남자 선생님이라고.

오세영 : 남자 선생님이십니다.

김봉래 : 책도 너는 뭐 마음대로 읽고 싶은 거 빌려가라 배려도 해주시고 또 장학금도 주시고.

오세영 : 그 때 그 학교가 조그마한 학교였는데 도서관이 있었어요. 도서관이 학교 수업이 6시간이니까 대개 오후 2시면 끝이 납니다. 2시 반에 개관을 해서 밤 9시까지 문을 여는데, 제가 책을 좋아해가지고 학급 정리가 끝나자마자 2층 도서관으로 뛰어 올라가 가지고 또 맨 앞줄에 서야 합니다. 뒷줄에 서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앞줄에 있는 학생이 빌려 가면 못 보거거든요. 제일 앞줄에 가서 제가 서고 폐관 시간이 되어서 책을 반납을 해야 되는데, 제가 그것을 잊고 계속 열중히 책을 읽으니까 아마 그것을 지켜보시던 양영옥 선생님이 기특하게 생각하셨나 봐요. 나를 부르시더니 너 책이 그렇게 좋으냐, 너는 특별히 예외적으로 아무 때나 책을 빌려가거라 그런 말씀을 하셔서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봉래 : 그래요. 그리고 대학시절의 또 은사 분들도 여러 분 계시지만.

오세영 : 제가 대학 시절에 훌륭한 스승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김봉래 : 행운아셨던 것 같아요.

오세영 : 예. 행운아죠. 제가 그래서 책에도 썼습니다만, 미당 서정주 선생이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워주는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 이런 유명한 싯구가 있거든요. 저는 저를 키워준 것은 8할이 선생님이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봉래 : 박목월 선생님도 있고, 정한모 선생님도 계시고.

오세영 : 제가 스승 복이 정말 많은데 대학에서 스승으로는 정한모 선생님, 그 다음에 돌아가신 분인데 일석 이희승 선생님, 이숭녕 선생님 전광용 선생님, 지금 살아 계신 이어령 선생님 이런 분들에게 참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김봉래 : 오늘 시간을 마무리 해야 되는 순간인데 나오신 김에 준비하신 시 한수를 좀 읊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세영 : 네. 제가 어머니에 대한 한이 많은데, 그래서 제가 어머니에 대한 것을 떠올리면서 쓴 시가 몇 편 있습니다. 그 중 한 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봉래 : 네. 오늘 그 한을 다 풀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세영 :

(어머님께)

어머니,
문득 당신을 불러봅니다.

착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떳떳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아름답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보니 당신의 이름은 참회였습니다.

어머니,
남몰래 당신을 불러봅니다.

그처럼 빨리 가실 줄 몰랐습니다.
그처럼 그리울 줄도 몰랐습니다.
그처럼 보고 싶을 줄도 몰랐습니다.

이제 보니
당신의 이름은 또 슬픔이었습니다.

시가 되지 않는 어느 날 저녁,
가만히 창문을 열고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다봅니다.
아득히 먼 지평선 너머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또르르 내려와 내 눈에 글썽입니다.

아가, 그만하면 잘했다. 잘했어.
울지 마라.

어머니는 허공의 별이 되어
그동안
날 지켜보고 계셨던 거였습니다.

김봉래 : 네.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데 울지 마라, 괜찮다, 그런 어떤 어머니의 마음을 읽으시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선생님 너무 감사드리고요. 시간 마무리 하면서 또 우리 애청자들께 국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간단히 해주시죠.

오세영 : 네. 우리 사회가 조금 요즘 어지럽고 어려운 국면이죠. 이럴 때 일수록 각자가 자신을 불교의 가르침처럼 자신을 좀 버리고 서로 양보하면서 화합을 이뤄가지고 편안한 우리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봉래 : 네. 감사합니다. 오늘 오세영 서울대 국문과 명예 교수님 모시고 말씀 나눴습니다.

네. 여러분 오늘 오세영 교수님과의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하신 한 분의 말씀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불교에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하죠. 어디가든 주체적인 삶을 살 때 행복한 삶을 구가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저녁 시간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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