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입니다’ - 불교계 소식

● 출 연 : 이병철 기자

● 진 행 : 고영진 기자

● 2019년 10월 28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한 주간 제주지역 불교계 소식

[앵커] 지난주 교계 뉴스 시간에 일붕 서경보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무리를 다 못 지었는데요.

근현대 한국 불교를 이끌었던 일붕 서경보 스님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이병철 기자가 전하는 교계뉴스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병철 기자, 안녕하세요.

[고영진] 우선 일붕 서경보 스님을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병철] 제주출신으로서 근현대 인물 중 대표적인 고승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일붕 서경보 스님입니다.

생전의 스님은 노구의 몸을 이끌고도 매일 새벽 3시 아침예불과 산행을 절대 거르지 않을 만큼 초발심을 잃지 않는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법이 본분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한 달이면 무려 20여일 이상을 국내외 각지를 돌아다니며 불교포교와 세계평화 정착에 헌신한 포교사였습니다.

[고영진] 이병철 기자의 말을 들으니 정말 한국불교 뿐 아니라 전세계 불교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네요. 그럼 스님이 제주출신이라 들었는데 고향은 어디이시고, 어떻게 출가를 하시게 됐나요?

[이병철] 네, 스님은 1914년 서귀포의 도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출생한 스님은 어려서부터 몸이 자주 아프셨다고 해요. 그래서 병이 잘 낫지 않자 19세에 요양차 사찰에 갔다가 출가를 하게 되신 겁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산방산 산방굴사에서 1932년 혜월스님을 은사로 득도했고, 법명은 회암(悔巖)이십니다.

1933년 지리산 구례 화엄사의 진응 스님을 찾아가 그 밑에서 수학했는데요. 그러나 1935년 진응 스님이 완주 위봉사의 강원(講院)으로 자리를 옮기자 스님도 따라가 위봉사에서 사미과와 사집과를 수료하셨습니다.

그 당시 위봉사 주지였던 춘담 스님은 서경보 스님을 법제자로 삼았는데 그때 내려준 법호가 일붕(一鵬)입니다.

이후 서울 개운사의 박한영 스님 문하에서 사교과와 대교과를 수료했습니다. 또 대원암, 금산사 강원, 오대산 선원 등을 거치며 불교내전(佛敎內典)과 선학 일체를 수학했고, 1942년 4월 24일 오대산 월정사 강원의 강사(講師)로 부임하십니다.

여기서 강원이란 스님들이 공부하는 대학이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강사란 스님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스님이 되는 과정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조계종에서는 50세 미만이면 출가 가능한데요. 처음에는 40세로 낮췄다가 요즘 출가자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50세로 높였습니다.

출가절차는 맨 처음 은사스님을 정합니다. 그리고 은사스님 밑에서 행자생활을 하는데 보통은 6개월 이상입니다.

은사스님을 통해 사미계 접수를 하게 됩니다. 12일동안 사미계 수계교육을 받고 나서 사미계 수계를 받습니다.

이 때 사미스님이 되는데요.

이후 4년간 동국대 불교대학이나 중앙승가대,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강원 등에서 승려기본교육을 받습니다.

이때 사미승의 승복에는 고동색 깃이 있어서 비구승과 구분 짓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후 4급 승가고시를 통과하면 구족계 혹은 비구계,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종단의 정식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고영진] 네 스님이 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경보 스님은 강원 강사로 멈추지 않고 또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하신다면서요.

[이병철] 네 스님은 1944년 일본 경도의 임제전문대학에서 3년간 철학을 공부하고 안목을 넓혔습니다.

귀국 후에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안양암 포교사로 부임하고 다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해 1950년에 수료했습니다.

동국대 수료 직후부터 원광대와 전북대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고요.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휴전이 되면서 1953년 지금의 경남대학교 전신인 해인대학교 교수와 경남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외연을 넓혀나갑니다.

다시 부산대와 동아대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스님은 1960년 태국 상하대 교환교수와 1961년 서독 함부르크대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며 본격적인 해외활동을 시작합니다.

1962년 불국사 주지로 임명되었고, 동국대학교 불교대 교수로도 재직하게 됩니다.

그 후에도 1963년 부산시의회 의원, 1964년 해동불교역경원 원장과 미국 콜럼비아대, 워싱턴대, 캘리포니아대, 하와이대 교환교수를 역임하셨고요. 1965년 미국포교사, 1966년 미국 템플대 불교학 교수, 부산 금강사 주지 등을 맡으며 어떤 자리에 있든지 불교를 전법해야 하는 출가자의 사명을 잊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합니다.

[고영진] 그야말로 근현대사에서 한국불교를 외국에 널리 알린 선구자이시네요?

[이병철] 네 맞습니다. 왕성한 해외포교에 온 열정을 보여 준 스님께서는 1996년 열반하시기 전까지 무려 157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대외적으로 약소국이었고, 지금처럼 한국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던 시기였기에 스님의 당시 활동이 더욱 빛이 나는 것입니다.

스님은 1969년 미국 템플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후 26개 분야 126개의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하셨습니다.

그리고 1천042권의 저서와 757개의 평화통일비 건립을 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십니다.

그리고 50만여 점의 선필을 쓰셨고,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 스님은 남북평화 통일을 늘 염원하고 세계 평화를 주창하셨는데요.

그래서 지난 1988년 일붕선교종을 창종 한 후 계속 추진해오던 세계불교 법왕청을 1992년에 설립하셨습니다.

창립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초대 법왕에 추대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더욱이 주목되는 것은 뉴 멕시코주에서는 동양인으로 처음으로 1979년 8월17일을 ‘서경보 박사 기념일’로 제정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또, 그리고 유엔의 유네스코 특사로 활약했으며,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폐기 등을 강조해온 업적으로 승려로는 유일하게 1995년과 1996년 유엔본부 세계평화교육자회로부터 2회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도 해외에서 포교활동을 펼치다 1996년 6월 25일 서울 신영동의 법왕청에서 속랍 83세, 법랍 64세의 일기로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 한국불교의 위상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남긴 제주가 낳은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업적이야말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영진] 정말 이 기자의 말을 들으니 일붕 서경보 스님은 감히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엄청난 수행력과 법력이 대단해 보이십니다.

그렇지만 스님의 업적을 드높이는 행사가 11월 6일 열리는 창작음악극에 밖에 없다면 조금은 초라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병철] 네 맞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미 외국에서도 기념일을 제정할 정도로 그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탄생지인 제주에서는 음악회를 비롯해 단순히 조촐한 추모재만 치러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붕선교종 일부 스님과 재가불자들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일부에서 출생지 생가복원을 비롯해 기념관 설립, 장학회 등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듯 했으나 말은 난무하나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2011년 ‘세계불교 초대법왕 서경보 일붕존자 탄신 97주년 및 열반 15주기 추모재, 만등대법회’가 제주시 조천읍 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전국단위의 추모재가 제주에서 개최 된 것입니다.

전국 일붕문도들이 스님의 추모재를 맞아 문도들의 발원인 일붕 서경보 스님의 생가 복원, 기념관 건립을 다시금 확고하게 다지는 행사로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행사의 의미는 국내외로 흩어진 종도들을 한 곳으로 결집하고 우의를 도모하는 등 일붕선교종의 발전과 위상을 강화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실천으로 옮겨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종단을 대표하는 여러분들이 거치면서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있었으나 하나로 융합되지 못하고 오늘까지 흐지부지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고영진] 네, 서경보 스님의 삶과 업적에 대해 이야기를 잘 들은 것 같습니다.

이번주 주말에도 행사가 많다면서요. 그 가운데 제주지역 청소년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는 퀴즈대회가 열린다면서요?

[이병철] 네 제주도청소년교화연합회가 주최하는 제22회 제주의 역사, 환경, 관광, 문화 바로알기 퀴즈대회가 오는 2일 오전 10시 제주일고 체육관에서 열립니다.

이번 퀴즈대회에는 도내 중학생과 고등학생, 지도교사와 제주청교련 지도자, 자원봉사자 등 300여명이 체육관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각 학교별 열띤 응원 속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청소년 포교를 목적으로 창립된 제주청교련이 주최한 이번 퀴즈대회는 우리문화 자강운동으로 시작해 그동안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축제로 성장해 왔습니다.

청소년들은 그동안 배운 제주에 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발휘하게 되고, 학교 지도교사들도 패자부활전에 떨어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한 장기자랑을 펼친다고 합니다.

올해로 22회 째를 맞은 제주청교련의 퀴즈 축제는 청소년들이 퀴즈대회를 통해 제주의 역사와 환경을 바로 알아가면서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고영진]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산하에 보리수어린이합창단도 첫 정기연주회를 연다면서요?

[이병철] 네 보리수어린이합창단 창단연주회가 오는 11월 2일 오후4시 제주시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립니다.

제주가 좋아 마씸 이라는 주제로 제주어로 된 다양한 노래를 들려준다고 하니 귀엽고 앙증맞은 어린이들의 무대에 가서 동심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리수 어린이합창단은 지난해 9월 9일 창립했는데요. 제주지역에서 제주불교우담바라어린이합창단, 서귀포 약천사 리틀붓다어린이합창단, 한마음선원제주지원 소년소녀 선법합창단 창단에 이은 네 번째입니다.

보리수 어린이합창단은 지난해 12월29일, 그라벨호텔에서 제1회 송년음악회 “보리수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라”라는 주제로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