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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선임기자    
출연 : 송강스님(서울 강서구 개화사 주지)
방송 : 2019년 10월 13일(일) 오후 6시~6시40분(라디오)

김봉래 : 네. 우리 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요즘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 때문에 어수선해서 참 세상이 불안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데요. 그런 세상을 바로보고 바르게 살 수 있는 지혜의 샘물이 아주 절실할 것 같습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 조용한 가운데서 아주 꾸준히 포교를 정말 열심히 해오신 분을 모십니다. 방송을 통해서 시청자, 청취들과도 만났고, 수많은 책을 내서 문서 포교에서 앞장서고 계신 분입니다. 잠시 후에 서울 강서구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을 모시고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귀한 손님 모셨습니다. 서울 강서구 개화사의 송강 주지 스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송강스님 : 반갑습니다.

김봉래 : 스님 정말 오랜만에 방송 나오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오늘 모신 것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발칸 동유럽 문화탐방기>라고 하는 책을 최근에 내셨어요. 아주 뭐 화보가 아주 뭐 정말 현장에 안 가 봐도 자세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되어 있고, 특히 스님께서 설명을 단순한 외관적인 설명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그 분들의 삶과 그 분들의 어떤 마음 이런 것까지도 다 같이 분석을 해주신 책이어서 더욱 귀하다. 우리가 사람 사는 것에서 어디 가서나 사람 사는 것에서 참 배울 게 많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먼저 이 <발칸 동유럽 문화탐방기> 이게 언제 어떤 계기로 다녀오신 건지요?

송강스님 : 제가 어린 시절, 60년대 10대 시절이죠. 워낙 제가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다행히 제가 다녔던 학교가 그 때는 국민학교라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도서에 관심이 많으셔서, 아마 한 4000권 정도의 도서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4학년 때부터 도서관장을 하면서 아동들을 중심으로 하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책을 읽다가, 나중에는 그냥 셰익스피어 전집까지 다 읽어버렸죠. 초등학교 때. 그 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이 동유럽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동유럽은 반드시 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뭐 조금 바쁜 체 하며 살다보니 그게 쉽지가 않았고 그러다가 이제 2014년에 스님들이 한번 가보지 않겠냐 그래서 어렵게 시간을 내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스님의 한 40년, 50년만의 소원이 성취가 된 거네요.

송강스님 : 그렇죠.

김봉래 : 그렇군요. 다녀오신 어떤 느낌을 이제 좀 여쭤봐야 하는데, 제가 이 책을 조금 본 것으로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한 70년대 이런 모습도 있고, 물론 현대적인 모습도 있습니다만, 뭔가 푸근한 어떤 정이랄까. 이런 게 느껴지기 때문에 요즘 분들이 또 동유럽 방문을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스님은 어떤 부분이 참 인상이 깊으셨는지요.

송강스님 : 발칸반도나 동유럽 쪽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참 문화를 사랑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우리 같은 경우는 불편하다거나 혹은 발전을 시킨다는 이유로 과거의 문화유산들을 별 생각 없이 막 부숴버렸잖아요, 말이 좀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문명을 쫓아간다고 했었는데, 지금 이제 발칸과 동유럽을 보면 물론 옛날에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많이 다르기는 한데 옛것과 지금 것들을 어쩌면 저렇게 잘 조화롭게 잘 했을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뒷골목이나 이런 곳을 다니면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그 가운데 녹아있는 역사를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동유럽을 가는 것이 아까 진행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바로 그런 문화적 측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스님들이 유지해온 사찰이나 아니면 이제 궁궐 몇 개 정도, 그 외에 보여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김봉래 : 그렇죠. 엘리자베스 여왕도 와서 안동에 봉정사인가요.

송강스님 : 결국은 그거 밖에 보여줄 게 없다는 거죠.

김봉래 : 예. 그렇죠. 그런데 스님 제가 보고 놀란 게 12박 13일인가요. 어떻게 보면 2주일이 채 안 되는 그런 짧은 기간에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해서 이렇게 하신 건데, 굉장히 심도 깊이 관찰하셨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수행자적인 안목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요.

송강스님 : 불교에서 즐겨 쓰는 그 삼매라는 용어가 있잖아요. 인도말 사마디에서 온 것인데. 아주 마음이 맑은 경지, 지혜의 빛이 가득한 경우를 삼매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제가 수행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거울에 뭔가 많이 묻어 있으면 거울 역할을 못하잖아요.

김봉래 : 제대로 못하죠.

송강스님 : 예. 사람 마음도 그 마음속에 여러 가지가 뒤엉켜 있으면 사실은 무언가를 관찰하면서 관찰하는 역할을 못해요. 마음이 텅 비어 있으면 맑은 하늘에는 그게 비둘기가 날아가든 비행기가 날아가든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여지잖아요. 그리고 시골에 맑은 개울 같은 데 있는 것은 그 안에 있던 조약돌이건 물고기건 수초건 그냥 보이잖아요. 그래서 삼매 경지에서 바라보면 일반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도 낱낱이 다 드러나는 법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마 좀 제가 쓴 책이 다른 책에 비해서 자세하다고 하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요.

김봉래 : 네. 그 많은 분들이 함께 탐방을 하시고 그리고 순례를 하시고 돌아오셨을 텐데 스님께서만 책을 내셨거든요. 그래서 뭐 물론 그동안에 SNS에 꾸준히 정기적으로 쌓고, 쌓고, 올리신 것이 축적되어서 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이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정리를 하시고, 어느 틈에 이렇게 글을 쓰셨는지 평소에도 수행과 포교로 바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을 참 어떻게 해서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도 참 궁금합니다.

송강스님 : 제가 성지순례를 처음 떠난 것이 43살 때입니다. 조계원 총무원에 국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번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굳이 꼭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안 나갔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그런 공적인 일을 그만두고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제가 분신처럼 가지고 다닌 게 사진기입니다. 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느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사진기로 찰나찰나 담을 수 있다는 거죠. 어떤 설명을 메모하거나 한다는 것이 바쁘게 다니는 여행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고 또 어떤 장면을 낱낱이 묘사하는 것도 어렵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특별하게 사진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찍어서 사진 한 장 찍는 데는 5초면 되거든요, 저는, 한 컷을 찍는데. 그런데 여행을 다녀와서 그 사진을 보면 그것이 몇 년이 흘러도 그 때의 장면과 상황이 그대로 떠오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제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뭐 그러시다보니 책에도 나옵니다만 일행하고 같이 가시다가 몰두를 하시다보니, 어쩌다 일행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는 언급도 제가 봤었는데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으셨나봐요.

송강스님 :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체 여행을 할 때 대개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빠르게 움직여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그 과정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잖아요.

김봉래 : 놓치죠.

송강스님 : 예. 그래서 이제 제가 사진기를 가지고 볼 때는 그것을 낱낱이 담아가거든요. 담다 보면은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도 아무래도 시간이 걸립니다. 근데 이제 대로변에서는 괜찮은데, 이 골목길이 많은 곳에서는 어느덧 대중이 사라져 버려요. 근데 이제 대중이 사라져도 걱정하지 않은 것이 대개 우리가 여행을 할 때는 목표 지점이 있습니다. 동유럽 같은 경우는 큰 성당이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이런 게 있죠. 그러면 사람은 안 보여도, 그 건물은 보인단 말이에요. 대개. 주변 건물들이 낮으니까. 그럼 그 건물을 향해서 가다보면 어느덧 또 다시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송강스님 : 그게 인생이죠.

김봉래 : 그렇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곳곳에 단순한 어떤 그 보고 들은 여시아문 만이 아니고 스님 나름의 안목에서 바라본 해설이 들어가 있는 것이 참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 이번에 이 책에 들어 있는 여러 군데가 많잖아요. 많은 나라 갔었기 때문에, 그 중에 한 두 곳 이렇게 인상 깊었던 곳을 중심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스님의 안목을 덧붙이신다면 어떤 스토리를 좀 전해주고 싶으신지요.

송강스님 : 제가 책에서 불교적인 어떤 분위기나 메시지 같은 것을 자꾸 담고 있는 것은 평생을 불교 수행만 했으니까 당연한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 한 곳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장소, 특히 그것이 성당이거나 종교 시설에서 많이 드러났을 거예요. 저는 뭐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편견이 거의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약간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우리 불교, 불국정토, 우리나라의 불교만 존재하는 나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봉래 : 불교가 좀 우월해. 뭐 이런.

송강스님 : 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점차 수행을 깊어지면서 신부님들하고도 친구가 되고, 목사님들하고도 친구가 되고, 원불교 뭐 심지어 유교, 할 것 없이 저는 뭐 그것이 어떤 분야든 간에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가보면 성당과 사찰이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성당의 제대 앞에서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바라보면서 합장하고 기도하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죠. 그리고 고요히 앉아서 어느덧 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으로 가기도 하고. 뭐 그게 언제든지 가능한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타 종교의 성상들을 보면서 저는 예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편견만 없어진다면.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언어나 형상에 끌려가지만 않으면 본질을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본질을 보면 종교 간의 갈등이라는 것도 그게 일어날 게 없는데, 자꾸 언어나 형상에 끌려가다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일반인들과 다를 겁니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호연기적인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김봉래 : 네. 발칸의 동유럽 그러면 헝가리의 봄, 프라하의 봄 이런 것을, 저희는 60년대 생각을 해보면 사실은 2차 대전 이후에 어떤 안정된, 한반도 같은 경우에는 6.25, 한국 전쟁 이후에 불안한 가운데 안정된 이런 삶을 살고 있지만 그간에도 사실은 2차 대전 이후에도 곳곳에서 전쟁이 있었단 말이죠.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동유럽도 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최근이죠. 어떻게 보면 최근입니다. 1991년에 슬로베니아 내전을 필두로 해서 92년에 크로아티아 내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 내전, 코소보 내전 등등 이렇게 해서 이제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제 7개 나라로 분리되었다 이런 것이 기록이 되어 있고 곳곳에 어떻게 보면 전쟁의 상은이 있을 것인데, 또한 그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상처가 남아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발칸 동유럽을 둘러보시면서 그런 상흔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으셨는지요.

송강스님 : 거기가 지금 동유럽이 대개 유럽연합이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국가 간의 알력이나 이런 것을 잘 느끼기가 이제 어려워요. 그냥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대개는. 그런데 도시 이름이라든지 이런 데서 투사들, 국가를 위해 애쓴 사람들 이름이 붙어 있다거나 이런 것들이 있고요. 그리고 전쟁의 상흔 같은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느끼기가 어려웠고요. 아마 보스니아 내전의 현장이었던 모스타르에서 그것을 가장 심하게 봤던 것 같아요.

김봉래 : 모스타르요.

송강스님 :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포탄으로 파괴된 건물들이 시내 요소요소에 그대로 있었고요. 또 심지어 사람들이 창을 열고 내다보는 아파트 외벽에도 총탄 자국이 가득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모스타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 무슬림과 천주교가 같이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형상적으로는 특별하게 드러나는 경계심이라든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봉래 : 네. 모스타르가 그게 유고 연방에 속한 나라인가요. 지역인가요.

송강스님 : 보스니아 쪽이죠.

김봉래 : 아. 보스니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곳곳에 그런 상처를 딛고 오늘 날의 어떻게 보면 평화로운 지역으로 많은 관광객들 순례객들이 찾는 그런 지역이 됐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제가 또 읽으면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말씀을 스님께서 해주고 계십니다. “지혜로운 이는 정보를 활용하고, 어리석은 이는 정보에 끌려 다닌다.” 이렇게 하셨거든요. 그 말씀 좀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송강스님 : 제가 법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일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라든지 여러 가지를 봤을 때 너무 지식 위주, 거의 교육이라든지 그런 삶 쪽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가 이제 팔만대장경만 예를 들어보자고요. 팔만대장경을 줄줄이 외우고 있으면 지식의 입장에서는 아마 대단하겠죠. 지식은 정보와 같은 겁니다. 과거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산물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고 해서 그 미래의 삶이 과거의 그 지식에 맞추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서 깨닫지 못한 사람이 팔만대장경을 다 녹음기처럼 외우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요. 아니거든요.

김봉래 : 네. 응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송강스님 : 결국은 팔만대장경 안에 있는 엑기스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노력해서 자기 자신의 빛, 다시 말해서 지혜가 나오기 전에는 그저 문장이나 단어의 뜻만 온다는 거죠. 그것은 괴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못 돼요. 머릿속에서 그냥 생각만 할 뿐 실제로 그게 삶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깨달아버리고 나면 팔만대장경 한 권도 외우고 있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경절을 질문하면 그 내용이 핵심이 다 드러나 있기 때문에 뭐든지 설명할 수 있죠. 그래서 제가 한창 공부할 때는 모든 경전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까 제가 보지 않은 경전에 대해서도 두려움도 없고, 궁금할 것도 없고, 누군가가 질문하면 막힐 것도 없고, 그냥 그대로 소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래의 삶도 자기 안에서 지혜가 나와서 비추기 시작하면 뭐 어려울 게 있냐, 이런 겁니다. 그런데 정보만 외우면서 그 정보대로 따라 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되고 헤매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거죠.

김봉래 : 저는 그런 생각도 해봐요. 그러니까 정보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데 서로 그것을 스스로가 소화를 못해서 그런 정보들이 따로 따로 놀죠. 그런데 소화를 잘 하게 되면 이 정보는 이런 맥락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주는구나를 알고, 또 이 메시지는 그렇구나 라는 것을 알면 그런 정보들이 서로 엉키거나 복잡하지 않고 정보들을 잘 정리해서 맥락들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정보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그런 생각도 해보거든요.

송강스님 : 지혜라고 하는 것이 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이 지혜라는 것을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보면 분석, 통찰, 종합, 그다음에 방향 제시 이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는 것을 지혜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많은 정보라 할지라도 그게 찰나 간에 된다고요.

김봉래 : 그 네 가지가.

송강스님 : 그럼요. 동시에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 하나하나의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서 그 정보대로 자꾸 가려고 하니까 이것과 저것이 뒤엉키고 충돌하고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해결하고 봤던 경전이, 이 경전 다르고 저 경전 다르고, 또 스님들 지도를 받으려고 갔더니 이 스님은 참선해라, 저 스님은 염불해라, 너는 절이나 해라, 너는 법문을 많이 들어라, 이게 헷갈리잖아요. 근데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한 파트에 불과하거든요. 그러니까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바라본 사람은 동서남북의 뭐가 있는지를 훤히 알아요. 그런데 산의 2부 능선, 3부 능선, 4부 능선, 심지어 9부 능선까지 올라가는 사람도 단면만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상에서 바라본 것을 지혜라 한다면 정상에 오르기 전에 보는 것들은 정보다. 그래서 정보만 모든 것인 줄 알고 따라가면 결국은 자기 삶을 괴롭게 만들어 버려요.

김봉래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송강스님 :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발현되어야 한다는 거죠.

김봉래 : 결국은. 네. 또 그것을 위해서 저는 그런 말을 가끔 하거든요. 그러니까 1층, 2층 없이 3층은 없다. 어떤 사람들이 3층이라고 하는 궁극의 지혜를 원한다고 해서 1층, 2층의 어떤 노력은 없이 3층만 얻을 수는 없다.

송강스님 : 수행이 필수죠.

김봉래 : 수행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리 가보기도 하고, 저리 가보기도 하면서 어떤 길에 지도를 좀 더 뚜렷하게 자기가 아는 거라고 본다면 헤매지 않을 수 있거든요. 가보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지리를 다 획득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일정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저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 여쭤볼게요. 요즘 탈종교화 시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뭐 종교가 인구가 줄고 점점 어려워지지 않겠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고 특히 불교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거든요. 지금 개화사에서 어떻게 신도들과 같이 공부하고 스님 지도하고 계신지 그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송강스님 : 탈종교화시대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유럽에서 그랬고요. 미국 같은 곳에도 그랬고요. 그 이야기는 우리가 현실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종교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고 세속적인 타협이라든지 세속을 따라가려고 한다든지 뭐 이런 거죠. 좀 뼈아픈 이야기기는 한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템플스테이 같은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왜 그러냐, 저는 10대 때 이미 4박 5일 동안 수행대회를 하면서 잠을 거의 못자고 또 7000배를 했습니다. 4박 5일 수련 동안에. 근데 그 수련대회를 거친 사람들이 지금 꽤 많은 숫자가 출가를 했고요. 그 때 영호남과 부산을 아우르는 수련대회였거든요. 고등학생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뭐 동대 총장도 나왔고 어떤 모임을 끌고 가는 스님들도 수두룩해요. 왜 그러냐. 제가 막연히 알고 있던 그냥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고 있던 그런 사찰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제가 그 수련대회를 하면서 아 스님들의 삶은 이러하구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능했던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의 템플스테이를 보면 어떨까요. 제가 불교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템플스테이 대부분 갔다 왔어요. 어떠냐, 뭐가 남았냐, 한 일주일은 뭔가 좀 정신적으로 괜찮은 것 같다 이야기해요. 근데 좀 지나고 나면 뭐 갔다 왔는지 뭐 안 갔다 왔는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당연한 거죠. 왜냐하면 불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킨다든지 친근감을 갖게 한다는 그 뜻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가서 개울물에 발 담그고 노래 부르거나 뭐 아니면 마음 집중, 요즘은 그것을 명상이라고 그러더군요. 명상이란 말은 사실 불교적으로 보면 별로 불교의 핵심과는 맞지 않습니다. 용어 자체가 생각을 가라앉힌다는 말이거든요. 불교는 생각을 가라앉히는 게 아니거든요.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해도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거든요. 근데 무슨 생각을 가라앉혀요.

김봉래 : 그러니까 이제 집중과 관찰 두 가지로 나눠진다해서 옛날 말로 하면, 지관 수행을 한다 이렇게 했었거든요.

송강스님 : 그러니까 명상하고 지관은 다른 거예요. 그게 그래서 자꾸 명상 명상 해가지고 발끝에 집중해라, 코끝에 오는 공기에 집중해라. 아니 평소에 공부할 때도 집중하면서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는 일상생활과 다를 게 별로 없어요. 다만 공기가 좋고 맑고 고요하고 이런 거죠. 거기 가서 2~3일 동안 놀다 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불교가 얼마나 깊어질 까요. 오히려 템플스테이를 한 두세 번 갔다 온 사람이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스님 저 불교 이제 다 이해했습니다. 어떻게요. 그러면 스님들은 뭐한다고 몇 십 년 동안 수행을 하죠. 웃기잖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서구의 종교건 동양의 종교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높이를 낮춰버린다. 그러니까.

김봉래 : 하향평준화.

송강스님 : 아까 뭐 저랑 차 한 잔 하시면서 하향평준화 말씀하셨죠. 왜 자꾸 그렇게 하려고 해요. 그런 것들은 종교가 하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다 해요. 예컨대 요즘 조계종에서도 복지라는 말을 자꾸 하더라고요. 승려복지. 아니 복지가 그렇게 걱정이었으면 왜 출가를 합니까. 밖에서 돈 벌어가지고 살면 되지. 왜 밖에서 복지한다고 스님들까지 그렇게 하죠. 저는 사찰이 존재하고 거기에 선지식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최상의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왜 정신적인 편안함을 주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복지 아닙니까. 우리가 물질이 부족해서 지금 힘들어 합니까. 저는 국민소득이 한 50달러부터 3만 불까지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 표정을 보면 옛날에 내가 어릴 때 봤던 사람들의 표정만큼 행복한 느낌이 안 들어요. 그럼 물질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출가한 스님께 무슨 복지를 하겠다는 거예요. 스님들이 복지 대상이 될 정도로 스님들이 하찮아져버린 겁니까? 형편 없어져 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그 종교는 없어지겠죠. 탈종교의 해법은 우리가 근본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절실할 때 무언가를 나눠줄 수 있느냐 입니다. 그렇게 되면 절이건 성당이건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괴로움도 크잖아요, 많잖아요. 그 문제를 들고 해법을 찾아서 가겠죠. 스스로가 뭘 그것을 걱정합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돼요.

김봉래 : 사실 우리가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가 있어야 만이 또 개인의 행복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개인과 사회가 둘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지금 보면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또 세계적으로 그렇고 어떤 대결, 대결 의식, 대립, 차이보다는 차별, 뭐 이런 것들 때문에 굉장히 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도 사실은 저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한 쪽에서는 남아서 병들고 다른 한 쪽에서는 모자라서 병드는 이런 어떤 불균형이 심화되어 있는 상황인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 적절히 배분되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송강스님 : 그게 이제 불교에서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소위 연기라고 하는 말을 대부분 줄줄이 외우고 있어요. 연기법에 대해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근데 실질적으로 그 안에 담겨있는 세상의 이치를 정말로 체감하고 있느냐는 거죠. 체감을 못하니까 대립이 생기고 또 빈부 격차가 생기고, 빈부 격차의 대립 관계를 보니까 뺏어서 나눠주려고 하고. 아니거든요. 팔만대장경을 저는 다 봤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승가대학 다니면서 다 봤는데, 어디에도 부처님이 뺏어서 나눠주라는 말씀 한 마디도 없어요. 부처님이 얼마나 많은 왕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공덕을 쌓아라,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 된다, 이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재벌회사 같은 경우도 큰 기업들도 그 기업들 스스로 복지를 할 수 있게끔 서포트를 해주면 된다는 거죠. 그게 뭐가 해야 될 일이냐. 국가가 해야 될 일이라고 보는 거죠. 너희들에게 이런 것을 할 테니 너희들이 복지를 펴 나가라, 그러면 자기들도 자긍심이 생기잖아요. 자꾸 도둑놈이라고 하고 뺏으려고 하니까 기분 상하고, 아니 우리는 놀고 돈 벌었나 이런 생각도 들고, 골만 깊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적 입장에서 살피다보면 결국 거기에 해법이 있다.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그 안에 해법이 다 있어요. 사실은.

김봉래 : 조계종 총무원에서도 오랫동안 소임을 맡으시면서 종무행정을 하셨고, 또 저희 불교방송을 비롯해서 많은 방송도 하시면서 또 불자들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책도 많이 내주시고 이렇게 또 미래 비전도 만드시고 이렇게 하는데, 우리 불교계가 뭔가 지금 더 이렇게 뭐랄까 한 단계 도약을 해야 된다 이런 이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지금 불교계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지요.

송강스님 : 앞에서 말씀 드린 내용과도 연관이 되는데요. 이제 제가 조계종 국장을 햇수로는 8년 정도 했는데, 등 떠밀려 들어가서 한 일입니다. 제 출가 전 생각에는 어떤 그런 직책을 맡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지만 이왕 맡은 거니까 그것도 수행이고 그것도 또한 포교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을 뿐이고. 그 다음에 제가 부처님의 제자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롤 모델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삶이 제 인생에 있어서 거울 같은 거죠. 그러니까 저는 아마 30대 후반까지는 두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어요. 출가수행, 어떤 수행이든. 그 이후에는 지금은 한 4시간 정도 잡니다. 자면서 어떤 형태의 포교든 교화든 혹은 상담이든 다회든 이렇게 하면서 하는데, 모든 스님들이 근본으로 돌아가서 그와 같이 된다면 뭘 다른 것을 걱정할 게 있으랴.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가지고 있다. 그 짐이 견딜 수가 없을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테고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지식이 있다면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왜 총무원이나 아니면 포교원이나 교육원이 저렇게 커져야 하는지 나는 이해를 못해요. 왜냐. 제가 근무하던 아날로그 시대에는 스님들과 종무원이 합쳐서 한 50여명이 됐습니다. 그 때는 신도들도 많았고 스님들 숫자도 많았고 그래요. 그런데도 능히 다 필기로 업무를 보면서도 해결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그냥 버튼 하나면 탁탁탁 해결이 되잖아요. 그런데 왜 키워가며 난리를 부리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근본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거대한 조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자. 마무리 할 시간인데요. 그러면서 저희 그 불교방송을 비롯한 불교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 그 밖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송강스님 : 제가 뭐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저는 어느 자리에서 항상 마지막 말을 이렇게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종교마저도 필요 없는 평화롭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오늘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발언이면서 소원이기도 합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오늘 <발칸 동유럽 문화탐방기> 때문에 스님을 모셨는데 앞으로 저희들이 마음의 양식으로 간직하고 현실에서 실천해야 될 중요한 방향 말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송강스님 : 감사합니다.

김봉래 : 네 고맙습니다.

네. 여러분 오늘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 근본으로 돌아가자, 송강스님의 말씀 새기면서 오늘 순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저녁 시간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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