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BBS 라디오 아침세상-파워인터뷰] “서예. 치매예방에 도움”

● 출연 : 서예가 류재학 선생

● 코너명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19년 10월 10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 진행 : 정한현 기자

▷ 앵커멘트 : 흔히 서예라고하면 화선지에 붓으로 쓴 전통서예를 떠올리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서예의 종류와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회화와 탁본, 전각, 캘리그라피 등 현대미술과 접목한 작품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요.

파워인터뷰, 오늘은 서예가 문강 류재학 선생을 정한현 기자가 만나 현대 서예의 흐름 등을 짚어봅니다.

▷정한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서예가 문강 류재학 선생을 모셨습니다. 현대서화와 실용서예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분으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우선 청취자들에게 인사말씀부터 해 주시죠.

▶류재학 선생 :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서 서예활동을 하고 있는 문강 류재학입니다. 현재 대구에서 응용서화연구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한현 : 네.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강 류재학 선생에 대한 소개를 잠시 드리겠습니다. 1955년 대구출신이시고, 영남대와 홍익대에서 동양화와 미술사학을 전공하셨습니다. 한국각자협회 자문위원, 대구서학회 회장을 역임했구요. 30여년간 영남대와 경북대에서 교수로도 재직하셨습니다. 현재 대구 응용서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간 대구는 물론이고 서울 오사카 동경 중국 심양 등지에서 2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무엇보다 한국서예와 서학의 발전을 위해 오랜기간 노력해오신 분입니다. 차근차근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다보니까 선생님께서 특히 서예와 서학의 올바른 흐름과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데요.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류재학 선생 : 제 1955년생입니다. 6.25 동란을 겪고 난 베이비부머 1세대거든요. 그때는 예술에 대한 관심을 둘 수가 없었죠. 그래서 서예연구가 확실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자라나며 전통서예를 접하게 된 거죠. 무작정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하고자 학문적 관심으로 예술적인 것을 겸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한현 : 선생님께서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된 후 이제 시간이 꽤 흘렀는데요. 지금의 한국 서예와 서학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류재학 선생 : 1950년대 이후 경제개발이 어느정도 되고, 1970.80년대 서예가 최고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컴퓨터가 도입이 되고 한자교육이 등한시되면서 침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서예가 양적으로 굉장히 발달한것에반해 질적으로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죠. 질적이라는 것은 학문적인 것을 말하는데 70.80년대 상승분위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서예과가 다섯 군데가 생겼어요. 다섯 군데가 생기면서 연구가 겸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서예교육이 계속 진해되지 못하고 5곳 가운데 3곳이 폐과가 되는 그런 실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학문적인 꽃을 피우려하다가 조금 숙진상태로 되어있어 안타깝습니다. 이유는 조금 있다가 실용서예와 관련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한현 : 선생님께서는 특히 서예가 지닌 문자의 한계성을 벗고, 여러 실험적인 기법들을 많이 도입하셨습니다. 특히 회화 등 현대미술을 접목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예의 폭을 넓히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류재학 선생 : 제가 서예와 가장 가까운 동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동양학과를 졸업해서 회화를 공부했기 때문에 제가 해왔던 서예와의 접합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실 서예와 회화는 두 개가 아니고, 전통서화라고해서 한 몸이었습니다. 이것이 20세기 들어 분리된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점을 착안해서 그림과 글씨를 다시 일체화시키는 작업을 하며 회화를 서예에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조각.공예.판화 이러한 다양한 미술분야와 서예와의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다..그래서 미술대학으로 진학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한현 : 그리고 실용서예 1세대 작가로 많은 업적과 논문도 많이 발표하셨죠. 다소 생소한 개념이긴합니다만 실용서예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류재학 선생 : 실용이라는 것은 현재 쓰인다는 것이죠. 우리 실생활에 글씨가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며 개척한 것이 실용서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실용서예와 전통서예를 따로따로한 것이 아니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했다고봅니다. 그 시작은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서각을 일찍이 했었습니다. 제가 서각을 하다보니까 주변에 한의원하는분들이 현판을 하나 새겨달라고하잖아요. 현판을 새겨 달아준거죠. 그게 실용현판이거든요. 그것이 간판으로 발전이 되고, 싸인으로 발전이 되고해서 여러 가지 글씨가 응용이 되는 이른바 응용서예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봅니다. 우리생활에 글씨가 들어가는부분은 사실은 너무나 많습니다.

▷정한현 : 가족이 서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잠깐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류재학 선생 : 저희 큰누나가 대구에서는 유명한 서예가입니다. 제가 막내고..누나의 영향을 받아 큰 자형이 글씨를 같이 썼었고, 직업적인 서예가는 아니고 경찰관이었습니다. 작은 누나도 큰 누나와 같이 글씨를 썼습니다. 작은 누나도 서예가입니다. 국전 특선까지 하셨구요. 저의 형수님도 서예를 하신분이시고.. 그렇게보면 여러 사람이 서예를 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직업적인 서예가는 큰 누나, 작은 누나, 저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정한현 :서예는 몸과 마음을 바로 잡는 수양의 일종으로 예전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받아 왔습니다. 과거엔 서예학원도 많고 학생들의 관심이 컸던 것에 비해 요즘은 연령이 높아지고, 서예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못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힐링’이 각광받으면서 서예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하는데, 서예를 배우고 싶은분들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류재학 선생 : 서예가 90년대까지 붐을 일으켰거든요. 하지만 왜 발전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만 특히 서예를 전공을하면 보통 대학을 졸업하면 25살 정도 되죠. 25살 청년이 현실적으로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서예는 오랜기간의 수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젊은시절에..특히 결혼적령기 시절에 글씨를 써서 생활을 유지해나간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는거죠. 사회가 준비가 안돼 있었어요 사회도 안돼 있었지만 학교에서도 준비를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졸업하고 난 뒤 학원정도이지 그 외에는 직업전선이 없었어요. 교직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되니까 막상 서예과 나와서 살아갈려고하니 너무 힘들다는거죠. 그리고 대학에서는 대학의 가치를 취직률로 보잖아요. 그래서 취직률이 약한 곳은 폐과를 시켜라..이렇게되니까 서예과가 폐과가 된 것입니다. 서예과는 취직한다기보다는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하고는 멀어서 서예가 침체를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주위의 서예학원이 문을 닫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고, 다만 지금 50대 이후분들 중에서 전통적인 서예에 대한 인식이 있으신분들, 이런분들이 지금 서예학원을 찾고 있는데 학원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여러 기관에서 서예 교육을 담당하고 있죠. 새마을회관이나 농협, 동사무소 ..주위를 찾아보면 이른바 문화센터라는 곳에서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서예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현재 워낙 각박하고 빠른 세상에 정신적인 면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연세가 있으신분들에게 서예가 여러 가지측면에서 바람직하다..이런 생각이 들고..그리고 특히 요즘 치매문제가 나오는데 치매예방에는 서예만한 것이 없습니다. 머리를 쓰기 때문에 그렇지요. 예를들면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이라고하면 그 글자를 알아야 하고, 문장의 뜻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쓰고 손을 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후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서예기 때문에 나이드신분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사회적인 교육이 잘 받혀주지 못하고 있다고봅니다.

▷정한현 :문강선생은 불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대구 보현사에서 ‘서예 사경반’을 강의를 맡으셨죠. 서예 사경은 또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싶은데 서예 사경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요.

▶류재학 선생 : 제가 글씨를 쓰다보니까 서예정신중에서 불교정신이 한 절반정도를 차지합니다. 유교도 있고 도교도 있지만...그래서 제가 글씨를 계속 썼고, 어머니 불경소리를 듣고 잠을 잤어요. 그래서 저는 불경의 그 리듬을 어머니 무릎에서 익혔어요. 그러한 인연으로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 불교학생회에 들어갔습니다. 1학기때 대구 보현사에 와서 3개월간 기초교리강좌를 들었어요. 보현사와 인연이 길죠. 1975년때니까 45년쯤 됐잖아요.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때 지금은 굉장히 유명해졌지만 선산 도리사에 가서 3천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불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열심히 절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예술적 받침이 된 것이 불교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작품속에서는 불교를 소재한 작품이 많습니다. 예술적인 불교작품을 해오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사경이라는 것은 옛날 그 불경을 적는 작업을 할 기회가 없었어요. 최근 대구 보현사에서 서예 사경반을 하면 어떻겠느냐...저에게 제안이 들어와서 기꺼이 응답을 해 이제 막 시작을 하는 중입니다.

▷정한현 : 네. 오늘 문강 선생님 모시고, 서예 관련 얘기 나누면서 현대에 맞게 진화하는 서예가 앞으로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끝으로 한국 서예와 서학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듣고,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류재학 선생 : 사실 제가 4.50년간 작업을 26회 전시를 통해 전시는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할 계획은 경험해왔던 여러 가지 이론적인 것을 후학들에게 전수를 했으면하는 생각이들어 일부는 책으로 만들어내고싶고, 그 외에는 요즘 영상시대기 때문에 영상으로도 제작을 해서 적응을 시키자..미래지향적인 그런 교육도 제가 실행을 하고 있는 상태에 있고, 서예가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용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응용서화연구소에서 실용서화에 대한 일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업을 통해서 서예의 현실적인 적응, 일반사람들의 서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3가지 관점에서 시간을 할애하고자 합니다.

▷정한현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파워인터뷰, 지금까지 현대 서예가 문강 류재학 선생을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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