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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CJ 맏아들 변호인단의 '읍소전략'
유상석 기자 | 승인 2019.10.07 20:12

"아들의 배꼽이 흔들린다
세상은 모든 생명의 자치독립국가이다
타율이 허용되지 않는, 눈먼 자율의 도시
(중략)
금지된 허가가 어둠에 집 짓는 사이
끊겨진 선을 또다시 잇는 건 어머니의 몫
밤새 촛불을 바친 무릎
하나하나 옛 길을 찾아간다
날선 칼에 수없이 절단되어도
포근하기만 한, 깊기만 한 어머니 눈물
흔들리지 않는 손이 탑이 된다
아들은 언제나 죄가 없다
어머니의 그늘은 여전히 따뜻하다"

변호사이자 숭실대 법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오시영 시인의 시 <무료변론> 중 일부이다.

인천지법에서 수의를 입은 채 고개 숙이고 있는 CJ 이재현 회장의 맏아들 선호 씨의 재판을 취재하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재벌가 3세들의 마약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선호 씨는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세관 당국에 소위 말해 '딱 걸렸다'. 하필 같은 혐의를 받은 다른 집 3세들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상황이라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게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재판을 받은 다른 집 3세들과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선호 씨는 현직 회장의 맏아들이다. 후계자로 유력한 인물이다. 법정에서 본 검사의 표정에서도 "이번에야말로 무언가 보여줘서 지금까지의 망신을 만회하겠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선호 씨도 아버지 이재현 회장에겐 어쩔 수 없는 '사랑하는 맏아들'이었나보다. 선호 씨에겐 화려한 '변호인 군단'이 붙었다. 대전지검 특수부장 출신의 김태우 변호사. 창원지검 특수부장 출신의 홍기채 변호사. 그리고 서울중앙지검 특수 1,2,3부 검사로서 이 회장 자신을 수사했던 이인걸 변호사도 '선호 씨 지키기'에 나섰다.

시 <무료변론>에 등장한 '어머니'는 '아버지'로, '촛불'과 '무릎'은 '화려한 변호인 군단'으로 대체됐다. 어쨌든 이런 화려한 막강 변호인 군단도 '읍소 전략' 외엔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일까. 변호인단은 선호 씨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다는 점, 현재 유전병을 앓고 있다는 점, 그래서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 씨의 아내가 만삭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기자의 기억에 '아내'라는 단어는 세 번 나왔다. 변호인의 입에서 2번, 선호 씨의 입에서 한 번. 혐의를 인정하되, 형량을 깎아보겠다는 전략이었을까.

의외로 재판은 복잡한 법적 다툼 없이 끝났다. 선호 씨가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첫 재판이 곧 결심공판이 됐다. 이제 이달 말, 선고만이 남았다.

우려되는 점은, 국민의 법감정에 비해 약해 보이는 판결이 나올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이 법리보다는 감성을 내세웠다"는 식의 논란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불필요한 논쟁과 사법불신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판부의 치열한 고민이 판결에 반영돼야 할 것이다. 10월 말에 있을 1심 판결을 기다려 본다.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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