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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과 함께합니다. 
법현 스님은 중앙대 재학시절 대불련 서울 지부장을 맡아 출가를 결심했고, 이후 태고종 총무부장과 사회부장, 부원장을 역임했습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국장과 상임이사를 지낼 당시 템플스테이를 처음 기획했고, 이웃 종교인들과도 활발히 소통해 '종교계 마당발'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은평구 열린선원 원장과 일본 나가노 금강사 주지를 맡아 공감가는 법문과  '저잣거리 포교'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 출연 : 법현 스님 / 열린선원장, 일본 금강사 주지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네. 열린선원 원장이신 법현 스님 모셨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법현 스님 :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강동훈 : 제가 오늘 열린선원장으로 모신 것보다는 일본 금강사 주지도 역임하고 같이 계시죠.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강동훈 : 엊그저께 광복절이었는데, 여러 가지 지금 불편한 상황에서 광복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애청자, 우리 유튜브로 시청하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법현 스님 : 예. 안녕하십니까. 우리 BBS 불교방송, 그리고 유튜브 우리 불교방송을 시청하시는 여러 분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축원 드리겠습니다. 

△강동훈 : 자 우리 법현스님 하면 우리 BBS 불교방송에 우리 라디오, TV에서 자주 뵙던 분인데, 이렇게 뉴스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거의 이례적인 것 같습니다. 

▲법현 스님 : 네. 뉴스파노라마나, 또 여러 군데 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집중 대담에 나오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지난 주말인가요. 일본에서 그 마츠시로 대본영 건설 희생자 추도식을 봉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법현 스님 : 네. 

△강동훈 : 마츠시로 대본영 사건 우리한테는 별로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사건 같은데, 어떤 내용입니까?

▲법현 스님 : 우리 8월 10일 날 오전 11시에 여러 단체하고 함께 봉행을 했습니다. 마츠시로는 일본 사람들이 제국주의 말기쯤에 천황과 정권의 실력자들, 군부 실력자들이 안 죽었으면 좋겠다.

△강동훈 : 그러니까 일왕들 거의 1945년, 해방되기 일보 직전인 거죠.

▲법현 스님 : 해방되기 직전입니다. 피신처를 마련해서 대개 일본이란 나라가 섬, 커다란 섬나라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보다 크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물이 없는 곳을 찾아서, 찾은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바위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이 마츠시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특이하게도 그냥 일반, 뭐라고 할까 평지입니다. 평지인데, 도로 밑에가 전부 다 바위입니다. 바위를 10Km 이상 뚫어 가는데 다 바위인거죠. 그래서 바깥에서 물을 부어도 안에서만 잠그면 수공에도 괜찮고, 또는 높은데서 폭탄을 떨어트려도 괜찮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늦게 시작했다고 그럽니다. 1944년 11월 11부터 시작을 해서 45년 8월 15일 날 그 사람들이 항복을 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 근 9개월 이상을 그것을 하는 데, 일본 사람들도 많이 노동에 시달렸지만 당시 조선인, 우리 한국인들이 

△강동훈 : 징용 간 조선인들이

▲법현 스님 : 네. 징용, 징병 다 끌어와서 군인의 형태든 일꾼의 형태든 거기다 다 집어 넣어가지고, 요즘 같은 장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주 힘들게 그렇게 하고, 그 공사 과정에서도 잘 안 먹이고, 안 재우고, 그리고 때리고 그래서 중간에 죽은 분들 또 이제 전쟁이 끝나니까 이 사람들에 대해서 대개 이제 우리는 지금 와서 역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피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항상 전후 처리를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누구 잘잘못을 가리고, 거기에 증거가 없으면 없을수록 좋기 때문에 그래서 또 희생당한 분들도 있고, 마츠시로라고 해서 일본 나가노에 마츠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데가 송본이라는 마츠모토가 있고, 송대라는 마츠시로가 있는데 이 마츠시로입니다. 그 마츠시로의 상산이라는 우리말 발음을 조잔이라고 일본 사람들은 하던데, 거기에 주로 통신, 방송, NHK라든가 이런 방송 시설을 놓을 것을 그 지하에 두고, 또 다른 두 곳에는 천황가라든가 군대 통신, 아니 저 지휘본부 이런 데가 들어가도록 마련을 했다고 합니다. 

△강동훈 : 대본영이라 하면 일본에서 보면 이제 그 본토에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본부 형태가 될 것이고. 

▲법현 스님 : 그렇죠.

△강동훈 : 그리고 일왕 일가를 위한 소위 말하는 방공호 및 또 전반적인 통비 장비 시설이 같이 포함된 그런 시설을 건설하다가 희생된 우리 조선인분들이네요.

▲법현 스님 : 우리 같으면 청와대에 있다는 NSC 그 전에는 지하 벙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만, 국가안전보장 지휘본부죠. 그런 것을 만드는 데 조선인들이 희생을 많이 당했고.

△강동훈 : 그것을 추도식을 한 거고요.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강동훈 : 그런 것을 어쨌든 우리 과거의 조선인들도 했지만 같은 일본인들도 희생을 당했으니까, 일에서 관심을 갖고 국영 방송 NHK도 보도를 했던 건데.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 희생비는 24년 전에 비를 세울 때 조선인들을 위해서 세웠고요.

△강동훈 : 누가 세웠죠?

▲법현 스님 : 그 거기에 조선인들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이제 그 일본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우리 대한민국과 가깝게 보이는 민단 쪽 분들이 있고, 지금 북한과 가까워 보이는 조총련 분들이 있는데, 그들이 연합해가지고 그것을 세웠고, 당시에 일본 천태종 쪽 하고 정토진종 쪽의 스님들이 약간 참여를 했던 모양입니다. 

△강동훈 : 예. 그런데 그 스님께서는 그런 이 마츠시로 대본영 건설 희생자 추도식에 어떤 인연으로 참가를 하게 되신 건가요?

▲법현 스님 : 사실은 그 제가 나가노에 마츠시로에서 한 1시간 정도 거리 떨어진 곳에 아즈미노시 호다카 아리아케 라는 곳에 있는 금강사 주지입니다. 2년 전에 주지를 맡았는데, 거기도 1977년 도에 마츠시로 등에서 우리 조선인들이 희생을 굉장히 많이 당했고, 그분들의 영혼이 구천을 헤매고 계시다는 판단과, 후손들이 그런 보상 받으면, 배상이나 보상을 받으면 좋은 삶을 살 텐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위로하는 도량을, 부처님의 가피를 좀 빌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한 재일 교포들이 1977년도 발의를 해서 금강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강동훈 : 금강사의 창건 연대기가 그렇게 되는 거군요. 

▲법현 스님 :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정도 뒤에 불자들이 또 한국에서랑 태고종에 등록을 했거든요, 사찰 소속을. 그래서 그 성금을 모아서 국회의원들도 요즘 대한항공, 또는 한진 이쪽 분들까지 협력을 해서 종을, 커다란 대종을 

△강동훈 : 범종을.

▲법현 스님 : 예. 범종도 특이하게 이름을 선화종이라고 그래서 잘 교화한다고 하는데, 그 나가노가 젠코지라는 선관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게 한국 백제 성황이 아미타 삼존불을 보내줘서 성립된 것이고 일본의 제1호 사찰, 일본 불교 역사 이전 사찰이어서, 어느 종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국가 사찰입니다. 그렇게 아미타 부처님 이야기와 우리 한국의 이야기가 배어있는 곳이 나가노인데, 우리 금강사도 그렇게 희생된 분들을 부처님, 또 특히 아미타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극락왕생해서 나라도 좋아지고, 후손들도 좋아지기를 발원 하는 사찰인데요. 제가 이제 행사를 우리 그 주지를 맡아가지고 교화활동을 하면서 이리 저리 관계된 분들을 만나다가 나가노 현청과 일정한 사업을 하는 불자를 만났는데, 주로 지금 민단과 조총련 쪽에 많이 있지만 민단 계신 분들은 대한민국과 인연을 깊게 맺지만, 일본에서 잘 살기 위해서 일본화하는 노력을 많이 해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 분들이 많고.

△강동훈 : 2세, 3세는 더더욱 그렇고요. 

▲법현 스님 : 그리고 총련 사람들은 1945년 해방 이후에 그 2세들 교육을 위해서 조선 학교를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잘 보면 알 수 있는데, 1975년 이전은 북한 쪽이 경제가 좀 좋았고, 우리 남한 쪽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경제가 어려워서 도움을 못 주고 또 북한에서는 그 김일성 주석이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경제도 좋으니까 도움을 주다보니까, 조총련이 원래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지원을 받다보니까 그런 경향인데, 그들하고 이제 만나면서 우리 불교는 그 주의와 진영도 관계가 없고, 모든 중생을 하나로 끌어 않고, 또 그들이 부처가 다 될 수 있는 거니까, 또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만나는 데, 10일 날 늘 기념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우리 한국에서도 또 주지를 맡아야 되니까 칠석 백중 기간에 겹쳐서 저는 참석을 못하고, 일본은 거의 모든 사찰이 특히 일본 사찰은 그렇고, 우리 교포 사철도 그렇고, 아닌 곳은 있지만, 저희 금강사는 종교 법인법에 의해서 이사회를 구성해서 대표 이사 같은 분을 대표역원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역원 되는 우리 거사님과, 저 대신 기도 정진하는 원주 대진스님이 대표로 참석해서 염불도 하고, 인사말씀도 하고 우리 불자들 같이 가고 그렇게 했습니다. 

△강동훈 : 사실 그 일본에서 그렇게 많이 희생당한 것은 큰 대형사건, 뭐 예를 들어 관동 대지진이라든지 뭐 흔히 아는 조선인탄광이라든지 이런 정도를 알고 있는데, 사실을 일본 전역에 전쟁 당시에 우리 많은 조선인 피해가 있었고, 외국에서도 굉장히 많았잖아요.

▲법현 스님 : 그럼요.

△강동훈 : 그런 것을 74년이 지난 지금에서 추도식을 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 그러면 금강사, 이 부분에서 그 사찰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인연 자체가 그런 분들을 많이 추도하기 위한 그런.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강동훈 : 거기 그 외에 그분들 외에 또 추도 행사가 뭐 있나요? 금강사에서.

▲법현 스님 : 어. 그분들 외에 추도는 저희가 또 역시 마츠시로 희생자를 위령하기 위한 위령탑 건립위원회를 조성을 했다가, 아직 못 하고 있어요. 그리고 금강사가 지난 번 제가 주지 진산할 때 BBS 불교방송에서 TV로도 보도를 해주셨지만, 경매에 넘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 불자 지금 92세 되시는

△강동훈 : 신도 회장.

▲법현 스님 : 회장님이 그것을 산거죠. 산 게 뭐 막은 건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그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근데 제가 지금 2년 만인데. 지난 4월 6일 날 처음 보고 4월 7일 날 두 번 본, 일본 천태종 후지산 본문사라고 하는 그 절, 주지 스님이 요코하마에 절을 운영하고 있는데, 본인이 또 다른 천황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 분이 절에 내려오는 수백 년 넘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세 과 중에 하나를 저희한테 기증을 해서 지금 금강사에 모시고 있어서. 내년 양력 4월 8일 날 그 친견법회를 봉행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강동훈 : 우리로서는 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인데, 일본은 양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4월 8일 날.

▲법현 스님 : 겸해서. 그래서 내년에 가실 분들도 하남에 상불사에서 신도들이 한 40여 명 오시기로 했고, 우리 북한산의 삼천사 주지 스님도 참석하셔서 좋은 법문을 내려 주실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러 분들을 모시고 이런 일들을 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지금 일본은 그렇지만 어찌됐든 간에 열린선원 주지도 하시면서 금강사도 자꾸 소위 말하는 왕래가 있는 것이죠.

▲법현 스님 : 네. 저는 일본 금강사에 매달, 주로 월 말을 끼지만 필요할 때는 또 바꿔서 매 달 가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16일 날 백중 지나고 16일 날 가게 되지요. 

△강동훈 : 자. 스님. 지금 현지 일본의 분위기, 지금 현재 한일 관계가 일본에 어떤 화이트리스트에서 목록을 저희를 제외하면서 사실 경제보복이라고 우리 정부는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바라본 이런 사건은 어떤지, 일본 현지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던가요?

▲법현 스님 : 이제 일본 현지인들은 대개 일본 사람들은 속내를 많이 드러내지 않고, 일본에서 이렇게 유래된 말 중에 하나가 왕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왕따가 조직의 룰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겁니다. 요즘은 상당히 좋은 이미지라고 볼 수도 있어요. 룰을 안 지키는 사람을 배제하는 거니까. 그런데 과거에 이제 사무라이들이 잡고 있을 때는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을 그냥 죽여 버리는 그런 것들 때문인지 몰라도 예를 들면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어도 외국인들한테는 그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묘하게 너무 많이, 자기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든, 박근혜대통령이든 말로 안 하고 욕을 해버리는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전체적으로는 국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옛날 역사를 반성하는 것과, 미래 역사를 잘 가꿔가는 것이 그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박정희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 일부 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법률적으로 정치 행정적으로 풀어가고 그다음에 미래를 위해서는 보다 더 좋은 관계를 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한국 별도로 하더라도, 일본도 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전향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 추모 법회, 추모식을 하는 분들도 그런 분들이죠. 

△강동훈 : 스님이 우리 이제 과거에 불교 종단 협의회, 큰 보직도 맡으셨는데, 한일불교도 대회를 번갈아 가면서 열고 있잖아요.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강동훈 : 그 한일불교도 대회 지도자들이 일본 내에서는 일본이 또 불교도 상당히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 어떤 정신적 지도자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기대치도 있을 것 같은데.

▲법현 스님 : 그것은 천천히 노력을 해야 하고, 다만 이제 항상 공식 기구가 만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불교종단협의회나 총무원이나 이런 공식 기구가 움직이는데, 일본은 종파 불교라고 해서 예를 들면 우리말로 하면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관종 이게 다 다르지만 우리는 연등 축제를 함께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연등 축제를 종단적으로도 함께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럴 만큼 아주 개별적인 그 독특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강동훈 : 한국 불교하고는 좀 다르군요. 

▲법현 스님 : 다릅니다. 그래서 종단이나 아니면 범불교 대표권을 가진 단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고, 제가 예를 들면 탈핵 운동을 한다거나, 인권 관련 모임을 갖는다든가 그럴 때 보면 그런 모임을 갖는 별개의 스님들이 있죠. 제가 이번에도 가서 만나게 되는데 일본의 혼문지 스님 계통의 스님들이 지난 8월, 7월 18일 날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가서 만났는데 저희 열린선원에도 와서 제가 염불을 해줬더니 자기들도 염불을 하고 그러면서 시장 안에 있는 절은 일본에서 없다. 아주 굉장히 감동스럽다고 하면서 스님이 계시는 일본 절도 꼭 방문하고 싶다고 그래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아. 그렇습니까. 스님 저희 열린선원 이제 시장 2층에, 시장에 있잖아요. 스님 같은 대중포교에 굉장히 원력을 세우시는데. 그 일본 우리 금강사 같은 경우에도 우리 한국인들이 세운 사찰이지만, 신도들도 일본인들이 있습니까?

▲법현 스님 : 거의 없습니다. 아까 일본인들은 자기 종파 색깔이 너무 뚜렷하고 그리고 이제 사무라이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런 분들이 그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식하지 않기 때문에 천황을 세워가지고 나라를 대표하게 하고, 스님들이 행정을 맡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찰이 동사무소 같은 역할을 해서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뒤 까지를 사찰에서 다 행정처리를 하면서 절마다 납골당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어 있어서 납골에 조상님을 만나러 절에 오지, 예를 들면 참선을 배운다든가 불교 교리를 익힌다든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정근을 한다거나 이렇게 오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강동훈 : 소위 말해 일본의 불교를, 생활 불교라고 많이 표현들 하는데, 결국은 영가들 전통적인.

▲법현 스님 :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오기가 어렵고, 우리 교포들이 주로 옵니다. 다만 우리 교포들도 잘 살면서 그 쪽으로 넘어간 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강동훈 : 그렇죠.

▲법현 스님 : 법회에 오는 것이 쉽지 않아서 명리를 중심으로 또 인생 상담을 중심을 하는 경우가 있고요. 저는 거기서 참선을 중심으로 또 교학, 또 정진을 중심으로 교화활동을 했더니 묘하게 저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있었던 교포들은 제가 이제 방향을 전환하는 교화를 하고, 일본 사람들을 만났는데 좀 묘한 말씀인데, 제가 만나고 상담하고 이야기 해줬는데, 몇 년 동안 아팠던 정신, 그런 어려움이 나아서, 그 분이 제가 안 와도 절에 매달 오는 분인데 간호사인데 간호사가 100명 있는 병원에 큰 병원에 수간호사라는 거예요. 그리고 절 옆에 있는 동네 분들도 저와 또 주변 분들하고 대화를 하고, 또 늘 아침, 점심, 저녁, 세 때 정진 시간을 놓치지 않았더니 여기는 기본적인 행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일본인들이 지금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새로운 길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소위 한국의 열린선원의 법현스님의 명상치유법이 금강사에서 통했네요.

▲법현 스님 : 뭐 일반화할 수는 없고, 제가 하꾸바야마라고 그 동계올림픽 열렸던, 우리말로는 백마산 거기를 갔을 때 그런 일을 겪었고, 또 얼마 전에도 누가 얼굴이 아주 완전히 그 구겨져가지고 힘든 표정을 한 여성이 왔는데 또 상담을 했는데, 상당히 복잡한 집안 내의 성과 관련한 그런 거였는데, 제가 제대로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러나 아주 일반적으로 용서하라, 그리고 그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니까 용서하고, 그들이 잘 되도록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다음 달에 왔는데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해서 누구시냐고 그랬더니, 제가 지난달에 그 사람입니다. 스님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오시는 분들도 있고,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자. 이제 우리 법현스님하면 우리 이제 불교계 미디어에는 굉장히 많이 알려지신 분인데, 아까 우리 이제 내레이션 소개 할 때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대불련 활동을 하다가 출가를 하셨습니다.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강동훈 : 대학생불교연합회 그래도 또 주요 보직도 하셨죠. 중앙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장도 하셨죠.

▲법현 스님 : 회장도 하면서 서울 지부장을 했습니다. 81년도에. 회장을 그냥 하고 사실 제가 아주 부들부들하고 시키는 대로 잘 하고 그런 사람인데. 마침 지부장을 하던 분이 사연이 있어가지고, 그만 둔 거예요. 나중에, 요 근래 알아보니까 아마 학생운동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바람에 제가 이제 대행을 하다시피 그때 바로 선출해가지고 지부장을 해서, 영원한 중앙대 영원한 대불련 이죠. 

△강동훈 : 예. 엊그저께 전북 고창 선원사에서 대불련 대회에서 저도 같이 있었는데.

▲법현 스님 : 그러니까요. 그 때 뵙지 않았습니까.

△강동훈 : 뭐 저도 뭐 스님과 똑같이 82년도에 전남 지부장 대행을 하다가 또 그렇게 되가지고 저도 잠깐. 

▲법현 스님 : 좋은 인연입니다. 

△강동훈 : 스님께서 걸어온 길을 보면 단순히 어떤 출가자의 정신도 중요하지만, 대? 활동이 참 많았어요. 아무래도 그런 어떤 대불련 활동과 연관이 되어 있던가요?

▲법현 스님 : 그렇죠. 그니까 대학 들어가서 처음이 이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일도 있었고, 80년 도에는 518도 있었고 또 10.26도 있었고, 그래서 전국의 사찰을 군화발로 짓밟고. 

△강동훈 : 1027이죠. 

▲법현 스님 : 그래서 대불련 우리 법우들이 조계사 앞에 모여서 항의도 하고 그 때 저는 좀 생각이 어떻게 달랐냐면 항의하는 것도 불교적으로, 그 때 부르는 노래도 불교 노래로, 예를 들어 항의하는 방식도 3보 1배를 한다든가 좌선을 한다든가 이렇게 하자고 제가 지도를 했었죠. 그래서 이제 그런 부분들이 있었고, 그 후에 우리 대한불교 조계종, 저는 한국불교 태고종이지만 조계종이 또 무슨 개혁 조치를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 보면서 그 때 비로소 송월주스님 같은 경우도 깨달음의 사회학, 그런 것을 하기 때문에 저잣거리에서 보통 사람들과 함께 수행도 하고 전법도 하고 그리고 우리가 내 발이 내 몸이 깨끗하려면 내가 딛는 땅도 깨끗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이든 인권이든 탈핵이든 이런 게 같이 버무려서 가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강동훈 : 부처님이 출가할 때 그런 상황과 비슷하네요. 사실은 부처님이 우리 한국 불교는 산 속에 절이 있지만 부처님은 성불을 해서 거리의 성자였잖아요. 

▲법현 스님 : 그럼요.

△강동훈 : 거리에서 포교하고, 거리에서 법회도 하고 거리에서 깨달음도 주시고.

▲법현 스님 : 부처님 같은 경우가 대개 우리 불자들은 그 행복이 보장된 왕의 지위를 버리고 위대한 포기를 하시고 출가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강동훈 : 어떤 식으로 보십니까?

▲법현 스님 : 예를 들면 지금 미국 그 대통령 트럼프 아들이 아니고, 지금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G7 올라 있으니까. 그게 아니고 뭐. 

△강동훈 : 뭐 부탄 정도 할까요. 

▲법현 스님 : 예를 들면 부탄 정도는 너무 작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통령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되어 있는 아들은 두 가지를 최소한 잘 해야 한다 하나는 무술을 잘 익혀서 자기를 지키고 남을 뺏을 수도 있고, 둘은 그것이 안 될 경우는 외교를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무예를 익힌 것은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고행을 하는데. 말을 익힌 것은 깨달은 내용을 사실은 머리에 든 것은 굉장히 많은데 설명이 안 되는 분도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 부처님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웬만하면 깨닫고 그 다음에 브라만교와 같은 이교도들도 설득하고, 열반하기 직전에도 120살 먹은 수바다라는 브라만을 교화시켜서 팔정도가 없으면 승단이고, 팔정도가 있으면 승단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저잣거리는 우리의 정말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열린선원도 그러한 이제 소위 말해서 저잣거리에서 많은 포교를 하고 계시는데 최근에 스님께서, 여기 책이 있군요. 여기 ‘읽는 그대로 깨달음의 시’, 이게 법현스님과 함께하는 법구경인데, 이 법구경이 보통 423편정도 되어 있는 담마빠다, 이것을 읽는 그대로 깨달음의 시라고 제목을 다시 바꿨습니다. 법구경은 많이 알려진 책인데. 이게 특히 제가 그 때 한 번 봤거든요. 굉장히 한글화되어 있고 읽기가 굉장히 쉽고요. 중간 중간 이렇게 사진까지 들어가 있어서.

▲법현 스님 : 네. 사진을 많이 넣어죠.

△강동훈 : 이렇게 재편집을 한 스님만의 법구경을 만든 계기가 무엇입니까?

▲법현 스님 : 사실은 이제 이 법구경이 빠알리어(팔리어)로 원본이 되어 있는데, 빠알리어는 그 당시 민간어, 부처님 가르침은 팔리어로 동네의 말로 배우고 익혔는데, 어떤 품위있는 제자가 손들고 부처님 이렇게 우리 훌륭한, 여래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저렇게 동네 말로 하면 안 되니까, 표준말로 품위 있는 말로 사실은 그 부처님보다 한참 뒤에 파니니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문법 체계가 산스크리트어거든요. 그 산스크리트어로 배우고 익히도록 합시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은 오계를 어기는 것과 같은 나쁜 일이다. 그 동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익히고 쓰는 언어를 가지고 여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법구경 번역본들은 정말로 훌륭한 분들이 정말로 언어를 잘하는 분들이 번역을 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용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큼이나 알거나, 저보다 조금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그런 전문적인 용어를 배제하고 그저 보통 한국말로 어느 정도는 알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번역을 했습니다. 팔리어를 여러분들한테 배웠는데, 선일스님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당신의 건강에 어려움을 극복한 신앙심으로 적극적으로 지도를 해줘서 그러면 잘했으면 좋은데, 저는 겨우 사전을 봐야 조각조각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실력밖에는 사실 안 됩니다. 근데 저만큼도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 이 책을 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강동훈 : 법구경하면 게송 이렇게 있고, 지금 마지막에 423 게송 이렇게 해놨는데, 이렇게 다 주석을 해주시는 것은 아무래도 읽기 편하게 하시려고 그런 건가요?

▲법현 스님 : 그렇습니다. 다만 주석을 보시면 붉은색 글씨가 주석인데, 아주 짧잖아요. 설명 글이 이렇게 짧은 책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서 번역을 잘하면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제 번역 글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 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조금 다른 것은 406, 26 게송을 넷으로 좀 단락을 나눠봤어요. 하나는 ‘아라한이 되는 길’에서 라고 해가지고 한 뭐 90여 게송을, 둘은 ‘붓다가 되는 길에서’ 역시 7,80 게송을, 셋은 ‘바르게 되는 길에서’ 라고 해서 한 70여 게송, 또 이렇게 ‘수행자, 비구 바라문의 길에서’ 라고 해서 역시 그만큼을 해서 나눠봤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통 읽으면서 비구라는 말은 스님이라는 뜻이잖아요. 사미니이라는 말도 스님이고. 바라문은 브라만교의 사제라고 하는데, 우리 경전에 나오는 바라문은 그냥 보통 수행자를 이르는 이름이다. 그래서 브라만교의 언어를 차용해서 불교화 시킨 것입니다. 

△강동훈 : 이렇게 법현스님과 말씀을 나누다보니까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스님 끝으로 또 우리 시청자, 애청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법현 스님 : 네. 이제 뜨거운 여름이 다 지나가는데,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여름, 이것을 보내면 서늘한 가을이, 부처님의 상태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을 맞이하는 애청자, 또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항상 우리 BBS 불교방송과 함께 행복한 보내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강동훈 : 감사합니다. 스님 이렇게 바쁘신 일정 가운데 저희 BBS 뉴스와 사람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법현 스님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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