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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밝히고] 원행스님 첫 저서 출간...'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홍진호 기자 | 승인 2019.08.12 17:30

 

불교계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뉴스들을 전해드리는 시간입니다.

키워드로 보는 불교 오늘은 BBS 보도국 문화부 홍진호 기자, 나와 있습니다.

홍 기자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키워드를 보면 원행스님, 처능대사, 간폐석교소, 울도선경가 입니다.

먼저 원행스님입니다.

어떤 내용이죠.

 

네 원행스님의 첫 저서가 얼마 전 조계종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 제목이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인데, 예전에 제가 무명을 밝히고에 나와서도 말했던 적이 있는데, 처능대사와 간폐석교소를 담은 책입니다.

원행스님의 첫 저서이자 그동안 논문으로만 나왔던 처능대사를 알리는 대중저술서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처능대사는 조선 현종 2년 1661년, 당시 국가적 차원의 불교말살 정책에 맞서 왕에게 8150자의 상소, 조선시대 통틀어서 가장 긴 상소라고 하는 ‘간폐석교소’를 올립니다.

조정이 후궁들이 나중에 은퇴해서 비구니 스님이 돼 머물던 자수원과 인수원을 폐사 시키고, 이어서 봉은사와 봉선사까지 쇠락시키려고 하자,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절대 권력을 향해 붓을 든 겁니다.

 

그런데 그 당시 조정이 왜 그렇게 불교를 탄압을 한 거죠?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공저자인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스님을 기자 간담회에서 만나서 직접 들을수 있었는데요. 

자현스님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호국에 앞장섰던 한국불교가 오히려 핍박의 대상이 된 배경을 먼저 밝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사실상 국가와 사대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했고, 그 빈자리를 충무공과 승군, 의병 등이 나서서 나라를 지켰는데, 전란이후 그 공은 명나라 군대에게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또 전란이후 국가가 얼마나 황폐해졌겠습니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국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우암 송시열 등에 의해 제기된 예치 이념의 확대를 꼽았습니다.

송시열은 “예가 다스려지면 정치도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하게 되면 정치도 문란하게 된다”고 강조했는데요.

자현스님은 이 같은 기조가 사실상의 사상통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전란으로 조성된 승군은 또 한국불교는 유학자들한테 최대 위협요소되었다는 겁니다.

또 유교적 정치이념에 의한 국가지배체계에서 불교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던 것으로 몰아갔습니다.

자현스님의 관련 발언 함께 들어 보시죠. 

[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승군이 잘 싸울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이 없다는 거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신분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도첩을 준다든가 또 한 가지는 죽어서 갈 때가 있다는 거 극락에 간다든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훨씬 더 잘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전투능력이 유생들한테는 위험하게 판단이 된 거죠. 예악시대라는 것이 본격화 되면서 불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거죠. 유교적 시스템 안에서 불교는 설 자리가 없는 거죠. 두 가지 이유에 의해서 불교를 싹 없애 버리겠다는 그전에는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죠.”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유교를 국교로 숭유억불을 내세웠지만, 불교가 지닌 종교적인 기능은 조선시대 내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자현스님은 당시 조정의 가혹한 불교말살정책의 배경으로, 정치철학인 유교가 수양론을 앞세워 변질 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 고려시대 까지 정치는 유교, 종교는 불교로 정교분리가 이뤄졌다면, 조선후기에 이러한 구분이 옅어지면서, 이는 동아시아 쇠락의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곧 고려시대 까지 유교와 불교가 어떻게 보면 사실상 정치는 유교, 종교는 불교로서 국가를 운영하다가 조선시대 특히 후기 들어서 유교가 종교의 영역까지 확대를 시도했는데 안 되었다는 겁니다.

자현스님의 관련 발언 함께 들어보시죠.

[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자기는 고결하게 있으면서 정치는 관여하고 싶은 거예요. 불교는 종교적인 거니깐 탈속적인 거고 유교는 정치적인 것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고려시대까지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 까지 충돌하지 않았어요. 계속 같이 갔어요. 그런데 성리학은 불교식으로 변형된 유교예요. 이게 나중에 동아시아가 몰락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자꾸 수양을 해요. 정치가 개판이 되고 동아시아가 몰락하게 되는데 유교가 본래 정치철학이기 때문에 수양론 가지고는 불교의 종교성을 다 커버를 못해고 그래서 불교와 유교가 계속 투 트랙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네 잘 들었습니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우리나라가 국난과 국치를 당했을 때를 떠올리면, 사회 지도층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던 것이 내부적인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시기에 주목되는 책일 것도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자현스님은 처능대사와 스님이 쓴 간폐석교소는 호법을 위한 상소였지만 그 뿌리는 호국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사대부들이 책임을 져버렸다면, 숭유억불 시대에 오히려 한국불교가 호국의 선봉에 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데 당시 스님들은 국난극복에 혁혁한 공이 있음에도 당시 사부대들처럼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글을 남기지를 않았고 또 못했습니다.

처능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벽암 각성스님의 제자로, 전란 마지막 세대입니다.

즉 당시 불교말살정책의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던 원로였는데 조정의 불교말살정책에 솔선수범해서 먼저 나선 겁니다.

호법과 관련된 책이지만 호국불교가 그 배경이고 옛 스님들이 호국과 호법에 어떻게 나섰는지 한번 쯤 반추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자현스님의 관련 발언 들어보시죠.

[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이 책의 배경이 된 부분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군들이 열심히 싸워서 나라를 구한 부분이 있어요. 사실 충무공이나 어떻게 보면 책임을 져야할 유성룡 같은 분도 ‘징비록’이라는 글을 써서 자기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는 그런 사항인데 스님들은 아무도 글을 제대로 남긴 분이 없어요. 그래서 충분히 역할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명 받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아울러 볼 수 있는 게 이 책입니다. 한번 정도 살펴보시고 예전 스님들이 불교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는지 알게 되는 충분히 뜻 깊은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

 

네 잘 들어 봤습니다. 이 책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았는지요?

 

이 책은 원행 스님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 담았던 처능 스님의 생애와 상소문 '간폐석교소'에 관한 연구 내용을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과 함께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자현스님도 기자간담회에서 백곡 처능스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는데요.

아마 많은 불교학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관련해서 조선시대 불교사를 연구한 오경후 박사를 이전에 직접 만나서 인터뷰 했는데요.

처능스님 관련 자료가 굉장히 빈약하고, 스님이 오히려 명문장가로서 유학자들의 문집에서 스님의 글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스님인데요.

원행스님에 의해, 또 공저자인 자현스님의 노력으로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처능대사의 생애도 책에 나와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8150자 그야말로 작은 책 한권 분량의 상소문인 ‘간폐석교소’가 오늘의 언어로 잘 번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막상 읽어보면 쉽게 잘 읽힙니다.

 

마지막 키워드는 울도선경가 인데, 어떤 내용이죠.

 

불교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이죠.

진각종 회당문화축제가 지난달 29일에 개막을 해서 31일에, 독도 아리랑 콘서트를 끝으로 회향됐는데요.

여기에서 울릉도에 전해져 내려오던 가사에 곡조를 새롭게 넣은 ‘울도선경가’가 첫 선을 보였습니다.

진각종은 지난 2016년 회당문화축제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울릉도 아리랑을 복원해서 선보였는데요.

올해는 ‘울도 선경가’를 김회경 작곡가에 의해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울도 선경가’는 1906년 울릉도민 박시옹이 창작한 장편 율문 가사 ‘울도 선경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청일전쟁과 동학운동이 일어나 세상이 혼란해지자 고향을 떠나 신개척지인 울릉도에 입도한 저자의 심정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거주민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진각종 통리원장 회성정사는 앞으로도 울릉도의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관련발언 함께 들어보시죠.

[회성정사/ 진각종 통리원장]

“그래서 우리들은 회당문화축제를 단순한 축제문화로만 여기지는 않습니다. 모든 일을 불작불행으로 생각하듯이 이 또한 불사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울릉도의 고유문화를 보듬어 계승하고 일구는 활동도 하고자 합니다. 구전으로만 전해져오던 울릉도아리랑을 발굴하고 새롭게 해석해서 2016년 시연한데 이어 올해는 울도선경가를 선보이는 노력이 그중 하나입니다.”

올해까지 해서 진각종 회당문화축제 취재를 위해서만 울릉도를 4~5번 정도 방문했는데요. 

매년 뜻 깊었지만 올해는 한일갈등이 최고조에 이를렀을때 행사가 치뤄지다 보니, '독도 아리랑'을 상설주제로 최한 회당문화축제의 감동이 더욱 컸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홍진호 기자 수고했습니다.

홍진호 기자  jino4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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