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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불교계 대북교류의 선구자 법타스님이 펼친 방북의 발자취도 30년을 맞았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와 비교해 민간 교류가 전무했던 30년 전의 그 시절 법타스님은 어떻게 방북을 결심했고, 이후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했는지를 돌아봅니다.

홍진호 기자가 법타스님을 만났습니다.

 

조계종 원로의원 법타스님은 1989년 6월 26일, 평양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한 해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으로 해외 장기체류자의 방북이 허용되자마자,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던 법타스님은 주저 없이 방북 길에 올랐습니다.

[법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해외에서) 북한에 말하자면 관계 당국과 북한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불교는 한국종교의 종가인데, 우리가 너무 현실에 어둡고 또 현실에 안주하고 있구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후 홍콩을 거쳐 중국 북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밟게 된 평양 순항공항.

남북간 불교교류가 전무했던 시기 조선불교도연맹이 뒤늦게 마중을 나오기 까지 공항에 홀로 있어야만 했던 스님에게 북한 당국자들은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법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니까 아 그럼 신부 선생이십니까 가톨릭에서 선생이 존칭하는 말이예요. 선생님도 아니고, 나는 미국에서 불교공부를 하면서 불교 포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이야기가 아 중 선생이시군요."

이후 법타스님의 방북은 평양을 5~60번, 금강산 33번 등 100여 차례를 훌쩍 넘겼습니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을 가장 먼저 제안하며 추진했고,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기 위해 현지에 국수공장을 짓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평생을 몸바친 대북 교류가 남긴 교훈에 대해 스님은 사적인 신뢰가 남북관계의 틈새이자 활로며, 밥이 곧 평화이자 통일이라고 하면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법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국제관계와 남북관계도 보니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인 인간관계가 얼마나 신뢰를 가지고 돈독 하느냐 그게 중요합니다...내가 98년도부터 금강 국수공장을 평양하고 사리원 성불사에 했는데 그것은 뭐냐 밥이 곧 통일이구나."

법타스님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유구한 세월 민족과 함께 해온 불교가 통일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 평양 땅을 밟았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법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그래서 바로 이 불교가 남북 간 우리 민족 간에도 대화의 공동체가 되고 통일의 교두보가 불교가 충분히 된다고 봐요. 다른 종교보다도..."

30년 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외롭게 나섰던 세납 40대의 스님은 이제 70대 종단 원로가 되었지만, 민족종교 불교가 평화통일을 이끌어야 한다는 초심은 더욱 굳건해 지고 있습니다.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최동경/ 영상편집=남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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