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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00건 남짓 하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체감 상 100건 중 70건 이상의 소년보호사건 주인공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소년들인 것 같다. 소년비행의 주원인은 ‘가정’이고, 비행의 주해결책 역시 ‘가정’이다.” (심재광, 「소년을 위한 재판」 中)

가정의 달, 5월도 이제 저물어갑니다. 지난 한 달간 가정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는 ‘어린이’임을 축하받았고, 또 누군가는 빨간 카네이션을 품에 안으며 ‘부모’가 되었음에 보람을 느꼈을 겁니다.

이렇게 온 가족이 특별히 서로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가정의 달에도 전국의 가정법원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재판에 넘겨진 수많은 소년들 역시 어김없이 법정으로 향하죠. 법대에 앉아 소년들을 바라보는 소년전문법관들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더욱 무거워집니다.

지난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에 선발된 이후 본격적으로 ‘소년재판’의 세계에 발을 디딘 심재광 판사(사법연수원 36기‧서울가정법원 판사). 지난 2년 여간 심 판사는 짧지만 지난한 삶을 살아온 수많은 청소년들과 마주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부모와의 생활이나 잦은 가정폭력 등은 소년들을 병들게 했고, 보호 받지 못한 소년들이 또 다른 무고한 소년들에게 상처를 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분노와 불안으로 가득 찬 소년들의 눈빛을 보며, 심 판사 또한 한 때 그들의 개선 가능성에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보호처분을 통해 소년들은 놀라울 만큼 큰 변화를 보였습니다. 심 판사가 소년들의 변화 과정을 ‘인생 드라마’에 비유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년보호제도에 대한 여론은 점점 싸늘해져 갔습니다. 특히 이른바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사건’,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등이 연이어 사회를 뒤흔들어 놓으며 소년법 폐지에 대한 목소리는 더 높아졌습니다. 소년법의 수많은 장점은 모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채, 일부 단점들만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사형과 같은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라는 식의 매몰찬 여론 속에서 심 판사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해선 우선 잘못된 정보부터 하나씩 바로잡아야했습니다. ‘소년법의 진실을 알리자’는 일념 아래 심 판사는 펜을 들었습니다. ‘소년법 알리미’를 자청한 심 판사의 새로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말썽 많은 소년이라고 타박하고 벌주고 가두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소년이 이 사회를 미워하지 않고 이 사회와 어울리는 훌륭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 사회를 위한 가장 값진 투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심재광, 「소년을 위한 재판」中)

심 판사는 소년보호재판이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 기록이나 증거들에 초점을 맞춰 유무죄를 판단하는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소년재판에선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앞으로 얼마만큼 개선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다 치르고 나와도 대부분의 소년들은 겨우 20대 일 뿐입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간이 성인들에 비해 훨씬 깁니다. 때문에 처벌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형사처벌은 오히려 사회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소년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심 판사의 설명입니다.

최근 문유석 판사나 김 웅 검사 등 법조인들의 책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존에 발간됐던 책들이 법조인으로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심 판사의 책은 소년 재판에 대한 ‘전문서’에 가깝습니다. 소년들이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호처분을 마치고 나가는 순간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소년법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심재광 판사와의 일문일답

- 신간 <소년을 위한 재판> 집필 계기가 무엇인가?

▲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2017년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로 소년들의 강력 사건이 계속 잇따라 왔죠. 그런데 그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은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소년들에게 가혹한 시선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제가 소년부 판사를 하면서 겪은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런 것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국민들께서 법과 제도를, 소년을 보는 시선도 조금 바꾸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 재판업무와 책 집필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

▲ 재판업무에 소홀하면서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오해가 상당히 걱정스럽거든요(웃음). 책 집필을 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 사항에는 업무에 절대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조항도 있었고요. 퇴근 이후와 주말에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확보해서 글을 썼습니다. 쓰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고요. 제가 이 일을 맡은 지 2년 다 되 갈 무렵부터 작성했는데, 그동안 느꼈던 점도 많았었고 정보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작성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 최근 사회에서 이른바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소년법 폐지’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소년이니까 봐주자’ 이런 단순한 내용은 아니고요. 소년들이 생각 없이 저지르는 비행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이 효과적인 것인가 이 부분입니다. 일회적인 형사처벌로 소년들을 처벌하더라도 과연 소년들이 바뀔 것인가 그런 부분들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제가 했던 소년보호재판에서는 교육과 봉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처분들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보다 더 무거운 처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처분들로 바뀌는 청소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보호처분이 소년들의 사회 적응에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하더라도 소년법의생각해야한다는 의미인가?

▲ 소년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왔을 때도 50년, 60년 이상은 우리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같이 살아야 하거든요, 같이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엄한 형벌을 받고 나서 사회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우리는 50년, 60년의 세월을 더 힘들게 같이 지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소년들이 사회를 미워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회적인 형사처벌보다는 다양한 보호처분이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책을 보니 가사소년전문법관은 재판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듯하다. 인기가 많은 시설의 경우 판사가 직접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호처분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판결 후 아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까지 맡는다. 업무의 양이나 강도가 상당할 것 같은데?

▲ 저희는 과거의 사실을 판단하기 보다는 소년의 장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기 때문에 정답이 없고 적합한 것을 연구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해보니까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가 처분을 내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처분 기간 동안은 계속 소년을 감독하고 관찰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틱하게 소년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또 그들의 진심을 발견하게 되면 보람이 커서 이런 보람으로 정신적 고민이나 신체적인 힘듦은 충분히 상쇄됩니다.

- 소년보호제도나 소년법의 발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무엇보다 구체적인 지원보다도 지원을 하게 된 배경과 동기에 대해서 따뜻하게 이쪽을 바라봐주시고 관심을 통해 효과를 내는 것을 알아주시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좀 더 많은 지원을 해주시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두고 벌주는 그런 것 보다는 ‘소년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보살핌을 받으면 바뀔 수도 있다’라는 신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판사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책 속에서도 스스로 ‘청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나?

▲ 갓 10년 지났고 저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인데요. 워낙 보람도 많이 있고, 하는 일의 의미를 담기에 좋은 직업입니다. 더 이상의 목표라면 조금 더 좋은 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겠죠.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 생각으로 임할 겁니다. 우리 동료들과 잘 어울려서 사건을 더 열심히 탐구하고 좋은 결말을 찾아갈 수 있는 좋은 판사 중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 <소년을 위한 재판>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그동안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응원의 요지는, 소년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의견인데요. 그런 피드백을 받고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돌이켜보면, 국민들이 소년법을 알고 또 의견을 가지고 싶고 하는 이런 과정에서 갈증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가 알고 싶은데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매체 적었던 듯합니다. 제가 경력이 많아서 에세이를 쓴 것이 아니고 책 집필 경험도 없는데 굳이 책을 쓴 것은 정보전달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현재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려드리고. 판단은 독자와 국민께서 하시는 거겠죠. 저는 정보전달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했고, 그런 의도 잘 전달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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