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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학창시절 불교 가르침 받아…‘하염없이 낮은 지붕’ 절제의 미학 상징”[BBS 이상휘의 아침저널 - 화제 인터뷰] 김용락 시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초대 원장
아침저널 | 승인 2019.05.28 08:50

■ 대담 : 김용락 시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초대 원장
■ 방송 :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 FM 101.9 (07:00~09:00)
■ 진행 : 이상휘 앵커

▷이상휘: 이번에는 따뜻한 얘기 짚어보겠습니다. 화제인터뷰 두 번째 시간인데요. 항상 세상이 가난하고 소외된 평범한 이웃 생각하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 분이다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초대 원장이자 불신 깊은 불자이신 김용락 시인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락: 네, 안녕하세요. 김용락입니다. 

▷이상휘: 네, 원장님. 시인이라고 불러드리는 게 좋으신가요? 

▶김용락: 감사합니다. 

▷이상휘: 네, 알겠습니다. 먼저 우리 BBS 불교방송 청취자 분들에게 인사말씀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용락: 아침 일찍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고맙고 이렇게 인사드리게 돼서 아주 영광입니다. 김용락 시인입니다, 여러분. 

▷이상휘: 우리 시인께서는 1984년도에 등단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시인이여라는 시집으로 35년만에 이번에 여섯 번째 시집 내셨는데 제목이 하염없이 낮은 지붕이라는 책 제목인데 이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김용락: 우선 제가 근무하는 데가 방금 소개하신 것처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라는 데인데요. 이게 문체부 산하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이에요. 여기에서 하는 일이 주로 아이돌 가수들을 데리고 한류 K팝 공연을 하고 또 하나는 ODA사업이라고 해서 저개발국의 원조사업을 하는 그런 기관이에요. 원조사업 가운데에는 저개발국에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는 그런 사업이 있는데 그래서 몽골, 베트남, 탄자니아 같은 나라에 다니면서 도서관을 지어줍니다. 그런데 하염없이 낮은 지붕이라는 이 제목은 제가 지난해 몽골의 오브스의 울란곰이라는 조그마한 소도시를 찾아갔는데요. 이게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1,700km 떨어진 굉장히 먼 말하자면 시골 중의 시골인데 거기에 갔더니 지붕이 매우 낮아요. 원래 몽골이 바람도 세고 또 시골이어서 더욱 그런데 굉장한 시적 감동을 받았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지붕이 참 낮구나 허리를 굽혀 다니는 사람들은 참 착하겠구나 그러면서 옛날 한국의 저희들이 시골 초가집에 지붕이 굉장히 낮거든요. 거기에 사람들이 농부들이 허리를 굽혔고 들어갔다가 나오고 하죠. 물론 초가집만 있는 건 아니고 고대광실이라는 큰 기와집도 있고 마치 날아갈 듯 한 집도 있었죠, 물론. 
그런데 우리가 요즘 살고 있는 시대가 자본주의시대잖아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우리의 욕망이나 욕심, 욕구 이걸 소비하면서 살게 되니까 매우 1~2%는 너무 잘 살고 또 많은 분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런 빈부격차도 초래를 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요. 결국 낮은 지붕이라는 것은 우리가 소박하고 겸손하고 또 욕망을 절제하면서 사는 그런 절제의 미학을 상징하는 그런 의미로 제가 하염없이 낮은 지붕 이런 제목을 썼습니다. 

▷이상휘: 좋네요. 우리 시인께서는 경북 의성군 단초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대구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가난했었고 또 70~80년대 격동의 시기도 겪으셨다고 알려지고 있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인되셨습니까? 

▶김용락: 맹자님이 말씀하셨는데 막비명야다 참 살아가면서 운명이 아닌 게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도 이렇게 큰 개념은 아니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니까 시인이 됐어요. 사실 어릴 때 책을 좋아해서 책을 주로 많이 읽었더니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제 고향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경상북도 의성인데 제가 안동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런데 그쪽 지역이 안동, 의성, 영주 같은 경북 북부지역이 주로 퇴계 이황 선생의 영향으로 또 책을 좋아하고 학문을 숭상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글 쓰는 데 나가게 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이상휘: 시인께서는 교육인도 하셨고 언론인도 하셨고 또 정치권에서도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어떤 것이 본질에 맞으십니까? 

▶김용락: 그래도 시인이라든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이런 게 제가 맞아요. 시인은 책 읽고 사색하고 또 좋은 스승이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게 좋고 또 제가 고등학교 교사하고 대학 교수를 꽤 오래 했는데요. 또 학생들에게 진리, 진실을 전달하는 이런 일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상휘: 불교 신자로 알려지고 계십니다. 불교 인연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김용락: 제가 대구의 능인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또 학교 다닐 때 많은 불교 가르침을 받고 경전을 많이 읽었죠. 그렇게 해서 불교 신자가 됐고 또 불교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휘: 시인께서는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시집에 동참을 하셨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번 서거 10주기를 맞아서 다시 한번 추모 시집이 나오기도 했었죠. 10주기를 맞아서 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용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위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또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세상 이런 입장을 가지셨던 정치인이잖아요. 우리가 그런 정치철학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분을 존경하고 하는데 결국은 좋은 정치라는 것은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그런 게 좋은 정치인데 그런 좋은 정치에 대한 바람이 결국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휘: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시인께서 좋은 시 또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용락 시인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용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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