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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임진왜란과 호남불교 1...“무호남이면 무조선이라”
홍진호 기자 | 승인 2019.05.16 01:00

 

오는 23일은 지금으로부터 427년 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시작된 날입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임진왜란 당시 불교는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고, 특히 호남불교의 역할이 컸는데요..

BBS 뉴스는 오늘과 내일 임진왜란과 호남불교를 조명하는 기획 리포트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 홍진호 기자입니다.

 

“무호남(無湖南)이면 무조선(無朝鮮)이라”

목숨 바쳐 왜군과 맞섰던 호남인들의 애국심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평했습니다.

왜군의 장악을 끝내 허락치 않은 호남의 저항은 임진왜란의 양상을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일본이 정유년에 다시 군사를 일으켜 대대적으로 호남을 공략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키면서 조선은 전란 내내 군량미 보급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군의 총공세 속에 남원부에서는 군은 물론 부민까지 만 명이 왜군에 맞서다 장렬히 순절했습니다. 

남원이 뚫리면서 호남이 짓밟혔을 때 김제 금산사에서는 스님 1200여 명의 전사했고, 40여개 암자가 불탄 것으로 전해집니다.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임진왜란 5~6년 동안 호남 쪽에서 군량미가 서해로 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싸웠던 것이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서는 남해안이 무너져서 남원전체가 다 도륙을 당했습니다. 남원에 가면 만인의총이 있습니다. 7백 의총도 중요하지만 7백 의총은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합니다.”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

역대 흥행 1위 1700만명의 대기록을 세운 이 영화에는 임진왜란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운 ‘의승군’의 활약상이 나옵니다.

당시 해상에서 왜군과 싸웠던 스님들은 최소 4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충무공과 호남불교와의 각별함은 사후에도 이어집니다.

이순신 장군 사후 호남지역 스님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쌀 600석으로 노량에서 수륙재를 올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에도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직접 봉축 연등을 달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불교를 존중하고 승군을 각별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난중일기에 나와 있는) 등을 어디다 달았을까, 어디에 가서 관등을 하셨을까가 안 나와 있어요.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진을 비우지는 않았을 거고 아마 군진 안에 의승군들을 따로 두는 부서가 있지 않았을까 그 부서 안에 스님들이 있으니깐 초파일에 당연히 연등을 달았을 것...”

[스탠딩] 무호남(無湖南)이면 무조선(無朝鮮)이란 말 속에서 호남불교는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후대에 제대로 알리고 선양하는 일은 아직 걸음마 조차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에서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남창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저작권자 © BBS불교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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