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맞아 기념사진전·만세운동재현 등 준비도

● 출연 : 부산교직원불자연합회 김화선 사무총장
● 진행 : BBS 박찬민 기자

앵커멘트 :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부가 대통령 직속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민간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준비중인데요. 오늘은 목요인터뷰에서는 부산불교 근·현대사 전문가와 함께 부산에서의 3.1운동, 불교계 만세운동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금 불교종립학교인 금정중학교 교무부장으로 재직 중이고, 부산교직원불자연합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화선(사진) 사무총장, 나와 계십니다. 김화선 사무총장님, 안녕하세요.

질문) 총장님~,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답변) 100년 전 당시 3.1운동의 과제는 일제로부터 민족의 독립이었습니다. 그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돌이켜 보면 제국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시작이 되었으며, 불교계에서 살펴본다면 왜색불교에 대항한 전통불교 수호운동과 대중불교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은 시대적 과제는 생명과 평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세태 속에서, 생태계 파괴는 가속화되고 생명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지역 간·세대 간 갈등,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도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3·1운동의 정신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사회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질문) 특히, 부산지역 3.1운동은 조명이 잘 안된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3.1운동은 소위 민족대표 33인이라는 천도교, 불교,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에 의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산지역은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먼 곳이고, 학교와 작은 지역의 운동으로 한정되어 산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크게 주목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산지역의 3.1운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충분하지 못하였고, 편향된 연구자에 의해 왜곡된 조사내용으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질문) 지금부터 부산지역 3.1운동, 자세히 짚어보죠. 먼저, 1919년 당시 시대 상황은 어땠습니까.

답변) 일제에 의해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어 식민통치를 강화하였습니다. 그 과정 중에서 1911년 조선교육령으로 종교계가 다수를 이룬 사립학교들이 법적으로 속박받게 되었고, 1915년에는 '포교규칙"이 제정되었고, 개정사립학교규칙이 공표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사찰의 운영과 설립에 대한 모든 부분을 조선총독부가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W. Wilson, 1856-1924) 미국 대통령이 전후 처리를 위한 평화원칙 14개조에서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그 원칙은 1차 대전의 패전국에 국한되는 것이었지만, 세계 약소민족들이 자주독립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사상이 인근 국가들로 퍼져나가면서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근 10년간 망국의 통한 속에서 일제의 무단정치하에  우민화 정책, 경제 침탈, 토지수탈, 군경 횡포를 겪으며 독립을 갈구하다가 이러한 소식들에 희망을 걸게 되었던 것입니다.

질문) 3.1운동이 어떻게 일어났고, 부산에서는 어떻게 시작이 됐습니까.

답변) 1919년 2월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으며, 선언서 뒷부분에 첨가된 공약 삼장은 한용운스님이 따로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작성된 독립선언서에 2월 27일까지 천도교측 15인, 기독교측 16인, 불교측 2인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 원고는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인쇄소에서 2만 1천 장이 인쇄되었고,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로 일제히 배포되었습니다.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태화관에 모여, 오후 2시 정각 한용운이 일어나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 독립 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으며, 같은 시각인 오후 2시 탑골(파고다)공원에서는 학생들과 시민 약 5천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거국적인 3·1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산지역에 가장 먼저 전달된 것은 불교계 학생대표였던 깁법린, 김상헌에 의해 3월 4일 범어사 청년암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일신여학교로 3월11일 전달되었고, 동래고보는 졸업생 곽상훈에 의해 전달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질문) 그리고, 부산지역 3.1운동은 어떻게 확산됐습니까.

답변) 교통‧통신의 발달이 현재에 비해 상당히 부진하여 사람에 의한 소식 전달이 거의 유일한 지방간의 소통 방법이라는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부산은 서울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만세 운동의 소식이 가장 늦게 전해진 곳 중의 하나입니다. 지방운동으로 규모가 컸던 만세 시위는 거사계획의 누설 방지와 인원 동원이 쉬운 장날과 거의 일치하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부산의 만세운동도 큰 장날에 맞추어 항일 만세 운동이 거행되었습니다. 불교계는 범어사를 중심으로 각 지역 포교당으로 확산되어 기장, 정관, 구포 등으로 전달되었고, 기독교는 각 지역의 교회로 그리고 학교의 학생들이 참가하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질문) 3.1운동 당시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역할도 컸죠. 어떻습니까.

답변) 불교계는 만해스님과 용성스님이 민족대표 33인에 서명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파고다공원 행사에 불교계가 적극 참여하였고, 중앙학림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사찰의 연락책을 파견하여 불교계가 전국적으로 3.1운동에 동참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승려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여하여 향후 독립운동을 펼쳐나가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질문) 불교계, 특히, 범어사의 당시 역할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주시죠.

답변) 만해스님이 2월 하순경 직접 범어사로 내려와서 오성월, 이담해, 오이산스님 등 원로스님들과 논의하여 서울 파고다공원 행사에 명정학교, 지방학림, 강원스님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7인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교의 졸업식을 기하여 범어사 스님들과 학생들이 동래포교당을 근거로 장날에 맞추어 세차례나 만세운동을 일으켜 42명이 체포 및 구금 되었습니다. 

질문) 그렇군요~. 그리고, 총장님께서는 '범어사와 근대학교'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요. 당시 3.1운동 정신이 부산지역 근대학교 정신으로 이어지는 거죠.

답변) 위력(威力)의 시대는 거(去)하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래(來)하도다.”라고 독립선언문에서도 밝혔듯이, 100년 전 3·1운동의 목적은 단순히 민족의 독립뿐만이 아니라, 근대학교에서는 흥학과 포교, 인재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신문명의 서광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면서 시대적 명분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과 생명의 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적 작동원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바람직한 통일한국은 물론 동아시아평화공동체, 나아가 공존공생하는 하나의 지구생명권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러한 신문명의 건설에 3·1정신의 비전을 담아야 하겠습니다.

질문) 이제, 3.1절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100주년 기념사업들이 많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부산에서는 어떤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습니까.

답변) 부산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각 지자체별로 다양한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유공비 헌화, 만세제현, 각종 문화행사, 현장체험행사 등으로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행사들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질문) 3.1운동 100주년 사진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답변) 금정중학교와 금정중학교동창회에서 100년 전의 범어사, 명정학교․지방학림․강원 스님들과 학생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과 지역사회 계몽운동의 참여 기사들, 지역의 옛 모습들을 담은 사진 100여점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질문) 이번 사진전에서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사진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답변) 3.1운동 전국 소요사태 실태지도, 일제 강점기 범어사의 옛 모습,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범어사불교전문강원 모습, 미군이 촬영한 1952년 지역의 칼라사진 등입니다.

질문) 그렇군요`. 그리고,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비롯한 문화행사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범어사 3.1만세운동의 재조명에 대한 세미나, 만세운동 재현, 3.1유공비 헌공다례제 등이 있습니다.

질문) 기념행사들을 준비하다 보면, 아쉬운 점들도 있을 텐데요. 어떤 점들이 있습니까.

답변) ‘과거를 통해 나아가는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선조들의 호국정신과 민족의 얼을 기리고 역사적 의의를 계승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질문) 3.1운동의 정신이 기념행사로만 그치지 말고 후대에 잘 전달되려면, 중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할 사업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3·1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인물과 지역으로 나눠 재조명하고, 왜곡되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발굴하여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을 해나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3·1운동의 정당한 의의와 정신을 평가하는 일은 이를 바탕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종 학술사업과 답사, 자료수집과 각종 발간사업이 진행되어 3·1운동 정신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알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질문) 그렇군요~. 오늘 많은 말씀을 주셨는데요. 끝으로 정리의 말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지금 대한민국은 수많은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비전을 세워줄 통합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3·1운동은 종교계는 물론 학생과 민중이 하나 되어 민족적 과제를 수행한, 세계사적으로 유례 없는 대통합, 비폭력, 평화 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통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나아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부산교직원불자연합회 김화선 사무총장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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