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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훨훨...' 故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양창욱 | 승인 2019.02.02 11:45

*출연 :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

*앵커 : 양창욱 정치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인터뷰, 오늘]

양 : 고 김복동 할머니가 마지막 가시는 길은 정말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민족의 대명절 설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니 정말 가슴이 아픈데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지는 못하지만 신심깊은 불자로서 삶을 살아간 할머니는, 남겨진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님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소장님, 나와계시죠?

안 : 네, 안녕하세요.

양 : 네. 오늘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봉행됐다고요?

안 : 할머니가 지난 28일 저녁 늦게 타계하셨는데요 장례는 5일장으로 진행됐습니다. 29일에 나눔의 집 할머님들과 조문하려다가, 할머님들의 건강이 허락되지 않아서 저녁에 나눔의 집 식구들과 또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조문하고 있었고요, 대구에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께서 빈소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오늘 대사관 앞 영결식은, 많은 시민들과 함께 시민장으로 거행됐습니다. 아침 6시 30분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하고, 또 생전에 지내시던 평화의 집에 들러서 피해자 할머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9시에 서울광장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을 거쳐 1992년부터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장지인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이동해 영면에 들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노제를 위해서 서울광장에서 일본대사관 앞까지 이동하는데 고 김복동 할머니 연세에 맞춰 만장 94개와 함께 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 노란색 나비 막대를 들고 이동했습니다. 피해자 이용수 할머님이 김복동 할머니 외롭지 않게 장지인 천안 망향의 동산까지 함께 하면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양 : 그러셨군요. 지금 우리 김복동 할머님의 사망 소식에 많은 분들이 특별히 더 안타깝게 여기면서 추모하고 있는데, 왜 이런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일고 있다고 보십니까?

안 : 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이자 여성의 수난사입니다. 고 김복동 할머님은 14세 어린 나이에 전쟁터 위안소에서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피해자 김복동 할머님이 가해국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슬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극복하고 고령의 나이에도 당당하게 일본 정부와 투쟁하는 모습, 그리고 일본이 주는 국민기금과 합의에 따른 위로금 거부, 합의안 무효화 투쟁과 화해치유재단 해산, 수많은 해외 활동, 꾸준한 기부활동이 큰 감동을 주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양 : 네 말씀하신 그런 대목들 때문에 할머님의 평화인권 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는 것 같은데요. 우리 김복동 할머님께서 신심 깊은 불자라고 들었습니다. 나눔의 집에서 처음에 생활을 하셨죠?

안 : 네 맞습니다. 우리 나눔의 집은 대일항쟁기에 일본군 성노예로 피해를 당한 할머님들을 위해 1992년 10월 불교인권위원회 송월주 큰 스님을 중심으로 설립됐습니다. 김복동 할머님은 나눔의 집 초창기 입소지 여섯 분 가운데 한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활동을 했고, 특히 증언과 그림을 통해 당시 피해 사실을 영원히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고향이 그리워서 부산으로 이주하셨고, 건강이 악화돼 2011년 서울 평화의 집에 입소 후에도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글렌데일시 행사 개막식에 참석해 전 세계를 향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전쟁범죄라고 고발하였고, 가해국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하시고 정말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슬픔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양 : 네 그렇군요. 소장님, 우리 김복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부활동도 그렇게 열심히 하셨다고요? 형편이 넉넉지 않으셨을 텐데...

안 : 그렇죠. 동일본 지진피해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에 후원금을 보냈고요, 또 전세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나비기금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시고 영면하였습니다.

양 : 네 그러셨군요. 할머니께서 이렇게 가셨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이 문제,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습니까?

안 : 네, 가해국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는 한 해결이 힘들다고 저는 봅니다. 할머님들이 해결하기는 역부족이고,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 외교적 노력, 국민들의 지원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주체가 되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사회에 알려야 합니다. 가해국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반성과 사죄보다는 소녀상을 저지하기 위해서 현지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방해활동을 하고 있는데, 피해국 한국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틀란타 소녀상 추진위에 마이클 혼다 전 하원의원을 비롯한 양심적인 미국인들이 적극 활동하고 있지만 애틀란타 총영사가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소녀상 제막식에도 한국 대사나 영사는 나타나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중국과 대만, 필리핀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어떤 것 보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고, 외교적인 노력이 중요할 때이고, 절대적인 국민의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양 :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안 : 네 고맙습니다.

양 : 설 연휴 잘 보내십시오.

안 : 고맙습니다.

양 :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님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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