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출연 :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진행 : 박찬민 BBS 기자

(앵커멘트)다음은 주간섹션 순서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지역' 이야기 시간입니다. 올해부터 새롭게 마련한 시간인데요. 지역을 더 알아보자는 취지로 한국해양대학교 구모룡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고해 주실텐데요. 전화연결하겠습니다.구모룡 교수님 안녕하세요?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질문1) 지난주까지 부산의 특성을 통하여 도시 정체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교역과 교류, 이산과 이월, 다층적 공간과 문화 혼종성 등을 들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러한 특성이 더욱 커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끼친 영향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가면 어떨까요.

-해방과 더불어 들고나는 인구학적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는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증폭합니다. 인구가 40만, 80만, 100만을 훌쩍 넘어서는 과정이 10년 안에 이뤄집니다. 피란으로 내국 이민이 크게 증가한 탓입니다. 일본인이 나간 자리에 미군과 한국인들이 들어와 시장을 여는데 전쟁이 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많아집니다.

협소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모자이크처럼 확대되지요. 어느 건축학자가 말한 “누적도시”라는 개념이 부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무계획, 무질서가 도시공간의 특성이 됩니다만 오히려 이러한 특성이 부산의 문화적인 역동성을 뒷받침하지요. 다양한 사람들과 다층적인 공간이라는 양상은 한국의 어느 도시와 다른 부산의 특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2) 해방에다 한국전쟁까지 겹치면서 부산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바다로 열린 도시라는 측면이 강점이 되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해항도시(seaport city)라는 강점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부산역 맞은편의 공간을 한번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異)문화 공간 혹은 ethnic spot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이러한 공간을 유기적으로 잘 살려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차원을 달리 합니다만 부산의 문화 혼종성과 다양성을 잘 드러내는 경관으로 볼 수 있지요.

일제시대의 건축물과 골목이 있는가 하면 중국인 거리도 있습니다. 미국식 주점에다 러시아 상인들도 많이 보입니다. 화교와 고려인 그리고 종전 후에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도 있지요. 여기에 다양한 부산사람들이 공존합니다. 항구를 배경으로 해역 네트워크가 가능한 도시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질문3) 공간과 사람이라는 두 측면에서 부산이 여타도시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부산을 산과 강과 바다를 다 가진 도시라고 말합니다. 내국 이민이 많은 도시이어서 문화가 개방적이라고도 하지요. 

-산과 강과 바다는 부산의 인문지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일은 도시의 확대과정입니다. 한국전쟁으로 급격한 팽창을 겪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또 다시 농촌 인구의 유입으로 팽창합니다. 부산만큼 산복도로가 많은 도시가 있을까요? 60년대 직할시가 되었다가 90년대 광역시로 바뀌면서 부산의 공간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다층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아메바처럼 도시가 증식을 해왔습니다. 원도심과 동래, 배후공업지역, 서부산 낙동강권역과 동부산 기장권역 등 각기 다른 문화와 공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산은 이러한 다양성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도시입니다. 

질문4) 어떤 이들은 부산을 문화 불모지라고 합니다. 자연경관은 좋으나 도시가 혼잡하다고 합니다. 부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부산을 문화 불모지라고 보는 이들은 자기 지역의 관점으로 부산을 보는 이들이거나 다른 지역의 눈으로 부산을 말하는 이들입니다. 내륙의 정체된 지역 혹은 닫힌 공간에 사는 이들이 볼 때 부산 사람들의 문화가 산만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산의 문화 특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진 못합니다. 부산은 사람들이 들고 나면서 섞이는 문화가 매우 역동적인 양상으로 표출되는 도시입니다. 바로 “다이내믹 부산”이지요.

부산이라는 한자말에 가마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산의 문화는 “끓는 가마솥”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질적인 요소를 다 녹이는 용광로(melting pot)은 아닙니다. 다양한 문화가 유동하며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위계와 권위보다 공감과 협동을 지향하고 구속보다 자유로운 발산을 추구합니다. 우울한 도시가 아니라 명랑하고 쾌활한 도시입니다.

질문5) 그러니까 부산에 문화가 없다고 하는 이들은 부산의 문화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끓는 가마솥같이 역동적인 문화를 지닌 도시가 부산이라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부산에 사는 우리 자신도 부산의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 살리고 있진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눈으로 자기를 보는 연습이 안 된 탓입니다. 서울이나 대구의 시각으로 부산을 보면 후진적이고 산만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제2도시라는 말을 싫어하는 까닭이지요. “제2도시인데 왜 이 모양인가” 혹은 “제2도시인데 푸대접인가”라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이 지닌 장점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기획하는 일은 잘 하지 않지요.

특히 정치가들이 “제2도시 이데올로기”를 많이 써먹습니다. 시민들이 자주 잘못 설득당하기도 하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자기가 사는 장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서 이를 바탕으로 내발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민들에게 부산학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질문6) 제2도시라는 말에 안주하거나 이를 방패삼아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제2도시라는 말보다 우리 부산이 지닌 내적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산학을 해야 한다. 부산학을 도시 정책, 문화 정책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고요. 부산을 제대로 알아야 부산의 미래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산학은 단지 새로운 학문적 현상 또는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부산학 없이 이뤄진 많은 시행착오를 반성하면서 기억을 상실하고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는 도시를 새롭게 재생하자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도시 르네상스를 꿈꾸는 일과 연관됩니다. 

(앵커멘트)부산학을 통하여 우리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구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주에도 부산의 발전 단계를 더 들여다보면서 부산학을 통한 부산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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