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출연 :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진행 : 부산BBS 박찬민 기자

(앵커멘트)다음은 주간섹션 순서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지역' 이야기 시간입니다. 올해부터 새롭게 마련한 시간인데요. 지역을 더 알아보자는 취지로 한국해양대학교 구모룡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고해 주실텐데요. 전화연결하겠습니다.구모룡 교수님 안녕하세요?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질문1) 지난 주까지 부산학의 방법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관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이제 부산학 연구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어떤 사례를 소개할 수 있을까요?

-그 동안 부산학 연구에서 가장 큰 쟁점이 부산의 태동을 어떻게 보느냐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동래를 부산의 기원으로 보자는 주장이 있지요. 조선시대의 동래읍성을 하나의 거점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분들은 일제가 동래를 배제하기 위하여 지금의 원도심인 용두산 일대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동래는 동래일 뿐 부산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애써 일제가 부산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회피하려 하지만 식민도시로 출발한 부산을 부정하긴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질문2) 동래 기원설과 식민도시설로 양분되는 양상이군요. 식민도시라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겠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식민도시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제국주의 시대에 도시가 형성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에 건설한 도시가 모두 식민도시이니까요.

그런데 부산이 식민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해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관”입니다. 용두산 아래 왜관이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 왜관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질문3) 우리 시민들이 왜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측면이 무엇입니까?

-왜관을 조선정부가 만들어 준 교역의 공간이라는 측면입니다. 당시 동아시아 삼국은 모두 쇄국을 표방하면서 공무역 형태의 공간을 통해 교류를 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나 당관 류쿠관 등처럼 조선정부도 왜관을 만들어 일본과 평화롭고 대등한 교역을 하였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통하여 이를 “일본인전관거류지”로 바꾸면서 왜관이 식민도시의 바탕이 됩니다.

질문4) 그렇다면 왜관은 조선정부가 일본과의 교역을 위하여 일본인들에게 만들어준 공간이군요. 한일 간의 대등하고 평화로운 교역의 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상징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관을 복원하여 부산에서 한일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에 찬동하는 편입니다만 다른 의미에서 우리 부산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부산이 출발에서부터 교역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식민도시 부산이라는 사실을 가리기 위하여 부산의 출발을 동래로 설정하는 억지보다 왜관에 주목하면서 부산을 “동아시아 역내 상호관계를 지닌 지역”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유익합니다.

질문5)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왜관”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관이 있던 시대처럼 한일 간의 대등한 상호 교역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부산과 후쿠오카 지역 경제권처럼 부산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부산은 왜관이 일본인전관거류지가 되면서 식민도시로 성장하다 해방과 더불어 귀환 인구가 수용되는 등 근대도시로 발전합니다. 여기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많은 내국이민의 유입이 도시의 팽창을 가져오지요. 그런데 동래를 내세우는 관점은 한일 간의 민족주의적 적대라는 관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산을 통해 부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여한 면도 많고요. 왜관을 내세우면 부산이 한일 간의 네트워크 도시 혹은 동아시아 결절지로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교역도시 부산이라는 인식은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지 않습니까?

질문6) 듣고 보니 왜관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평화롭고 대등한 교역의 공간이라는 점이 강조될 수 있겠는데요?

-그렇습니다. 왜관의 의미만으로 부산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상징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멘트)일본인 전관거류지에서 출발한 식민도시 부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쟁점들을 다음 주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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