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부산 혜광고등학교 28회 동기회장(고 박종철 열사 동기)

 

● 진행 : 박찬민 BBS 기자
● 출연 : 김상준 부산 혜광고등학교 28회 동기회장(고 박종철 열사 동기)

(앵커멘트) 영화 ‘1987’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덕분에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박 열사의 모교죠, 부산 혜광고등학교에는 박 열사 추모비가 건립돼 있습니다. 많은 언론과 시민들이 무관심 할 때, 박 열사의 동기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겁니다. 오늘 라디오830 집중인터뷰 시간에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금 김상준 혜광고 28회 동기회장, 전화연결 돼있는데요.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질문1) 박종철 열사하고는 고등학교 때 친하셨습니까?

-그렇게 많이 친하지는 않았고요. 서로 충분히 많이 아는 사이였습니다.

질문2) 고등학교 당시의 박종철 군은 어떤 이미지였습니까? 동기 분들 한테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못하는 친구들, 별난 친구들까지 포함해서 다방면으로 모두 다 친하게 지냈고요. 특히 어릴 때 새로산 옷을 걸인한테 벗어줄 정도로 마음씨가 따뜻한 친구였습니다.

질문3) 어제가 박종철 열사의 기일이었습니다. 경기도에서 추모의 시간도 가졌고요. 지역에서 이런 시간들이 있었습니까?

-예전에는 암울했잖아요. 묘도 형성이 안 되고 그런 시기에는요. 부산 민주공원에서 추모식을 많이 했고요. 그러다가 묘도 만들고 하면서 경기도 남양주시에 모란공원이 있습니다. 안장하게 됐죠. 그러면서 거기서 추도식을 하게 됐습니다.

질문4) 영화 ‘1987’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요. 영화를 보셨습니까?

-저희들 28회 혜광고 동기회는 12월부터 계획을 잡은 게요. 우리 28회 뿐 아니라 혜광고 동문, 가족들 함께 28회 후원으로 단체 무료관람을 했습니다.

질문5) 소감을 여쭤봐야겠죠?

-사실 많은 인터뷰를 하거든요. 저희들은 친구입장입니다. 고등학교 친구이고 어릴 때 친구잖아요. 죽은 거에 대해서 슬프지, 나머지 부분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친구들은 고문당하는 장면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친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종철이가 영화에서 조금 아쉬워 부분은 어떤 친구였다는 것은 장면에서 없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오리털 파커를 걸인들에게 벗어준다든지 그런 내용이 나왔다면 했습니다. 착하고 따뜻한 사람을 공권력이 죽임을 가했다는 것, 이 부분이 전파되고 알려졌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질문6) 혜광고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출신 아니겠습니까?

-저희들한테 한 해 선배되십니다.

질문7) 이번 영화를 보시고, 동창회라든지 동기회라든지 조국 수석의 언급은 없었습니까?

-조국 선배는 국가의 중대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인데요. 개인적인 부분은 언론에서 하는 내용밖에 모릅니다. 동창회는 종철이 이야기를 하면 적극적으로 도와 주십니다. 지난해가 30주년이었는데요. 광복로에서 동창회하고 28 동기회하고 음악회하고 사진전을 가졌습니다. 총동문회에서 선배님, 후배님들이 전국 각지에서 오셔서 추웠지만 훈훈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질문8) 시간이 흘러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앞으로도 동기분들, 박종철 군을 기리는 이런 일들을 많이 하고 시민들에게 알려나가실 겁니다. 기념비가 학교에 세워졌는데요. 당시 이야기도 해 주시죠?

-저는 학교 측의 입장은 어려웠을거라고 봅니다. 대학교도 아니고요. 고등학교고요. 사립학교입니다. 또 학교가 개신교 재단입니다. 동상을 세운다든지 하는 거는 종교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요. 고등학교에 열사 추모비를 세운다는 게 아직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많습니다. 저희들이 그 당시 학교 측에서 많이 힘들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 추모비가 있는 부분을 봤을 때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질문9) 동기분들이 노력을 많이 하셨죠?

-그 당시에는 졸업생이 되어서요. 올라가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요. 침묵시위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질문10) 당시 선생님들하고는 교감을 하고 계셨을 건데요. 야속하지는 않았습니까?

-시위를 하러가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질 수 있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응원해주는 분위기였고요. 사립학교 선생님들은 재단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잖아요? 재단 입장에서는 학교가 교육부라든지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봐 충분히 걱정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질문11) 박종철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혜광고 재학생들을 위해서 지원하고 계시죠?

-매년 300만원을 일인당 50만원씩 6명에게 7년-8년 정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성되는 비용이 박종철 기념사업회에서 일부 주시고요. 부산의 친구들이 일부 주십니다. 최근에는 서울 친구들까지 합세해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동기회라고 해서요. 조직이라든지 재원이라든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참가하는 숫자가 많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그래도, 종철이 장학금 부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움을 많이 줍니다.

질문12) 좀 더 체계적으로 동기회 조직을 꾸릴 생각도 하시는가요?

-사실 동기들이 나이가 들어서 없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만약에 남아있다고 하면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남아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먼훗날, 역사를 짚어보지 않더라도 모두가 인권과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된 그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질문13) 28회 동기회를 주축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 품으로 돌려달라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언론에서 ‘1987’ 영화를 통해서 종철이 부분이라든지 남영동 대공분실의 악랄함, 건물 자체가 고문을 하기 위해서 지어졌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어제도 다녀왔는데요. 고문을 하기 위해서 건물을 지은 것을 경찰이 아직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인권 경찰이지만요.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보면요. 고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고문했던 방들, 아주 작습니다. 사람이 들어가면 창문도 좁게 만들어 놓고요. 도망가지 못하도록요. 들어갈 때부터 극한 공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금은 많이 고쳤어요. 가만히 있으면 고쳐나갈 것 같고요. 고쳐나가는 건 뭡니까? 은폐하려고 하는 것 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 때 당시 고문의 현장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런 부분을 시민들에게 보여줘야 인권을 위해서 좋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경찰이라는 조직에서 하기는 한계가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잘 안했습니다. 왜냐면 정치적이다 진영 논리를 펼치기 때문에요 상대방에서요. 그래서 친구를 추모하는 이야기만 했는데요. 올해만큼은 이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들에게 돌려달라는 부분에 있어서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질문14) 청원에 참여하신 국민들은 어느 정도 되나요 지금?

-지금 방금도 이야기했듯이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영화 관람도 500만명이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100분의 1 정도 됩니다. 한 5천명 정도 넘어갔습니다. 10분의 1만 되어도 50만명인데요. 청원하는 방법이 나이 드신 분들이 하기에, 제가 볼때는 별거 아닌데요. 까다로운 느낌을 가지더라고요. 방송을 하게 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문15) 마지막으로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부산지사도 꾸릴 계획을 가지고 계산다고요?

-부산지사는 이미 부산에 있습니다. 원래요. 아무래도 활동이 미비했는데요. 그것을 보강을 해 나가는 일들을 할 겁니다. 그 중에 당장 급한 것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건데요. 부산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조직도 만들어가고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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