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정상회담에 부쳐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 (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6월 29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구철원의 옛 북한 노동당사

 

▷박경수 앵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는데요. 과거사를 짚어보며 미래를 생각해보는 목요일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철원의 역사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 나오셨네요. 권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박경수 앵커:

지난주에 철원을 둘러보셨어요.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이 안내를 잘 해주셨는데, 소장님께서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권혁진 소장:   

노동당사 건물에 남아 있는 총탄 흔적, 길 옆 철조망에 걸려 있는 지뢰 표시판, 위령탑에 새겨진 희생된 병사들의 이름 등을 보면서 전쟁이란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국민의 생사가 달려 있고, 나라가 존속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길이므로 잘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사람들의 오판으로 인한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답사 내내 들었습니다.   

 

▷박경수 앵커:

관련해서 한미정상회담이 목전에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만나는건데요. 역시 북한문제가 최대 의제라고 봐야죠.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담아서 메시지를 전해주시죠.

▶권혁진 소장:

먼저 우리 민족의 문제를 당사자끼리 만나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여러 문제를 다루겠지만 북한에 대해서 한정한다면, 원칙적인 입장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에 방점을 찍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도 일리가 있겠지만,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 가장 상식적이고 기본적이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청득심의 자세로 회담에 임해주길 바랍니다.

 

▷박경수 앵커: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오늘은 철원 얘기를 좀 더 하죠. 철원에 남긴 의인들의 발자취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의 전신이죠, 태봉이 세워지고 수도를 철원으로 삼았어요. 궁예 얘기부터 해주세요.

▶권혁진 소장:

흔히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는 과대망상에, 포악한 성품으로 학정을 일삼았던 군주로 알고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는 궁예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연 고려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오히려 무능력한 신라 지도층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했으며, 고려라는 새 왕조가 탄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철원지방에서 궁예는 호의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철원의 이곳저곳에 궁예의 전설이 남아 있고, DMZ 안에 남아 있는 태봉의 유적지인 궁예 도성은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건의 집터로 추정된 곳(지금은 공원)

 

 

▷박경수 앵커:

고려말 ‘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던 최영 장군...최영 장군도 철원분이잖아요?

▶권혁진 소장: 

최영 장군의 본관이 철원이고, 전쟁에서 왜구를 물리쳐서 철성부원군(鐵原府院君)으로 봉해졌지요. 세종실록지리지에 철원의 대표 인물로 적혀 있고, 우리가 도피안사에서 내려다봤던 철원읍 관우리에 최영 장군의 조상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영 장군이 철원과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고려사』를 보면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라는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재물에 관심갖지 않았다. (중략) 지위는 비록 재상과 장군을 겸하고 오랫동안 병권을 장악했으나 뇌물과 칭탁을 받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청렴결백함에 탄복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습니다.

 

천년고찰 도피안사(최영 장군 조상의 묘 인근)

▷박경수 앵커:

조선시대로 오면, 매월당 김시습을 논하지 않을 수 없지요. 춘천 청평사에 세향원이라는 건물을 짓고 오랫동안 지냈지만, 그전에 철원에서 초막을 짓고 지냈다고 하더라구요.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던데요.  

▶권혁진 소장: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랑길에 나선 김시습의 발길은 철원 복계산 자락의 사곡촌에 닿았는데, 사곡촌 골짜기에는 먼저 세조 정권이 싫어 서울을 떠난 박계손과 그의 부친 박도 등 영해 박씨 일가 일곱 명이 초막을 짓고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매월당은 복계산 자락에 있는 매월대에서 주로 소요하셨는데, 『여지도서』는 매월대에 대해서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 옛날 매월당 김시습이 바위 아래에 조그만 집을 짓고 몇 년 소요하였다. 지금도 옛터가 남아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경수 앵커:

조선 후기에 오면 매월당을 기리는 사당도 만들어지지요?

▶권혁진 소장:

김시습과 조상치를 포함하여 영해 박씨 일가인 박도(朴渡), 박제(朴濟), 박규손(朴奎孫), 박효손(朴孝孫), 박천손(朴千孫), 박인손(朴璘孫), 박계손(朴季孫) 등 일곱 명을 합하여 ‘구은(九隱)’이라고 합니다. 1818년(순조 18년)에 사림들이 구은의 뜨거운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김화읍 사곡리에 ‘구은사(九隱祠)’를 건립했습니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박경수 앵커:

영월에 있는 ‘창절사’라는 사당이 생각나는군요. 철원에는 구은사라는 사당이 지어졌던거구요.

그리고 삼부연 폭포에 매료돼서 삼연이라는 호를 갖게된 분도 계시잖아요?

▶권혁진 소장:

철원군청에서 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삼부연폭포가 있는데, 철원 지역의 대표적인 폭포 중의 하나입니다. 삼부연폭포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삼연(三淵)이라 한 사람이 김창흡(金昌翕, 1653∼1722)입니다.    

 

권혁진 소장과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유적지 인근)

 

 

▷박경수 앵커:  

저는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해서 그런지....30년전 철원과 지난주에 갔던 철원 생각이 지금도 나는군요. 삼부연 폭포 변함이 없었습니다. 김창흡 선생이 삼부연폭포와 인연이 깊군요.

▶권혁진 소장:

삼부연폭포는 김창흡 집안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인 김상헌은 1631년에 삼부연의 발원지에 난리를 피할만한 마을이 있는데, 길이 험하여 갈 수가 없다면서 시를 남겼습니다. 김창흡의 아버지인 김수항은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을 갔다가, 1678년 철원으로 유배지를 옮기며 철원과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김창흡은 이듬해 삼부연 상류 용화동에 거처를 정하면서 철원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박경수 앵커(오른쪽이 남과 북이 각기 지었다는 승일교)

▷박경수 앵커:

철원의 역사가 흥미로워 빨려드는데요. 다음주에 얘기 이어가도록 하지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권혁진 소장:

감사합니다.

 

▷박경수 앵커:

다음주 목요일에 뵙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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