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17.6.27.화) 팟캐스트 다시듣기 ■

지난 24일, 서울시 공무원 필기시험이 있었습니다. 1,613명을 뽑는 시험에 무려 13만여 명의 응시자들이 몰려 평균 8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치러진 지방직 시험 경쟁률의 4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공무원을 꿈꾸는 청년층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13만 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놀랍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이유는 지방공무원 지역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방직 공무원의 경우 해당 시나 군에 3년 이상 주소지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은 지방직임에도 이러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인원이 몰리는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 교육시장도 계속 커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500억 원 수준이던 공무원시험 교육시장의 규모는 작년에 3000억원이 넘었습니다. 사교육 강사 평가 서비스 제공 업체 ‘별별선생’ 박세준 대표는 공무원 시험 교육시장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2014년 9급 공무원을 봤을 때 16만 명 치던 게, 지금 22만 명이 치고 있어요. 1년에 15%씩 성장하고 있는 거죠. 공무원시장은 결국 두 가지 정도의 거시적인 지표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는 거시 경제. 다른 데 취업하기가 어려우면 아무래도 공무원 시장에 쏠리는 경우가 있고요. 두 번째는 정책적인 것입니다. 사실 앞으로 3년 내지 5년 정도의 시장을 보면 이 두 가지 모두 앞으로의 시장 증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고요. 지금 노량진, 종로, 강남 정도에서 소위 말하는 인강을 팔 수 있는 강사가 770명 정도 됩니다. 이 시장이 앞으로도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연내 1만 2천여 명의 공무원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발표하자 수험생들의 기대감은 더 커진 분위기입니다. 실제 학원가에 물어보니 수강 관련 문의전화가 평소보다 늘었다고 합니다. 응시 연령 제한이 폐지돼 중장년층의 응시율이 늘고 있고, 올해부터는 7급 공무원시험의 영어 과목이 토익 등의 시험으로 대체되면서 어학원에서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공무원 시험 교육시장은 당분간 지속적인 성장을 보일 전망입니다.

그래도 수험생의 절대다수는 20, 30대의 청년층입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흔히 ‘공시생’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을 만나기 위해 노량진에 다녀왔습니다. 참 치열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새벽 네 시부터 공시생들이 줄을 길게 서기도 합니다. 인기 강사의 강의를 앞자리에서 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지방직 시험이 모두 끝나 그 정도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공시생들이 노량진에 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가장 큰 애로는 비용입니다. 숙박비에 학원비를 합치면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드는 게 현실입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년에 1,2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시험에 합격하는 공시생이 훨씬 적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공시생의 이야기입니다.

“일반 행정 7급 준비하고 있고, 노량진 원룸에서 준비한 지 1년 됐습니다. 어려운 점은 노량진 집값이 너무 비싸서.. 방값이 한 55만 원 정도, 학원비까지 해서 100 넘어갈 때도 있고. 그리고 그만큼 투자를 하면 확실히 뭐가 나왔으면 하는데 결과가 보장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께 기대는 것도 심리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죠. 또 공부라는 게 원래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교류가 없어서 혼자 지내면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기도 하고....”

86대 1의. 합격률이 2%가 채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알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대기업에서 2년 7개월을 근무하다 9급 공무원으로의 전직에 성공한 한 사례자의 이야기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통근시간도 되게 멀었고 그리고 팀장님의 분위기에 따라서 팀 분위기도 달라지는데, 팀장님이 휴가 쓰는 것도 싫어하고 야근을 해야 일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여서 그게 좀 더 힘들었죠.

실제로 일하는 양은 그렇게 많은 게 아닌데, 그냥 눈치 보다가 저녁 7,8시까지 눈치 보다가 같이 퇴근하는 형태가 많았던 거죠.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이 너무 부러웠는데 찾다보니 공무원이라는 직종을 알게 됐고...

(시험에 합격 후) 11개월밖에 안 됐지만 적응하는 시간도 빨랐고, 각자 자기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문화여서 자기 일만 다 하면 칼퇴근하는 분위기라서 이제는 저녁에 취미생활도 갖고, 운동도 하고 더 건강해진 거 같아요“

사실 9급 공무원이 되면 대기업 3년차 시절에 받던 월급의 반도 못 받습니다. 그래도 공무원을 원하는 것은 그만큼 젊은 세대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서 노량진에서 만났던 공시생도 한 컨밴션 기획 업계에서 반년 정도 근무하다 퇴사했다고 합니다. 새벽에 퇴근해서 잠깐 눈만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에서 미래를 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습니다. 1년에 43일 정도를 더 일하는 셈입니다.


“공무원도 요즘에는 칼퇴를 하고 그런 직업은 아니라고 알고 시작을 했어요.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60세까지 먹여 살려 주는 곳이 없으니까... 똑같이 열심히 일할 거면 그래도 좀 보장이 되는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나 생각했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우리 중산층 퇴직자의 91.6%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59세 이전에 퇴직한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고용시장은 불안합니다. 잔업과 야근을 강요하는 노동문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회사생활은 청년들을 노량진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공시생들이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에서 고독한 싸움을 벌입니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칩니다. 동작구청에서는 공시생들을 위해 노량진 공시촌 내에 ‘동작구마음건강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50분의 심리 상담을 비롯해 금연 상담, 불규칙한 식습관을 고쳐 줄 영양 상담을 진행합니다. 월 1회 대사증후군 검사도 지원합니다. 동작구마음건강센터 김경희 상담간호사는 더 많은 이들이 센터를 이용하기를 권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만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자꾸 좌절하게 되고 수험기간이 길어지는 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힘들다고 해서, 몸이 힘들다고 해서 그냥 있지 말고 찾아오셔서 적극적으로 본인의 건강을 챙기시는 게 좋고요. 그런 면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니까 많이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면 수험기간 동안 삶의 질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마음건강센터의 팸플릿에 적힌 문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공시생들이 지치지 않고 힘든 수험 생활을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 아침저널 최선호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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