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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출연 : 김원기 전 국회의장

[인터뷰 내용]
허성우 : <뉴스와 사람들> 허성우입니다. 의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원기 : 아 예 안녕하세요.

허성우 : 지난주 이후에 또 다시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김원기  : 예 반갑습니다.

허성우 : 오늘은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비밀 각서, 이 비밀각서와 관련해서 좀 말씀을 나눌려고 합니다. 이 비밀 각서는 김원기 전 의장님께서 고 허주 김윤환 의원 두 분과 쓴 자필 각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또 어떤 내용인지 직접 의장님께서 말씀해주시죠.

김원기 : 아마 13대 국회 때이지요.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과거에 군사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던 그러한 정치를 이제 민주화로 이렇게 바꾸는 (허성우 : 전환하는) 예 전환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참으로 난제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제일 우리 평화민주당 제가 소속했던 김대중 총재가 이끄시던 평화민주당의 경우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거기 사활적인 문제였고. 또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그때 그 소위 민정당, 거기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그 많은 희생자를 냈던, 낸 당사자라고 (허성우 : 가해자, 당사자죠 일종의) 볼 수 있는 소위 정우영 특전사령관 그분이 거기의 거의 중심적인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그밖에도 이제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많은 분들이 여당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가치관도 다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두 세력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치가 앞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아주 위기국면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서 또 과거의 군사정권에 이제 연장선상에 있는 모든 정치가 저질렀던 소위 여러 가지 비리들, 그걸 우리는 5공비리라고 했죠? 그 문제를 청산하지 않으면 시대가 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없는 이런 어려움이 있었고, 또 여러 가지 그밖에도 많은 난제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제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정치가 파국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전진하느냐, 그런 상황에 있을 때에 저하고 그때 다행스럽게도 허주 고 김윤환 의원과는 이제 당은 서로 다르고 입장은 다르지만 인간적으로는 신뢰관계가 있었어요.

허성우 : 그 당시에 허주 고 김윤환 의원은 조선일보 출신이고, 또 의장님은 동아일보 출신이고, 언론출신들이 그래도 만났으니까 뭔가 물밑협상에서 상당히 좀 얘기가 많이 통했겠습니다?

김원기 : 예 그래서 저는 정치에 있어서 신뢰라고 하는 것이 어려움을 해결하고, 대화정치를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유일한 이제 제일 처음에 제 저서라고 하기에는 민망합니다만 제가 책을 썼을 때,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이고 정치다 그래서 신뢰의 정치라고 하는 그런 책을 하나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때 저하고 김윤환 상대방 민정당 총무하고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자기 당 사정에 대해서 가감 없이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쪽 사정도 듣고, 대강 여야가 서로 협상을 하고 대화하고 할 때는 자기 당의 여러 가지 비밀스런 사정 같은 것을 감추고 대화를 하면 대화가 제대로 안돼요. 그런데 이제 서로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이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서로 그 사정을 감안해서 주고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밤을 새가면서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고, 때로는 충돌도 하고 하면서 하나하나 해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광주 문제는 그 당시에는 소위 민정당 쪽 그 쪽은 이제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고 광주 사태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또 그 동기에 대해서 대단히 오해가 있었고 불순한 주장을 하던 세력이 있을 때인데, 그래서 이제 광주사태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가치부여를 하고 그렇게 규정을 양당에서 합의를 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하고, 어떻게 명예회복을 하고, 또 앞으로 어떻게 그 지역에 대한 배려를 하느냐 하는 문제도 대화를 통해서 전부다 해결을 했습니다. 그 밖에도 5공비리 관계도 서로 5공청산 관계도 그 당시에 5공비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합의를 했어요.

허성우 : 의장님께서는 그 당시에 김대중 총재가 계셨잖습니까. 그때 원내대표를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여야간에 협상을 할 때 에는 어떤 전권을 위임을 받아야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 당시 의장님께서는 전권을 위임 받으셨습니까?

김원기 : 예 그랬죠. 말로써 전권을 너한테 주겠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느냐하면 김대중 총재께서 저에 대해서 전적으로 신뢰를 해서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또 상대방 쪽에서 김원기하고 대화를 해서 협상이 성립이 되면 김대중 대통령과 그 당이 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저하고 이제 모든 것을 협상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허성우 : 그 이제 그 당시에 각서를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사실 이행하는 과정들 각서에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각서를 이행하려면 그러면 이제 이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래도 좀 의장님께서 그 당시에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까?

김원기 : 예. 사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준 것이 또 큰 것을 주었어요.

허성우 : 그게 뭐죠?

김원기 : 뭘 주었냐면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때 국민들한테 공약한 것이 있어요. 중간평가를 하겠다고.

허성우 : 아 중간평가 네. 그 당시에 말이 많았죠.

김원기 :자기가 대통령이 당선될 때, 당선 된 걸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2년 있다가 중간평가를 해서 국민들이 자기를 보고 정치를 잘했다고 평가를 하면 대통령을 그대로 할 것이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대통령을 잘못, 정치를 잘못했다고 하면 자기가 대통령을 그만둘 것이다 라는 공약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이제 저는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크게 그것을 양보를 하고, 그 대신에 당신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역사적인 평가를 하고, 거기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고, 또 지방자치제를 회복을 하고, 그리고 앞으로 민주화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 이것을 받아들이고, 그밖에도 그동안에 여러 가지 비리에 대해서 책임 있는 사람들을 정치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또 사법처리 할 것들은 사법처리를 하고 또 언론 탄압한 것에 대해서도 그 책임자들을 (허성우 : 처벌하는 거죠) 처벌하고, 그밖에 많은 합의를 했는데, 우리가 준 것은 뭐냐면 중간평가를 그때 사실 이런 시민사회나, 그런 쪽에서는 대통령이 선거 때 약속한 건데, 그것을 양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해서 사실은 심한 반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아 전 대통령. 그때는 제2야당이 있는데, 김영삼 총재 쪽에서는 정치가 제 1당인 민정당하고, 제 1야당인 평화민주당하고 둘이 양대 세력이 정치를 주도해 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불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든 근본적으로 바꿔봐야겠다 하는 이것 때문에 판을 깨면 새로운 세력 형성이 되니깐, 그것을 강력하게 했어요. 그런데 나는 그때 어떤 가치 판단을 했냐 하면 중간에 이제 이런 협상을 하기 직전에 노태우 정권이 탄생한 다음에 가장 큰 일이 뭡니까? 올림픽 아닙니까?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어요. 국민들이 거기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을 했습니다. 또 실적을 따지자면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만 우리가 처음으로 요사이에 자기 손으로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처음으로 만들어 내서 그런 말하자면 대통령을 처음으로 탄생시켰는데, 결정적인 것이 없이 그 대통령을 말하자면 지금 탄핵과 같은 그런 조치를 한다는 것이 과연 국민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는데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가졌어요. 

허성우 : 그 당시에 이제 의장님께서 어떻게 보면 노태우 정부를 2년 더 연장을 시켜줄 조건으로 사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 보상 문제도 다 받고, 그 다음에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

김원기 : 뭐 그밖에도 거의 청문회 제도라든지, 여러 가지 앞으로 정치를 크게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민주화 입법이라든지, 이런 것을 여기 각서 내용에 다 있습니다만 심지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국회에 불러내서 국회가 청문회를 하는 그런 것 까지도 합의를 다 했어요.

허성우 : 그것이 5공청문회 아닙니까?

김원기 : 네, 5공청문회죠. 그리고 이제

허성우 : 5공청문회에서도 노무현 그 당시 의원이었던 스타가 됐죠.

김원기 : 노무현 의원이 영웅으로 탄생을 한 거고, 그런데, 

허성우 : 청문회 스타가 됐죠.

김원기 : 그 다음 정치의 새로운 전개를 하게 된 중요한 결정들이 다 말하자면 저하고 김윤환 총무하고 사이에 협상을 통해서 비밀각서로써 합의한 그것이 이제 시작으로 해서 정치가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 입니다.

허성우 : 그럼 이제 이 지금 의장님께서 저한테 보여줬던 각서로 인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첫출발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까?

김원기 : 그러한 중요한 발전의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죠.

허성우 : 계기쯤이 되었네요?

김원기 : 네네

허성우 : 그런데 이제 그 당시에 민정당 입장에서, 5공청산을 이제 그 당시 원내대표인 의장님께서 들고 나왔을 적에, 사실 그 민정당 입장에서는 꽤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어떻게 좀 상당히 물밑협상 하기에는 굉장히 껄끄러운 상황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김원기 : 네 그때 사실 김윤환 총무가 굉장히 고통을 많이 받았죠. 우선 이 전두환 대통령은 김윤환 총무도 그렇고 노태우 대통령, 또 민정당의 중요한 모든 사람들이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 아닙니까? 

허성우 : 또 친구들이지 않습니까?

김원기 : 예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을 국회에 불러가지고 심문을 하는 이것을 승낙하는 일은 어려운 일 아닙니까? 또 개인적인 얘기를 해서 좀 미안합니다만, 김윤환 총무와 정호영 당시 국회의원 그 전에 특전사령관 그 두 사람은 동기동창으로서 개인적인 관계가 형제처럼 가까운 그런 처지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우리가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특전사령관인 정호영 씨가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치를 그만두고 물러나지 않고는, 우리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허성우 : 그 당시에 정계은퇴 선언을 요구를 한 것이죠? 

김원기 : 아 네. 정계은퇴를 시켰죠. 시켰는데, 노태우 대통령도 그렇고 김윤환 총무도 그것만은 봐달라고 간곡한 사정을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 총재한테 말씀을 했고,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저한테 말씀한걸 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당신이 앞으로 대통령을 출마하고 대통령이 되려면 문제가 군부 아니냐, 그런데, 이번에 한번 정호영한테 배려를 해주면 , 정호영이 군부와 사이에 여러 가지 가교역할도 할 수 있지 않냐 이런 말도 했고, 그리고 김윤환 총무는 저한테 사실 눈물 바람까지 했어요. 나하고 내가 오늘이 있는 것은 친구인 정호영 덕이 컸다. 그리고 우리가 한 집에서 같은 빌라에서 위아래 층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 집사람이 정호영 그 문제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려가지고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이걸 봐줄 수 없느냐, 이것 하나는. 그래서 제가 그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도 정호영씨 개인에 대해서는 내가 그 사람의 인간적인 평가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게 하지 않더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 사람이 그 엄청난 광주민주화 운동을 지휘한 부대의 수장인데, 그 사람에 대한 처리가 없이 광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친구에 대한 의리를 선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정호영에 대해서 책임을 지우고 물러나게 하지 않고는 광주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광주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집권세력인 민정당하고 우리하고 제 1야당하고 타협의 길이 없어. 우리는 계속 밀고 나갈 도리밖에 없으면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는 성공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대통령인 노태우를 선택하든지, 친구를 선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허성우 : 그렇게 배수진을 쳤군요.

김원기 : 네 제가 그렇게 얘기 했어요. 그래서 이제 결국 결심을 하게 된 거죠.

허성우 : 지금 이렇게 보면 그 당시에 막후에서 참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만, 또 한편으로 보면 우리 정치 헌정사를 얘기하다 보면 김윤환 고 의원하고, 김원기 그 당시에 총무님하고 지금 의장님이죠. 두 분의 얘기를 많이 하면서 사실 그 당시의 정치가 상당히 낭만적이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정치하고 그 당시의 낭만적인 정치하고 비교를 하면 어떻습니까? 의장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김원기 : 그때 낭만적이었다는 표현까지는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서로 주장은 다를지라도 신뢰는 변치를 않았어요. 그래서 당에 돌아가면 고통을 받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두 협상통로 이것을 유지하면서 성공시키지 않으면 결국 정치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없고 파국에 갈 수 밖에 없다고 공인으로서 정치 지도자와 정치인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서로 양보를 했죠. 

허성우 : 그래서 어쨌든 그 당시에 13대 때, 협치의 정치의 원조라고 봐야겠죠. 그 당시에는 그런 차원에서 어쨌든 지금 정치를 하는 분들이 13대 정치를 좀 본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해서요, 지금 남북관계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북한과의 대화관계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남북한의 대화보다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사일을 계속 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북관계가 과연 개선이 되겠냐하는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앞으로 이 남북관계에 대해서 의장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김원기 : 제가 문재인 정부 때가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실 때, 그 때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원로 회의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는데, 나한테 간곡하게 부탁을 그쪽에서 해가지고, 거기 제가 참여를 했어요. 근데 그때 거기에 가서 제가 주장을 한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남북 관계정책에 대해서 상당히 변화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또 완전히 이명박 대통령이 또 후퇴를 시켰잖아요. 그래서 대화의 통로가 단절되고 막히고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제가 남북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를 했냐면 자유 민주 사회에서 살던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는, 북한이라고 하는 사회, 이것이 도저히 상식가지고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세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한반도, 우리 한민족의 앞날을 볼 때, 이게 운명이 크게 바뀌는 하나의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은 틀림없는데, 거기에 아무리 상식 밖의 집단들일지라도, 그 집단이 운명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상대임에는 틀림없지 않나. 그래서 반대하고 서로 비판하고 할지라도 대화의 통로를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우리가 대화의 통로를 완전히 차단하게 될 때, 북한으로서는 불가피하게 내가 보기에 중국의 품에 안겨 버리는 방법 밖에 없어 생존을 위해서. 그러면은 우리 운명의 결정에 우리의 영향은 전혀 그 쪽한테 미치지 못하고, 하는 속에서 북한을 중국의 품으로 밀어 넣어 버리는 잘못을 범하면 안 된다. 

허성우 : 네 어쨌든 우리 의장님께서 어쨌든 남북관계의 교량, 가교 역할을 상당히 그동안 많이 해오셨네요. 오늘은 시간상 남북관계에 대한 얘기는 여기쯤으로 듣기로 하고요, 오늘 바쁘신 데도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의장님. 늘 건강하시고요. 다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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