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국회의원은 요즘 말로 ‘혼밥(혼자 먹는 밥)’ 매니아입니다. 국회로 출근하는 날  점심은 가급적 도시락으로 때웁니다. 여비서는 만원이 조금 넘는 도시락 1개를 전화로 주문해서 차려주고 구내식당으로 향하곤 합니다. 의원실 식구들의 단체 도시락이 배달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의원님 도시락’은 보좌진에게는 애물단지입니다. 정오에 맞출 필요없이 들쭉날쭉이 가능한 의원의 ‘혼밥 스케줄’로 보좌관, 비서관들의 개인적 약속은 펑크가 나기 일쑤입니다. A 의원 일정표에 외부인들과의 식사는 대부분 지역구 행사입니다. 표를 얻으러 관내 식당을 누비는 지역구 아닌 곳에서 그는 철저히 혼밥을 고수합니다. 여의도 정치무대 경력이 많은 다선(多選)이면서도 공식 행사가 아니면 동료 의원, 출입기자, 심지어 의원실 식구들과도 밥 자리에서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지역구에서 뛰어난 언변에 두주불사형으로 술을 마시며 친화력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 알만한 사람은 그를 숨겨진 ‘불통의 달인’으로 분류합니다. 독특한 처세술은 그를 다선 의원으로 만들었지만 그를 ‘유망한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B 국회의원은 사람들을 끌어모아 밥 먹는 일을 즐깁니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의원실 식구들을 죄다 데리고 나가 ‘번개 회식’을 하곤 합니다. 국회 앞 식당까지 걷다가 친분있는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대뜸 선약이 있는지 물어본 뒤 밥 자리에 끼워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 국비 예산 확보를 부탁하러 찾아온 하급 공무원들에게 밥을 사겠다며 식당으로 데려간 자리에 예정없이 합석한 인사는 이렇게 귀뜸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느긋하게 일어나서 또다른 점심식사 자리에 가는 것이 의아해 보좌진에게 이유를 물어 봤더니 당초 선약이 있었다더라” A 의원처럼 다선 중진인 B 의원은 여타 의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재산이 많지도 않고, 더 큰 정치적 목표를 의식해 이미지를 관리해나가는 타입도 아닙니다. 다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자기 것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은 성품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국회의원급 정치인의 행위는 밥 한 그릇 먹는 일부터 ‘전략적’으로 비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지역구에서 표를 계산해 식당을 드나드는 일보다 훨씬 많은 공력을 여의도 식사 자리에 할애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테지요. 그는 기자, 당직자, 국회 사무처 직원 등에게 소통을 잘하는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해 있습니다.

 흔히들 정치는 밥 먹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식사를 통해 이른바 ‘밥상머리 정치’를 구현하는 지도자급이 아니라더라도 정치인에게 식사 자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임이 분명합니다. 임기 내내 ‘불통’ 논란에 허덕이다 결국 탄핵과 구속으로 급격히 추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별일 없으면 또는 되도록이면 ‘혼밥’을 먹어왔습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소용없는 일이지만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식사 정치’를 생활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국정감사 23일 동안 같은 상임위원들, 야당의원들하고 차 한잔, 밥 한번 안 먹었고, 먹자는 말도 안 했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안철수 전 대표를 흠잡을게 밥 안 사는 것 밖에 없는가”라며 “안 전 대표를 깨끗한 후보로 증명해준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반격했습니다. 대선주자급 인물의 식사 모습이 마침내 논쟁거리로 등장했습니다.

 홀로 즐기는 스마트 시대에 ‘혼밥’, ‘혼술’은 흠이 아닌 생활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불통의 시대를 겪으며 새로운 통합의 리더십을 갈망해온 국민들에게 ‘정치 지도자의 혼밥’이 갖는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라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하나를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은 불교에서도 오랜 전통이고 그 모습은 승가의 ‘발우공양’이 대표적입니다. 불가의 음식 수행법인 발우공양을 할 때 스승과 제자는 한 자리에서 똑같이 음식을 나눠먹고 함께 그릇을 닦습니다. 위 아래가 없는 이 식사 자리에서 분별심과 아상(我相)은 사라지고 상생과 소통의 기운이 솟아납니다. 이런 식사 형태는 자유로운 비판과 난상토론이 가능한 불교식 소통의 장인 대중공사(大衆公事)와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부처님 시대부터 대중의 동의를 얻어 청규(淸規)를 살리려 시행해온 대중공사는 정치권이 소통의 방식으로 참고한다면 좋을 듯 합니다.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이들 후보들이 평소 어떤 사람들과 즐겨 밥을 먹는지, 혹여 혼밥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검증이 될 듯 합니다. 위 아래 없는 식사를 애써 회피하는 인물이라면 대중공사가 갖는 참 의미를 이해하고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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