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피의 사실이 최순실의 공소장에 찍혔을 즈음이었다. 한 권의 소설책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병태의 초등학교 5학년 한 해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교내 문제에 눈을 감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담임선생님과 그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받아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가짜 모범생’ 엄석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석대의 횡포에 저항했던 병태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달콤한 굴종의 대가에 눈을 뜨게 되기까지... 말하자면 입 아픈 이들의 삼각관계는 최순실과 대통령, 그의 권력 밑에서 부역자로 살다가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라는 진술을 반복하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들에 겹쳐지면서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저자의 손을 떠난 작품은 오직 독자만의 것인 걸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재조명되고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던 이들은 지난 주 저자가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계기로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완전히 오독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듯하다. 논란의 핵심은 그가 나날이 세를 덧불리고 있는 촛불집회를 폄하한 것이다. 특히 그는 글에서 촛불집회는 4500만 명 중 단 3%가 나온 것이라고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에 대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촛불집회를 북한의 ‘아리랑 축전’으로 비유한 내용은 남의 말인 것처럼 전언의 형식을 슬쩍 빌렸다 해도 너도나도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하지 않겠다며 밖으로 나온 시민들을 그저 ‘밤새 몰려다녔다’고 표현한 대목은,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래서 이길 자신이 없다는 한 진보논객의 푸념까지 연상케 했다. 

  작가는 촛불집회에 가봤을까. 아마도 아니라고 본다. 촛불집회의 성난 민심 근저에는 좌파 세력과 대세를 추종하는 미디어의 선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첫째는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국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헌정파괴라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비선 실세’ 일당이 각종 특혜를 손에 쥐고 국정을 농단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스스로 검찰조사, 진상규명을 거부하고 불소추‘특권’에 숨고, 국회에 불을 쏘시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가 옳지 않은 것임을 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밀실정치 등 기득권 집단의 구조적 병폐를 털고 새시대로 가자는 것이다.

  최근 이문열 작가 외에도 윤창중 씨 등 대통령의 호위무사들이 튀어나와 광장의 촛불을 힐난하는 배경에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보수 세력의 두려움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솔직한 말로 무서울 것이다. 100만, 또 전국의 200만. 여느 광역시의 인구 숫자에 달하는 시민들이 한데 모여 있는데도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두 달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재벌기업의 노조파괴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 세월호 때문에 가슴속에 자식을 묻어야 했던 부모들, 입시비리에 분노하는 학생들, 이들 중 누구 한명은 쌓인 울분을 토해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혹여 충돌이 생겨도 “비폭력”을 외치며 사태를 군중 스스로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면 200만 명이 그 하나의 목표를, 진의를 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소설가 김영하는 촛불집회에 나가겠다면서 아주 유쾌한 메시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쏟아지는 뉴스보다 재미없는 소설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소설가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나날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뉴스가 나오는 세상, 누군가 우리에게 이 일련의 사태가 사실 소설이었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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