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17대 총선 무렵이었습니다. 판,검사 출신 정치 지망생들이 쏟아져나온 때였습니다. 대구에 도전장을 낸 젊은 검사 출신 1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달리 호기로운 모습과 현직 시절의 거침없는 언행들이 기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공천을 거머쥘 가능성이 있어 보였을까요? 그에게 취재차 전화를 걸었습니다. 출마 동기 등 이런저런 사항을 묻다가 대뜸 “믿는 종교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주저없이 "성당에 다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취재수첩에 ‘000, 천주교 신자’라고 적었습니다.
이후 그는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의 이름은 인접한 지역구의 공천자 명단에 떡 하니 올라 있었습니다. 아까운 인재라며 당이 특별 케이스로 배려해준 것이었습니다. 곧 그 지역구는 대구에서 이례적인 ‘격전지’가 됐고, 방송 인터뷰를 위해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주한 자리에서 수화기 너머 그가 ‘천주교 신자’란 점을 강조했던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서서 사무실 벽에 걸린 칠판 앞으로 가더니 분필을 쥐고 마치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치듯 ‘불교 신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큰 목소리로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그의 신앙은 ‘천주교’에서 ‘불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처음 출마했던 지역은 큰 성당들이 몰려있는 도심 선거구였고, 나중에 옮겨간 곳은 곳곳에 사찰이 산재한 불교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는 며칠 뒤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만나본 대부분의 불자(佛子) 정치인들은 자신이 불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선거철에는 더했습니다. 한결같이 얻는 표보다 잃는 표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천주교에서 불교로 갈아탄(?)것은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올해 초 불자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국회 정각회 회원이 42명에서 40명으로 줄었습니다. 야당 의원 2명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 탈퇴를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각회 회원을 관리하는 국회 실무자는 “불자라는 사실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냐”라고 해석했습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유권자들이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불교 신자인지, 아닌를 파악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후보자를 직접 만나서 꼬치꼬치 캐물어야만 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와 천주교의 경우는 확연히 달라보입니다.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지역구에서는 교회 신도들이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맡아 해주고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독 불자 유권자들만 자신의 신앙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불자 후보들의 소극적인 모습에 ‘같은 종교’라는 나름의 현존하는 선택 기준 조차 갖지 못한 상황이 돼버린 듯 합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에게 ‘개인적 신앙’이 자격 요건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자이거나 불교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 민의의 전당에 다수 포진해 있어야 하는 것은 불교계의 희망을 넘어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민족문화 유산 가운데 불교 예술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불교 문화재는 예술성과 가치를 공인받은 우리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두달 전 ‘국회 지하 법당과 불자(佛子) 의원’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주장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이 후보자의 능력이나 도덕성, 청렴성, 정책 등이 평가 기준이 되지 않은채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선거로 기록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동시에 ‘눈 밝은’ 불자 유권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빛을 발하는 선거가 되기를 발원합니다./이현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