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다가가 친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곁을 주지 않으셨다. 이미 ‘법정(法頂)’이라는 법명은 하늘과 땅의 무게로 세상을 주유하고 있던 터라 서둘러 눈에 들어 손이라도 한 번 잡고 싶었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병든 열정과 치기로 들떠있던 20대의 끝을 잡고 우연찮게 몇 번 뵀던 스님은 그러하셨다.

스님의 말씀은 기억이 난다. 특별히 기자에게만 해주신 말씀은 아니었다. 동행한 모든 이들과 함께 말석에서 귀동냥하듯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도(茶道)에는 문외한이라 요구르트 반병도 안 되는 쓴 물 한잔 얻어먹는 데 참으로 시간이 오래도 걸린다싶었다. ‘무소유’에 등장하는 수연(水然)스님 얘기를 하셨고 어린왕자 얘기도 하셨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 물건은 없다)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고,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生也一片浮雲氣 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쓰러지는 것이다)을 언급하셨다.

순간 바로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복기했다. 이렇게 유명한 스님이 말씀하시는 건 무슨 뜻일까 하는 호기심과, 몰라서 언젠가 겪을지 모를 남루함을 모면하고자 그리했던 것 같다. 복기가 필요 없는 말씀도 있었다. “사람은 태어나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 세 가지 일이 모두 같으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죽는다. 꼭 한 가지만을 고른다면 ‘해야 할 일’을 택하라”, “이제 끝이라든지, 다시는 안 본다든지, 영원히 헤어지자라든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든지, 요즘 사람들은 ‘마지막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살면서 ‘마지막 말’만큼은 아끼고 또 아껴라”

그렇게 뵙고 십 년 가까이 뵙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문득문득 듣노라니 주로 산에 계신다고 했다.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학(鶴)처럼 노니신다고 했다. 지금의 기자보다도 어린 나이에 쓰신 ‘영원한 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사람 그림자 끊기고 홀로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어 버린 것이다. 서너 자 높이의 사립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고단하면 자고 주리면 먹으면서 시름없이 지내는 것은 단순한 은둔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절 인연이 오면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기 위한 침묵의 수업이다”

6년 전, 이런 무심한 봄날에 스님은 소풍가듯 가셨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지(遺志)를 남기셨다. 이 유지를 놓고 ‘법정스님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스님을 보낸 불교계는 비루해졌다. 온갖 다툼과 반목, 질시와 음해로 정법은 흔들리고 삿된 견해만 무성해졌다. 지난 그 오랜 세월, 좌복을 털고 분연히 일어나 우리 불교를 지켜냈던 눈 푸른 납자들은 언제쯤 다시 오는 것일까.

가는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소중했던 기억들을 무자비하게 띄워 마구잡이로 흘려보낸다. 한 때는 내 삶에 버금갔던 귀중한 인연들이 어느덧 똑같은 색깔로 희미해지고 아득히 멀어져간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이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망각의 파괴력을 뚫고 가슴을 후벼대는 옛 잔영(殘影)이 있다. 여전히 기자만 예뻐해 주지 않으셔도 좋다.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으셔도 좋다. 차 한 잔 주시는데 하루 종일 걸려도 개의치 않겠다. 그저... 다만...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스님이 좋아하는 꽃이 핀다. 스님이 좋아하는 바람이 분다. [사회부장] [2016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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