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나만 쳐다봅니다. 아무렇게나 파진 주름이 더욱 더 제멋대로 눈가를 휘저어 거의 눈망울이 보이지 않는 연로한 아버지와 이제 남은 건 ‘눈물’ 밖에 없으면서도 오지랖 넓게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챙겨주려는 어머니, 그리고 별보며 나가 별보고 들어오는, 그야말로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공무원 아내와 맞벌이 부모 밑에서 늘 혼자 잠들어야 하는 딸아이까지 모두들 나만 쳐다봅니다.

직장에서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가장 많은 일을 가장 오래해야 하는 연조가 됐습니다. 위에서는 쉼 없이 지시와 주문을 쏟아내고 밑에서는 끊임없이 사고를 칩니다. 잘하면 시기와 질투, 견제의 대상으로 밤낮없이 물어뜯기고, 못하면 비난과 조롱의 먹이감이 돼 이슬처럼 사라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느 쪽도 지킬 자존심은 이미 없습니다. 오해와 음모는 돌림노래처럼 난무합니다. 친구들과 지인들도 한 숟가락씩 보태주기를 희망합니다. 살짝만 밀어주면 된다며 언제나 징징거립니다. 죽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면 왜 이것밖에 안 해주느냐고 서운해 하고, 정말 힘이 안 돼 못 도와주면 이미 남이 돼 저만큼 떠나가면서 말입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니 숱한 붓다(Budda)의 노래 중에 가장 와 닿은 것은 역시 인생고(人生苦)입니다. 지금껏 제 삶의 전부라고 여겼을 좋은 순간들이 왜 없었겠습니까. 합격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승진을 하고 상을 받고, 바라던 바를 이루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심장이 쫄깃해지는 쾌감으로 흥청거렸겠지요. 그러나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은 제 삶 굽이굽이에서 참으로 짧았습니다. 당신들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제 인생도 대부분 고단하고 쓸쓸합니다. 남들 걸어갈 때 뛰어가면서 겨우 겨우 까치발 딛고 제 삶의 무게를 지탱해냅니다. 진실로 우리 모두는 잠시 행복할 뿐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새해 벽두부터 지난날이 자꾸 떠오릅니다. 실속 없이 요란스러웠지만 즐거웠던 내 어린 유년의 단상들과, 분명 헝클어졌지만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자부심이 넘쳤던 내 젊은 날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간 것은 항상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 애틋한 사모의 정을 미처 드러내지 못하고 너무나 빨리 갈림길을 만난 첫사랑 소녀의 지금 모습을 애써 상상하지 않는 것도, 한때는 제 삶에 버금가는 소중함이었던 옛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도, 떠나고 나선 단 하루도 잊지 못했던 대학 캠퍼스를 오늘도 그리워만 할 뿐 굳이 찾지 않는 것도, 내 추억 속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그 편린(片鱗)들을 현재의 낯선 모습으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여 실망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칠흙같은 어둠의 밤. 북구의 이름 모를 별들은 바람의 얘기를 듣고 저마다의 길동무를 찾습니다. 갈 곳 없는 짐승들과 갈 길 잃는 짐승들도 어미의 애타는 울음을 지표삼아 쉼 없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지천을 떠돌던 모든 방랑자들마저 평온을 찾은 이 밤에도 나는 서러운 피로를 눈물삼아 구슬피 울 뿐입니다. 홀로 섰다고 의기양양했을 때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불러볼 개도 하나 없이 오직 내 두 발로만 땅을 물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이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붉은 피를 흘리며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이 서늘한 감동과 벅찬 희망으로만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사회부장] [2016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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