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스님은 지난 2010년 5월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중단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마지막 수행처인 군위 지보사 근처 낙동강 지류인 위천 제방에서 소신공양 했다.
양창욱 : 28일 '양창욱의 아침저널'[FM 101.9 MHz (서울)] 1부 '불교를 말하다' 시간입니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서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 입적 5주기를 맞았습니다. 31일날 추모다례재가 조계사에서 봉행된다고 하는데요. 문수스님의 마지막 도반이셨던 원범스님 모시고 얘기나눠보겠습니다. 스님, 나와계시죠?
 
원범스님: 예, 안녕하세요.
 
양창욱 : 예, 안녕하십니까. 아침 일찍 감사합니다. 살아생전에 문수스님과 각별한 인연이라고 들었습니다.
 
원범스님: 예예.
 
양창욱 : 어떤 인연이신지...
 
원범스님:예, 문수스님과는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만나서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가까이 지내면서 종단개혁불사에도 같이 동참을 하였고, 그 후에 문수스님은 선방에, 소승은 대구 연꽃마을 은혜사 본사 말사에서 소임을 보아왔고요. 문수스님은 해제를 하면 제가 사는 곳에 오셔서 걸망을 풀어놓고, 이용객처럼 15년동안을 같이 지내왔습니다.
 
양창욱 : 예, 그러셨군요. 15년. 중앙승가대에서 회장을 하셨죠? 문수스님께서?
 
원범스님: 예.
 
양창욱 : 예, 그렇군요. 수행에 그렇게 엄격하고, 치열했던 분으로 저희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범스님: 예예.
 
양창욱 : 어떻게, 어느 정도였습니까?
 
원범스님: 사실 선방에 가서 정진하는 것도 어렵지만 여름안거, 겨울안거 한 철도 빠지지 않고, 대학 4년 빼고는 25년을 계속 선방을 다니셨거든요. 그러고 또 해제하고 나오면 한 끼 이상 먹지 않고 하루 8시간 이상을 정진하셨습니다.

양창욱 : 그렇군요. 먹는 것에도 그렇게 연연을 하지 않으셨군요.

원범스님: 그렇죠.
 
양창욱 : 예, 보통 수행정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출가 이후의 생활을 수행생활에 주로 전념하셨던 문수 스님께서 4대강 사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좀, 세속의, 세간의 일 아닙니까? 이런 것들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죠? 수행에만 전념하셨던 분인데...
 
원범스님: 스님들은 결국 수행을 해가지고 회향을 중생들에게 돌리니까, 4대강을 개발을 하게 되면은 말 못하는 중생들까지도 다 죽는 그런 경우가 생기잖아요.
 
양창욱 : 그렇죠.
 
원범스님: 그러니까 수행하는 수행자로서 그것을 막아보려고, 노력하셨던 거죠.
 
양창욱 : 예, 그렇군요. 늘 바깥세상의 돌아가는 소식들에도 늘 귀를 열고 그러셨던 모양이에요. 문수 스님이.
 
원범스님: 시사지나 이런 책들을 많이 보셨죠.
 
양창욱 : 그러셨군요. 4대강 공사, 전 정권인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에 어떤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안 드셔하셨고, 나쁘다 이렇게 생각하셨나요? 문수 스님께서는?
 
원범스님: 사실 사찰에서 불사를 하면 미리 요령을 흔든다든지 목탁을 쳐서 땅속에 사는 지렁이나 이런 중생들까지도 이사갈 수 있는 시간을 주거든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데 4대강 사업이 부분적으로는 물론 성공을 했다고 하지만, 4대강 부근에 국토에 있는 흙을 그냥 퍼버리고 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중생들이 죽고, 피해가 많기 때문에 그런 반대를 하신 것 같습니다.
 
양창욱 : 예, 저희들이 이제 가장, 저희 재가불자들 입장에서 가슴 아프고, 또 고개가 숙여지고 그런 일이... 마지막을 소신공양으로 이제 항의하시고, 이 세상과 작별을 하신 거거든요. 이런 어떻게 보면 저희들 입장에서는, 물론 제일의 보시다, 이런 말씀도 불가에서는 하고 있지만, 저희들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었느냐 이런 생각도 좀 듭니다. 왜 이런 방법을 선택하셨는지...
 
원범스님: 무한 권력, 큰 권력에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작은 거 가지고는 안되니까. 당신 3년 동안 지보사에서 선방문 걸어 잠그고 정진한 힘을 그 대중들에게 소외계층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 회향을 하려고 혼자 준비를 하셨던 것 같아요.
 
양창욱 : 혼자요?
 
원범스님: 예,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남에게 전혀 부탁한다든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오셨거든요. 해제비 받으면 그 해제비만 가지고 생활하셨고, 도반들이 여비를 주면 받았다가 그냥 방석 밑에 놔두고 나가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거든요.
 
양창욱 : 예, 그러시군요. 그런데 정말 소신공양이라는 거는 진짜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하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알려진대로 가장 높은 수준의 방법인가요?
 
원범스님: 그렇죠. 불교 1700년사에 처음이고, 또 문수스님이 해제를 하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이쪽을 많이 가셨어요.
 
양창욱 : 아, 그러셨군요.
 
원범스님: 예, 평소에 틱광둑스님이라고 하는 베트남 스님이 60년대 베트남 정부하고, 미군정시절에 틱광둑 스님이라고 소신공양을 해서 베트남 국민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하신 분이 있었는데, 그 문수스님이 말도 통하지 않는데 베트남을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양창욱 : 아, 그러셨군요.
 
원범스님: 예예. 전생에 그 쪽에 틱광둑 스님하고 어떤 인연이 있지 않았을까.
 
양창욱 : 틱광둑 스님이요?
 
원범스님: 예예.
 
양창욱 : 그 베트남 스님께서 소신공양하셨군요... 그러셨군요. 그 분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또 볼 수 있겠네요.
 
원범스님: 예예.
 
양창욱 : 그렇군요. 스님께서는 참... 기분이 어떠셨을까요. 당시에 기가 막힌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누구보다 가까웠던 도반이셨는데..
 
원범스님: 당시에 대구 연꽃마을하고 군위 지보사 주지 스님을 맡고 있었는데, 문수스님은 지보사 선방에서 3년 동안 계속 정진 중이었고 소신공양은 상상도 못 했죠.
 
양창욱 : 그러셨군요.
 
원범스님: 잘 모시지 못한 괴로운 마음이 지금도 있고, 옳은 일이긴 하나 다른 방법으로 해도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고요, 같이 하지 못한 그런 괴로운 마음,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양창욱 : 예, 스님.
 
원범스님: 스님들은 회향을 중생들에게 하는 것을 항상 발원하기 때문에 누구한테 뭘 한다 이런 것을 말하지 않거든요.
 
양창욱 : 그러니깐요.
 
원범스님: 자기 혼자 공부하고 정진하는 것을 마음먹으면, 옳은 일이다라고 하면 해버리는 그런 면이 스님들한테 좀 있습니다.
 
양창욱 : 예, 그렇군요. 문수 스님은 "이명박 정권은 4대강 공사를 즉각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라" 이런 취지의 유서를 남기셨는데 이런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 계신다고요. 스님께서.
 
원범스님: 이제 제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들, 종단에서 그동안 5년 동안 다례재를 모셔주셨고, 부도탑 제막, 사진전이라든지, 청춘토크파티 등 다양한 추모 선양사업을 해왔습니다.
 
양창욱 : 예, 그러셨군요.
 
원범스님: 이 자리를 빌어서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양창욱 : 알겠습니다. 스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원범스님: 예예.
 
양창욱 : 오늘 아침, 참으로 숙연해지는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대구 남지장사 주지 원범스님과 함께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