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상캐스터들, 단순한 전달자일뿐 전문성 없어"

▲ 국민기상캐스터 김동완 선생님

 양창욱 : 29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3부입니다. 목요일 3부는요.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순서로 꾸밉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최초의 기상통보관 김동완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선생님 나와 계시죠?
 
김동완 : 네, 수고하십니다.
 
양창욱 : 네. 아침 일찍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동완 : 네. 요즘도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양창욱 : 어떤 일 하시면서요?
 
김동완 : 요즘도 가끔 방송도 하고, 요즘은 고정채널은 없으니까 이 방송 저 방송 그냥 요구하는 대로 출연하고. 또 이제 기업체 강의도 나가고
 
양창욱 : 아, 네. 기업체 강의...
 
김동완 : 그리고 또 내 나름대로 주례도 서고.
 
양창욱 : 아, 주례도 서시는 군요.
 
김동완 : 네, 그렇습니다. 이게 나이가 좀 들었다는 얘기겠죠. 그런가하면 내 자신을 위해서 조금 뭔가 배우느라고 왔다 갔다 하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짧아요.
 
양창욱 : 네 하루해가 짧군요. 대한민국 최초의 기상통보관이다 이렇게 소개를 해드렸는데 이게 맞습니까?
 
김동완 : 사실은 틀린 애깁니다. 제가 근무 할 때 그 당시 우리 기관 이름이 중앙기상대였습니다. 통보관이라는 소리가 나오던 시기가 중앙기상대는 직계 상으로 보면 통보관이라는 직계가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처음 제가 한참 방송 할 때는 공문 서열로 봐서는 사무관직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에 그런데 제가 방송이 끝나고 나면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분이 지금까지 중앙기상대 김동완 사무관이 전해드렸습니다 이런다고 하니까 그것도 좀 이상하거든요. 직위로 봐서는 계장이니까 지금까지 김동완 계장이 전해드렸습니다 이것도 좀 이상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모 방송국에서는 갑자기 김동완 통보관이 전해드렸습니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해서 각 방송국에서 그 날 부터 제 이름 뒤에는 통보관이라는 것이 붙더라고요.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 제가 진급을 해서 서기관이 되었어요. 그런데 진급을 하나마나 항상 통보관이죠. 그런데 요즘은 기상청에 통보관이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상청에 있는 통보관하고 내가 그 당시에 내 이름 뒤에 붙은 통보관 하고는 직위 자체는 한 계급 차이가 있죠. 요즘 기상청에 통보관은 사무관들이에요. 저는 그 당시에 출발은 사무관에서 했지만 곧 서기관으로 변해서 그렇다면 제가 맡는 역할이라는 것이 방송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중앙기상대의 대내외적인 홍보활동 일체를 제가 담당을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지금으로 기상청 직위하고 비교를 한다면 기상청 있는 대변인하고 비슷한 그런 일을 했죠. 그래서 통보관 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양창욱 : 네네, 알겠습니다. 그런 또 차이점이 있고. 그러면 선생님께서 처음에 이 길로 어떻게 접어들게 되신 것이죠?
 
김동완 : 우연한 기회에 날씨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사실 저는 55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그 당시에는 이제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바로 대학을 가지를 못 했어요. 못하고 졸업을 하고 바로 군에를 갔죠. 그래서 군 생활을 마치고 저는 원래 고등학교 교사가 제 목적이었어요.
 
양창욱 : 아, 고등학교 교사가?
 
김동완 : 네. 그래서 군에서 제대를 하면서 아 이제 사범대학을 가야겠다.
 
양창욱 :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 싶으셨는데요?
 
김동완 : 저는 원래 다닐 때 수학을 전공... 그랬는데 그래서 이제 제가 서울, 제 고향은 경북 김천인데 중학교까지만 김천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대구로 갔어요. 그래서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대구에도 사범대학이 있지만 이왕 객지생활을 할 바에는 서울로 가자 그래서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겁니다. 올라오는데 마음속에 걱정이 있죠. 제가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제 실력 자체를 가늠을 해보고 싶은데 마침 신문을 보니까 당시 국립중앙관상대 직원 모집요강이 났어요.
 
양창욱 : 국립중앙관상대?
 
김동완 : 네네. 그 당시 이제 국립중앙관상대에요 기관 이름이. 그래서 그걸 보는 순간 여기에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될 정도면 대학교도 무난히 합격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내 실력을 가늠을 해보기 위해서 물어물어 찾아가서 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을 쳤는데...
 
양창욱 : 그 때는 시험과목이 대학이나 관상대나 비슷비슷 했습니까?
 
김동완 : 그 당시는 거의 대동소이하죠.
 
양창욱 : 아 대동소이 하군요.
 
김동완 : 그 당시에는 국사가 반드시 들어갔죠. 국사가 들어가고 영어 수학 등등 이러니까 비슷비슷했죠. 그래서 합격이 되고 보니까 생각이 이제 달라지잖아요. 집도 가난한데 그럼 대학을 갈 자신은 생겼지만 경제적으로 부담도 가고, 또 하나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여쭤보니까 하시는 말씀이 “야 학교 선생님을 두고 거기 다니면 어때 거기는 국가 공무원이다, 공무원! 학교 선생님이나 같은 거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을 수 있다”
 
양창욱 : 그렇죠. 같은 공무원이죠.
 
김동완 : 네. 그러니 거기 다니는 것이 좋겠다. 80%이상 거기 다니는 게 좋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다녔죠. 거기에서 날씨하고 인연을 그렇게 맺었는데 따지고 보면 당시 국립중앙관상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 간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요즘 와서도 가끔 TV에서 그런 말을 하데요.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 뭐 이런 광고가 나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
 
양창욱 : 그래서 몇 십 년을 계신 것이죠? 거기서
 
김동완 : 59년 1월 달에 국립중앙관상대에 들어가서 82년 9월31일까지 재직을 하다가 82년 10월 1일부로 방송국으로 제가 스카우트 되갑니다. 82년 10월2일 부터는 같은 일을 TV에 나와서 했지만 소속은 달랐죠. 그 때부터 방송국 소속으로 근무를 했죠.
 
양창욱 : 잠시 만요, 선생님. 선생님 나와 계신다고 하니까 문자들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2557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너무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의견 주셨고요.
 
김동완 : 아이고, 고마운 분이네요.
 
양창욱 : 5261님 요즘 말로 멋진 원조오빠셨죠. 원조 멋진 오빠셨죠. 활발하게 지내신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문자 주셨습니다.
 
김동완 : 아이고, 고맙습니다.
 
양창욱 : 5868님, 날씨계의 지존 반갑습니다. 이렇게 또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릴 때 선생님의 일기예보를 들으며 잠이 들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나 유치원 때 제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왜 기억이 나냐면 일기도를 직접 그리셨어요.
 
김동완 : 네, 그렇습니다. 그 때가 74년도 쯤... 75년도 쯤 되겠네요. 그 때 제가 모 방송국에서 저보고 날씨를 좀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그 때 제 생각에는 그동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분이 날씨를 전해주거나 아니면 아나운서가 날씨를 전해주셨거든요. 그랬는데 나는 기상전문가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분이나 아나운서님들은 방송 자체가 본업인 사람이고 나는 기상전문가다. 그렇다면 기상전문가가 날씨를 전할 때는 뭔가 차별화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러면 내가 직접 일기도를 그리면서 설명을 해야겠다, 그리고 또 날씨라는 것이 하나의 과학인데 과학적인 이론이나 그런 것이 그림을 그려 설명하면 또 빨리 들어오잖아요. 그런 점도 있고 해서 시도를 해 봤는데 그것이 뜻밖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지금도 저를 만나면 다 그래요. 그 때가 좋았습니다.
 
양창욱 : 다 그려달라고 하시죠?(웃음) 저도 그걸 따라하다가 벽지에 매직으로 그리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그리고 저는 또 '백령도'라는 말을 선생님한테 처음 배운 것 같아요. 그 때 유독 백령도라는 말을 많이 하셔서 그랬던 것 같고, 또 비유적인 표현도 참 많이 쓰셨습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 파리가 조는 듯한 더위 이런 말들을 쓰셨죠.
 
김동완 : 사실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처음 제가 방송은 65년부터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시작을 했어요. 그 때만 해도 이제 방송을 생방송도 하고 녹음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방송을 녹음을 해놓고 퇴근을 하다가 보면 가게 같은 곳 라디오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지금으로부터 마이크를 중앙기상대로 옮겨서 날씨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니까 다이얼들을 전부 돌리는 거예요. 듣지를 않아요. 그래서 내가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리 방송을 잘한들 무슨 소용 있느냐 듣지를 않는데.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날씨라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생활정보인데, 이 양질의 정보를 중요한 걸 모르고 저렇게 다이얼을 돌리니 어떻게 하면 이걸 듣게끔 할까 고민을 했어요. 고민 한 끝에 오늘 날씨의 하나의 특징하고, 또 오늘 우리가 하루 생활하는 일상생활하고 연결을 시켜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내 나름대로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한 마디도 써 본 일이 없습니다만, 여름만 되면 꼭 방송에 떠오르는 것이 찜통더위다 가마솥더위다 얘기를 많이 해요.
 
양창욱 : 네 기자들이 많이 쓰죠. 특히
 
김동완 : 네, 나는 거기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왜냐하면 날씨를 우리가 볼 때 몹시 더운 날씨 속에서 날씨를 볼 때 아 내일은 좀 시원하다고 얘기 할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봅니다. 그런데 첫 마디가 찜통더위가 내일도 계속 되겠습니다 하면 그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게 되는 거예요.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지금 TV를 보고 계시는 분에게 뭔가 도움을 드려야 된다, 심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찜통이다 가마솥이다 이런 표현이 좋지 않다 자극적이다 너무나 이래서 내 나름대로 개발한 것이 파리도 조는 듯한 더위가 연일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을 했죠. 그러면 제 얘기를 듣는 분들은 모두 한번 픽 웃기 마련이에요. 픽 웃다보면 어때요. 심리적으로 느슨해졌잖아요, 사람이. 그만큼이나 서비스를 한 거죠. 그런 차원에서 내 나름대로 속담이라든지 우리가 날씨에 얽힌 속담들도 찾아보면 많아요. 그래서 그런 속담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만든 것도 있고 그런데 말이 그렇지 무엇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고생을 참 많이 한 산물이고 그래서 오늘날에는 일반화 되었지만 제가 최초로 우리나라에서는 생활기상이란 것을 개척을 한 사람이에요, 사실은. 생활하고 결부시켜서 생활기상이다 이렇게 이름 붙여서 요즘은 흔히 하잖아요. 내일 아침은 영하 5도까지 내려가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되겠습니다, 하잖아요. 그게 제가 처음 개발한 것이에요.
 
양창욱 : 그럼요, 선생님. 선생님 스타일로 오늘 날씨를 멋지게 소개해주십시오.
 
김동완 : 요즘 날씨가 조금 숨고르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만 하더라도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은 영하 9도 안팎까지 내려갔습니다만 날씨 기온이 예년 기온을 서서히 되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날씨가 풀릴 때 우리들의 긴장도 따라서 풀립니다. 그래서 날씨가 풀릴 때 불이라든지 여러 가지 안전사고들이 부주의에 따라서 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긴장을 늦추지 마시고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대륙성 고기압이 약해진 틈을 타서 우리나라 부근에 기압골이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남쪽으로부터 비가 오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예, 지금까지 날씨를 전해드렸습니다.
 
양창욱 : 네, 선생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너무 잘 들었습니다. 6386님이 문자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일기예보가 참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목소리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또 의견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그러시면 옛날에 일약스타덤에 오르시고 이러셔서 광고도 참 많이 하시고 돈도 많이 버셨을 것 같아요.
 
김동완 : 그 당시엔 돈도 좀 벌었죠.
 
양창욱 : 그 돈 지금 다 가지고 계십니까?
 
김동완 : 그게 그대로 있으면 안 되죠. 사람은 돈은 쓰라고 버는 건데 써야죠. 그런데 저는 좀 한 40년 동안 아끼고 모은 돈을 6개월 동안에 다 썼습니다.
 
양창욱 : 아니 어쩌시다가 6개월 만에 다 쓰셨어요?
 
김동완 :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만, 2000년도입니다. 저는 사실은 뜻밖에 사람이라는 것이 인생이 그래요. 전혀 생각지 않던 일에 그렇게 또 빠져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고 이런 건 없었어요. 없었는데 모 당의 총재되시는 어른께서 비서를 보내서 저를 좀 보자 해서 갔더니 출마를 해 달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출마를 안 하겠다고 했죠. 그러니까 왜 그러시냐고 그래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핑계 댈게 없고 그래서 저 돈 없어 못 합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돈 걱정 왜 하십니까, 돈은 저희들이 다 뒤에서 도와줄 테니까 출마만 해주십시오, 그래요. 또 간곡히 자꾸만 그래서 제가 얼마 기간 동안 시간을 주시면 제가 결정하겠노라 했더니 그 사이에 시간을 주지를 않아요. 계속 연락이 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갔어요. 요즘하고 달라서 그 당시에는 돈이 많이 들던 시절이에요. 법적으로 많이 쓰지 못하게 되어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사실은 돈이 많이 들어가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또 남자가 그러잖아요, 한번 칼을 뽑으면 무라도 잘라야 되잖아요. 그래서 판세가 좀 보니까 안 될 것 같지만 중간에 포기할 순 없으니까 나도 사나인데
 
양창욱 : 그래서 40년 간 버신 돈을 6개월에 다 쓰시고...
 
김동완 : 네, 시원섭섭하더군요.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렇게 또 애틋하게 생각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불법적으로 번 돈도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 내가 벌어 내가 썼는데 뭐 떳떳하지 않느냐. 단지 가족들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또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사는 거다 하고 내가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건강을 해칠지 모르는데 돈이 다 없어졌으니까 건강 하나는 보장해 주시겠지 이런 또 막연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그런대로 큰 부담 없이 살게 되더라고요.
 
양창욱 : 선생님, 여쭤보고 싶은 것이요. 요즘 기상캐스터들 보시면 어떠세요?
 
김동완 : 사실 지금은 여자 분들이 주로 하는데, 예쁜 분들이 나오셔서 말도 잘하시고...
 
양창욱 : 그런데 아무래도 전문성 보다는 외모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김동완 : 사실은 우리나라의 기상캐스터라는 제도가 현재는 하나의 과도기로 끝나고 이거 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날씨라는 것은요. 현재는 전달을 하는 것이 전부잖아요. 그 분들은 전달자에요, 전달자일뿐인데, 왜냐하면 기상청에서 발표된 내용을 가지고 그걸 아름답게 표현을 해서 전달하는 것이고. 그거보다는 날씨라는 것은 해설을 해야 됩니다. 예보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고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가능함으로 얘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전문가가 이것을 풀어서 설명해야 되는 것이지 발표된 걸 가지고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뭔가 좀 부족하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현재 이것을 바꾸려면 방송국들이 뭘 좀 알아야 됩니다, 날씨에 대해서.
 
양창욱 : 날씨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요.
 
김동완 :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죄송하지만 현재 그 분들이 방송하는 시간을 보면 1분 내지 1분 반입니다. 1분 반 동안에 전문가인 내가 나가서 해도 1분 반 동안에는 해설을 할 수 없어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겁니다. 해설을 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두고 하루에 몇 차례 시간을 만들어서 날씨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창욱 : 네, 선생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서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지금까지 국민기상캐스터 김동완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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