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빼면 우리 역사, 문화 지탱 안돼"

▲윤승운 화백
 
 양창욱 : 15일 양창욱의 아침저널 3부입니다. 목요일 3부는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목요스페셜, '그 사람 지금'' 시간입니다. 70~80년대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맹꽁이 서당'의 저자 윤승운 화백을 만나봅니다. 나와계시죠? 선생님!
 
윤승운 화백 : 예 안녕하세요
 
양창욱 : 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가 정정하십니다
 
윤승운 화백 : 예.. (웃음)
 
양창욱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윤승운 화백 : 요즘은 이제 저도 70이 넘었어요. 어린이 만화를 그렸는데도. 그래서 이제는 연재하는 것은 작년까지 했고 금년부터는 연재하는 것은 없죠 일은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제 일부 부분적인 일들 할게 또 있어요.
 
양창욱 : 선생님, 건강이나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죠?
 
윤승운 화백 : 예, 뭐 가끔 아플 일이 있으면 앓고 그럽니다.
 
양창욱 :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떻게 처음 만화를 그리시게 되셨어요?
 
윤승운 화백 : 글쎄, 뭐 우연이겠죠 근데 우연이라기 보다는 어렸을 때 3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요. 어른들이. 그림 잘 그렸다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잘 그리지는 못했죠. 하여간 그림을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6.25를 겪었는데 그때 그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해서 전쟁 중에서도 학교 다닐 때 그림을 한 10번 그리면 7~8번은 선생님이 교실 위에다 붙이더라고요
 
양창욱 : 아~ 그림에 탁월한 소질이 있으셨군요.
 
윤승운 화백 : 아마 그러다가 중, 고등학교 되면서 만화를 좋아하고 그러니까 미술 쪽으로 간다 그러니까, 그 때는 만화와 미술이 전혀 다른 길이니까요.
 
양창욱 : 네, 그렇죠
 
윤승운 화백 : 우연히 이 쪽으로 빠져든거죠.
 
양창욱 : 그렇게 해서 입문을 하셨는데 50년, 반세기를 그리셨군요.
 
윤승운 화백 : 50년쯤 넘었죠
 
양창욱 : 네, 50년 넘게 그리셨군요. 초반에는 '요철 발명왕'이라고 과학이나 발명 소재로 만화를 그리셨잖아요. 그러다가 맹꽁이 서당이 나옵니다.
 
윤승운 화백 : 네 역사물로 돌아섰죠.
 
양창욱 : 네, 뭐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습니까?
 
윤승운 화백 : 특별한 계기는 아니고 그 당시 만화라고 하면 대개 명랑만화죠. 그런 걸 그리는데 60년도인가 만화를 그린 지 한 1~2년 되었을 때 아주 신인 중에 올챙이죠. 할아버지 댁에 갔더니 역사책이 두꺼운 게 하나 있는데 그걸 읽어보는데 내용이 너무 좋은 거에요. 그 때 막 역사공부를 좀 덜할 때니까 지금보다. 만화가가 되면 이걸 그려봐야겠다 크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20년 지나니까 그릴 기회가 오더라고요
 
양창욱 : 네.
 
윤승운 화백 : 그게 이제 맹꽁이 서당이 된 거죠.
 
양창욱 : 이 맹꽁이 서당은 어떤 뜻입니까?
 
윤승운 화백 : 공자와 맹자라는 뜻인데 공맹서당이라고 맹꽁이 서당 훈장이 서당이름을 지었어요
 
양창욱 : 아. 네 공맹.
 
윤승운 화백 : 근데 이제 동네사람이니 애들이 장난삼아 맹꽁이, 반대로 해서 맹공선생이라고 부른 것인데 조선시대 때 서당에서 애들이 떠들고 와글대는 걸 보고 맹꽁이라고 그랬대요. 학동들을 그러니까 뭐 비슷한 이름이 우연히 붙여졌죠.
 
양창욱 : 저도 어릴 때 초등학교 다닐 때 맹꽁이 서당을 많이 봤습니다만은, 등장인물들이 모범생들은 아니에요. 그쵸?
 
윤승운 화백 : 네 말썽이죠.
 
양창욱 : 네. 말썽쟁이들인데 서당 훈장님들께서 역사 이야기만 하시면 귀를 기울이는 그런 아이들이었죠.
 
양창욱 : 선생님 어릴 때는 어떠셨나요?
 
윤승운 화백 : 우리 어릴 때도 마찬가지죠. 그 때 생각해보니까 세상이 50~60년 세월이 너무 달라져서 그런데 저는 지금도 꼭 모범생, 잘 떠드는 경우, 산만한 아이 따로 구분하고 싶지 않아요. 그 녀석이 그 녀석인데, 저는 성격이 굉장히 산만했다고 생각돼요. 만화그리기에는 딱 좋은 성격이죠. 자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같은… 근데 공부는 썩 잘하지는 못했는데 어렸을 때 초등학생 때 하니까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올라가고 안 하면 내려가고 그러는데 지금 맹꽁이 서당 학동들이 다 그런 놈들이에요. 나쁜 놈도 아니고 좋은 놈들도 아니고 그냥 천진난만하고 그냥 스승 골탕먹이고 하는 짓이 맹꽁이…
 
양창욱 : 사실 저희 어릴 때만 해도 만화 본다고 부모님들이 많이 혼내고 그러셨어요.
 
윤승운 화백 : 그렇죠
 
양창욱 : 빗자루로 많이 혼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보니, 교훈적인 만화잖아요 역사만화고.. 지금 생각해보면.. 맹꽁이 서당의 배경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역사를 다룬 거죠?
 
윤승운 화백 : 네
 
양창욱 : 이게 그럼 얼마나 연재를 하신 겁니까?
 
윤승운 화백 : 82년 10월호의 '보물섬' 잡지가 나올 때 그게 창간호에 실린거거든요. 그러다 중간에 8~9년을 쉬었어요. 다 끝났으니까 조선왕조가. 근데 어느 출판사에서 고려시대 다시 하자 시작한 것이 5년 더 하고 하다 보니 33~4년을 그렸는데 중간에 8~9년 빼니까 한 20 몇 년 동안 연재가 된 거에요. 매월. 나중에는 논어까지 해서 논어를 1권, 2권... 2권이 이제 금년 다음달에 나오는데 연재 했다가 모아서 단행본을 만드는 것인데 저는 단행본을 위해서 책 한 권을 못 그려요. 그러니까 연재를 했을 경우에 원고가 쌓이는거죠...
 
양창욱 : 네. 그걸 이제 묶으시는 거고..
 
윤승운 화백 : 그러기 위해서 연재를 했는데 총 한 24~5년 그린 것 같습니다.
 
양창욱 : 공부도 많이 하셨겠어요.
 
윤승운 화백 : 공부 많이 했죠. 그거는 이제 자랑이 될 순 없지만 제가 역사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그림만 좋아했는데 역사책은 시작할 때는 아마 5권도 안됐을 거에요. 지금 역사책 가지고 있는 것이 책 권수로 보면 3000권 될 거에요. 어떤 유명한 소설가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제 또래인데… 그 분이 역사자료 때문에 제 사무실에 왔다가 깜짝 놀라요.
 
양창욱 : 아 최인호 선생님이요?
 
윤승운 화백 : 아… 네 최인호 선생 아시네요. 그분이 한번 내 글을 썼더라고요.
 
양창욱 : 아. 네. 그러셨죠.
 
윤승운 화백 : 그래서 다 알려졌는데,
 
양창욱 : 아. 네. 맞아요 최인호 선생님도 역사소설을 굉장히 많이 쓰셨는데 자료를 구하러 선생님 댁에 가셨군요.
 
윤승운 화백 : 네 뭐 자료하나 구하려고 한번 왔었어요. 오래됐죠. 94년도니까. 그러더니 역사책 맡겨 두고 간 뒤에 책을 보니까 역사책이 그래도 많았어요. 한 1500권 정도요. 지금은 한 3000권 가지고 있는데 역사니까 읽고 또 읽고 자꾸 반복하니까 역사 얘기 나오면 그저 저도 반갑고 저거는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다 저 혼자 생각해보죠.
 
양창욱 : 네, 그렇군요. 선생님 말씀 중에 오랜만에 '보물섬'이라는 잡지를 들으니까 기분이 묘합니다. 참 인기 있었던 만화 잡지였죠. 저희 어릴 때. 시험을 잘 볼 때 엄마가 한번씩 사주고 했던 그런 잡지였습니다. 근데 이렇게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이끄셨는데 윤화백님 스승님이 길창덕 선생님이세요.
 
윤승운 화백 : 네, 그렇습니다.
 
양창욱 : 꺼벙이의 길창덕 선생님.
 
윤승운 화백 : 네, 아니 그 명랑만화를 이끈 것은 그런 분들이고 저는 이끈 축이 아니고 열심히 그렸죠. 저는 이끌만한 인재가 아니에요.
 
양창욱 : 아. 이끄셨어요.. 길창덕 선생님, 꺼벙이 길창덕 선생님이 스승님이 시군요.
 
윤승운 화백 : 저보다 연세가 14살이 위신데요. 금년이 한 20일 있으면 그 분이 돌아가신지 만 5년이 됩니다.

양창욱 : 아, 그렇죠 몇 해 전에 돌아가셨죠. 로봇집빠 신문수 화백님, 또 고인돌 박수동 화백님 이런 분들도 동년배이신가요?
 
윤승운 화백 : 네, 저보다 한 두 살씩 많으신데 동인이라 그러죠. 같이 활동했고. 길창덕씨라는 분이 이 만화계, 명랑만화계를 확 넓혀놨어요. 거기서 고우영씨, 박수동씨, 신문수씨, 이정문씨, 그리고 제가 함께 열심히 멍석을 깔아 놓은 거죠
 
양창욱 : 어떻게 처음에 인연이 되셨나요? 길선생님하고는.
 
윤승운 화백 : 네, 제가 18살이낙 19살에 학교 중퇴하고 이제 다시 편입을 하기 직전인데, 그 때 그림을 안 그리고 만화를 좋아해서 보다가 우연히 편지를 한번 써 보냈어요. 선생님 만화 좋은데 한번 만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 편지가 지금 어디 도서관에 가 있데요. 저도 한 4~50년 만에 그 편지를 처음 봤는데 참 유치하죠. 근데 그게 인연이 되어 그 양반하고 몇 해 후에 만났고 자연히 문하생이 되었고 늘 만날 적 마다 만화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게 나중에 나한테 다 득이 됬죠.
 
양창욱 : 네. 그러셨군요. 그러면 신문수 선생님이나 박수동 선생님 등도 다 같은 문하셨어요?
 
윤승운 화백 : 아니오, 그건 아니에요.
 
양창욱 : 아, 그건 아니시고..
 
윤승운 화백 : 문하생이라고 그 밑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그런 문하생이 아니고 내가 좋아해서 스스로 하면 문하생이라는 뜻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지금은 글 따로 쓰고 그림 그리는 건데 우리는 좋다 나쁘다 하진 않지만 그런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아요.
 
양창욱 :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네. 선생님 나와계신다니까 문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7465님, 맹꽁이 서당과 함께 당시 머리에 땜통이 있는 길창덕 선생님의 꺼벙이도 많이 봤어요.
 
윤승운 화백 : 아, 그렇죠. 길선생이 원조니까.
 
양창욱 : 네. 문자들을 주고 계십니다. 근데 명랑만화가 6~70년대, 8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루면서 일본식 만화, 망가라고 하나요. 이걸 제치고 이제 우리식 만화가 자리 잡았다 이런 평가가 있더라고요.
 
윤승운 화백 : 그렇죠
 
양창욱 : 일본만화랑 좀 차별되는 우리 만화의 저력이 있었나요? 특별하게?
 
윤승운 화백 : 만화문화죠. 만화문화라기 보다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적으로 보면 일본은 문화예술을 배웠죠. 우리는 식민지 생활을 겪으면서 뒤늦게 나마 일본을 통해서 수입하게 된 건데 이런 것은 민족적인,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창의력을 가진 민족이라면… 뭐 우리민족 뿐만 아니라 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서로 경쟁하다 보면 앞서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 경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가 지금 중대해 지고 있는 시기죠. 지금 경제가 일시적으로 어떻다. 유가가 어떻다. 또 불황이 온다 그러지만. 만화시장도 50년 전만해도 국민소득이 100불이 안된 때였어요. 그 때 사람들도 참 미래를 걱정하지만 노력하는 사람 덕에 나라가 이렇게 됐잖아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이 어떻다 없다, 있다 자리가 없다, 비정규직이다. 막 이러는데 그것이 걱정되고... 자꾸 매스컴에서 부풀리기도 하고... 노력하고 살아야 돼요.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일본을 앞 설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어요. 일본은 너무 활짝 꽃이 핀거고 우리는 이제 만개가 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앞으로 일본이 나아질 것도 있고 못해질 것도 있고. 일본이 노벨상을 10여명을 받았고 우리나라는 없다 이러는데. 평화상은 있었죠. 앞으로 각 방면에서 나옵니다. 문화예술도 함께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국력이라고 표현하죠. 이것은 우리가 보면 건방진 소리 같지만 때가 되면 무르익고 뛰어난 작가가 우리 후배도 많고 각 분야에서 음악도 그렇고 다 밀고 올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한 거죠.
 
양창욱 : 네. 선생님, 종교가 기독교로 알고 있는데 불교만화도 많이 그리셨어요.
 
윤승운 화백 : 아, 원래는 종교가 없었고 어머니가 불교였고 결혼하면서 집사람이 기독교라 그래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양창욱 : 아, 사모님이.
 
윤승운 화백 : 근데 불교 만화는 근데 우리만화에서는 자꾸 종교 종교 하면서 기독교와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서 원시 종교가 있으면서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건데… 불교가 들어온 지 2000년에 가깝습니다. 또 한자가 들어온 것도 2000년이 넘었고. 남의 나라 글이 아니고 중국 글자가 아니에요. 종교도 1000년 1500년 넘었으면 우리 종교화 된 거죠. 기독교도 이제 그렇게 까진 오랜 안되고 곧 그렇게 될 건데, 우리 문화 우리 역사에서 불교 문화 역사를 빼놓으면 우리 자체 역사가 지탱이 안 되요. 잘 아실 거에요. 삼국시대부터.
 
양창욱 : 네
 
윤승운 화백 : 그래서 이 공간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종교 교리도 있겠지만 일화라든가 그 옛날 고승들 열전 같은 것을 보면 정말 난 거짓말이 많이 섞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일연이라는 스님이 거짓말을 쓸 스님은 아니고 거 굉장히 자료를 모아서 어떤 것은 허풍 같은 얘기도 있는데..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보면 근데 참 내용이 좋거든요. 이것은 이제 역사물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차원에서도 나만 알지 말고, 후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생 마음으로 한 번 보게하자는, 교육적인 면이 있는 것이죠.
 
양창욱 : 네, 그래서 불교만화를 그리셨군요.
 
윤승운 화백 : 그래서 아주 좋은 호응을 받고 있고, 오래갈 겁니다. 그 만화가
 
양창욱 : 맹꽁이 서당의 윤승운 화백님과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문자 들어와있습니다. 9287님, 선생님 반갑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동심을 심어주셨죠. 여전히 젊은 목소리가 희망찹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문자를 주셨습니다.
 
윤승운 화백 : 고맙네요.
 
양창욱 : 근데 앞서 그 언급한 동료분들 신문수 화백님, 박수동, 이정문 이런 분들과 같이 전시회를 몇 해전에 여셨다면서요.
 
윤승운 화백 : 네, 제작년에
 
양창욱 : 그 때 무슨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열게 된?
 
윤승운 화백 : 아, 서울시 이 쪽에서 산하단체인 소마미술관에서. 근데 지금 이 미술분야가, 우리는 만화 그러면 어려서부터 그려왔고 직업으로 갖고 나서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른들이 야단치고 그러면 주눅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경계분야가 예술분야인 것 같아요. 음악도 그렇고…
 
양창욱 : 네 확연히 자리를 잡았죠.
 
윤승운 화백 : 네, 지금은 전국에 인문학적으로 만화학과가 100군데 이상 학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입장에서는 순수 미술한 젊은 이들과 공동작업, 만화를 소재로 그 바람에 제작년에서 소마미술관, 서울시 산하미술관인 올림픽 공원에 있는. 거기서 열렸고 그 외에도 각 대학미술관에서 작년에도 했었고.
 
양창욱 : 네, 자주하셨군요.
 
윤승운 화백 : 네, 자주 열게 됬고 그런 작품을 그리게 됬습니다.
 
양창욱 : 아, 네. 갑자기 궁금한 데 동료화백님들 중 가장 친했던 분은 누구세요?
 
윤승운 화백 : 뭐 다 선의의 경쟁이었고 그림체도 다르고 서로 추구하는 게 다르니까 남의 그림도 우리가 일본 사람 좀 싫어한다고 그러잖아요. 나도 그런 면은 있어요. 근데 일본 사람의 만화, 돌아가신 분들의 만화 , 일본말 조금 알아서 보는데 보면 참 기가 막힌 만화는 일본, 북쪽을 가릴필요가 없어요. 내가 못만나봬도 좋은데, 우리 박수동 신문수 길선생 이정문씨 같은 분들 만화도 좋은 걸 보면 배가 아파요. 나는 왜 이렇게 표현을 못했나 하고.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니까 우리끼리 오죽 반갑겠습니까.
 
양창욱 : 네.. 요즘도 자주 만나세요?
 
윤승운 화백 :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양창욱 : 아 그러시구나.
 
윤승운 화백 : 여행도 자주 가고
 
양창욱 : 네. 옛날에는 참 힘들게 만화를 그리시고 여건이나 환경도 안 좋았는데 요즘 뭐 만화 그리는 환경은 웹툰이다 해서 너무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 후배작가들 만화 그리는 활동, 환경 보시면 어떠세요 느낌이?
 
윤승운 화백 : 글쎄, 시대적으로 출판시대가 가고 매스컴이 발달하고 미래가 발전하니까 이렇게 됬는데 사실 저는 컴맹입니다. 웹툰을 못해요. 물론 제 주위에는 동료 분 중에 하는 분도 있지만 우리 시대는 이제 간 거에요. 새로운 신인들이 나오는 데 우리가 해 봐야 못 쫓아가죠. 요즘에도 웹툰인데, 미생이라든지 압니다. 만나본 일도 여러 번 있고.
 
양창욱 : 아 그러셨군요.
 
윤승운 화백 : 요새는 후배보기 참 힘들어요.
 
양창욱 : 인사들을 잘 안하나요?
 
윤승운 화백 : 그런 것 보다 요새는 앉아서 혼자 개인적으로 일하니까 모임에 잘 안 나와서 몰라요.
 
양창욱 : 아 그렇군요.
 
윤승운 화백 : 그 친구는 좀 털털한 친군데 깜짝 놀랐어요. 저도 그 드라마 보고 지금은 시대적으로 이제 아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우리가 놀라죠. 앞으로 더 나올 겁니다.
 
양창욱 : 네, 긍정적으로 좋게 평가를 해 주시군요. 후배작가들에 대해서. 선생님, 선생님 인생에서 '만화'는 뭡니까?
 
윤승운 화백 : 글쎄, 나는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를 느끼고 안 하려고 발을 빼려고… 1980년까지 만화 안 그린다고 떠들고 다녔어요. 그런데 이제 80년도 넘어서는 제가 전공은 낙농이니까 낙농한다고 그랬죠. 우선은 그 당시에 어려운 세월이라 밥 먹는 것이 문제였거든요.
 
양창욱 : 선생님 조금 짧게.. 시간이 다 돼 갑니다. 정리를…
 
윤승운 화백 : 네 뭐, 밥 줄이요. 생명줄 이요. 만화는 최고다 이렇게 생각하죠.
 
양창욱 : 네, 그러시군요. 선생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윤승운 화백 : 예, 감사합니다.
 
양창욱 : 예, 늘 건강하시고요. 오늘 출연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목요스폐셜 '그 사람 지금' 이 시간, '맹꽁이 서당'의 저자 윤승운 화백과 함께 했습니다. 문자 하나 잠깐 소개해 드릴까요. 9550님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정말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양창욱 /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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