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산케이 보도’ 강경대응 한일관계 악재로 떠올라

▲ 박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일 행보를 다룬 산케이 보도 (사진 :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

북한의 불만 중 하나는 남한 언론입니다. 건드려선 안 될 ‘최고 존엄’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체제까지 과녁 삼아 악의적인 보도들을 쏟아낸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남한 정부는 왜 언론의 근거 없는 비방 중상을 통제하지 못하냐며 의아해합니다. 북한에서 언론은 체제의 선전도구로만 기능하는 탓입니다. 정부가 “자유 민주 국가에서 언론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만난 한 일본 언론의 기자는 이 점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이중적”이라고 불평을 하더군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악의적으로 보도한 ‘산케이 신문’(産經新聞) 얘기입니다. 언론 보도를 놓고 외교장관이 나서 항의하고, 검찰 수사까지 벌이고 있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불만 앞에 떳떳할 수 있냐는 반문입니다. “언론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방침에 일본 언론은 예외인 것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더군요.

문제의 기사는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달 3일 자사 웹사이트에 게재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입니다.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정보지 등을 근거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보가 오리무중인 이유는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돼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죠.

정부는 발끈했습니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산케이 신문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만나 “산케이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인용해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이웃나라 국가원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점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항의했습니다.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을 근거로 산케이 보도와 가토 지국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조만간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관건은 사법 처리 수위겠죠. 검찰이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하고도 결과 발표를 미루는 것은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막판까지 수위 문제를 고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검찰이 어떻게 결론을 내리건 ‘산케이 보도는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는 점은 분명히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우선 풍문 속 등장인물 정윤회 씨가 ‘당시 서울 강북 모처에서 지인과 만나고 있었다’는 정 씨의 알리바이가 알려졌죠. 청와대가 직접 밝히기 어려운 내용이 검찰을 통해 나온 겁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확실히 선을 그을 수 있겠죠. 세 번째로는 ‘더 이상 대통령과 관련한 근거 없는 풍문을 언급하지 말라’고 본보기를 보이는 셈이 될 겁니다.

‘본보기’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수사 대상이 평소 한국에 부정적인 보도를 해왔던 산케이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문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증권가 정보지’에 대한 검찰 조사는 없었다는 점은 의아한 부분입니다. 검찰 관계자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증권가의 관계자 내지는 정보지, 이렇게만 나온 것을 가지고 무엇을 근거로 삼아서 조사할 수 있는지 애매하다”라고 답하더군요. 조선일보 칼럼 역시 수사 대상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일본 언론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이 ‘저질’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언론 보도를 인용해서 쓴 내용을 수사까지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답하더군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언론의 비판과 감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라고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가뜩이나 어려운 한일 관계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우려는 조만간 현실이 될 듯합니다. 일본 언론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서울의 일본 언론특파원들은 물론, 서울 외신기자클럽(FCC)이 최근 산케이 보도에 대한 검찰 조사에 대해 우려를 공유했다고 합니다. 일본 펜 클럽도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일본 언론 내 반한(反韓) 분위기가 한층 격화될까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일본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 문제가 “한일 양국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항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산케이 해당 보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증권가의 풍문에 기대 타국 대통령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부각시킨 ‘찌라시’ 수준의 기사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한국에 대한 적개심과 무례함이 읽혀 불쾌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저널리즘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법적 처벌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널리즘의 본령을 저버렸다고 수사를 벌이고, 괘씸하다고 법정에 세울 순 없는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타국 기자가 쓴 기사에 대해 법적 처벌을 내림으로써 발생할 외교적 마찰이 뻔히 보이는데 말입니다.

정부의 무리한 대응에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언짢은 심기가 반영됐을 겁니다. 40년 가까이 외교 판에 몸담아온 윤병세 외교장관이 타국 장관과의 회담에서 언론보도를 문제 삼는 무리수를 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어차피 최악인 한일 관계에 악재 하나쯤 늘어난다고 대수겠느냐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어쩌면 정부가 “자유 민주 국가에서 언론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북한이 믿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고 존엄’을 깎아 내린 언론 보도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자신들과 닮아 있으니 말입니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올해 낸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도 지수는 197개국 가운데 68위입니다. 계속해서 하락세입니다. 이러다 내년에는 더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재원 기자 yungrk@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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