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 辭

존경하는 서옹당(西翁堂) 상순(尙純) 대종사님!

어찌 하면 좋습니까? 미욱한 중생들이 엎드려 묻습니다.
계미년 한해, 사바세계를 밝히셨던 불교계의 큰 별들이
잇달아 졌습니다.

서암 큰스님에서 월하 큰스님까지 여러 큰스님을 잃고
슬픔에 빠져서도, 아직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에는
그래도 서옹 큰스님이 계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는데.
정말 어찌 하면 좋습니까?

이 땅의 불교와 민족의 앞길이 천 리나 멀고,
중생의 제도와 불자 대중의 길이 만 리나 먼데.
큰스님마저 훨훨 떠나십니까.

스님의 분상에서야 오고 가며 나고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저희는 그래도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눈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허전하며, 겨울이 너무 춥습니다.

서옹 큰스님은 우리 시대 최고의 선지식(禪知識)이자,
현대 한국불교의 큰 기둥이셨습니다.
젊어서는 성철스님 등과 선풍(禪風) 진작과 선문(禪門)의 기강을
세우는데 진력하시었으며, 원로가 되셔서는 제5대 종정과
고불총림 방장으로 한국불교의 중흥기를 이끄셨습니다.

오늘날 임제의 맥을 잇는 간화선(看話禪)이 한국불교의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정착되어 수많은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의
길잡이가 된 것도 큰스님의 원력이요,
그것이 세계 각국으로 보급되어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86년 끊어졌던 무차선법회(無遮禪法會)를 백양사에서 재건하여
조사선(祖師禪)의 종지를 국내외에 알리고자 하셨던
큰스님의 원력입니다.

인류구원의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선(禪)을 통하여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자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참사람’ 운동을 전개하여 인간주의 욕망으로 흐르는
세계를 구제하고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이루고자 하셨던
서옹 큰스님 !

갑신년(甲申年) 새해를 목전에 두고 저희는 이렇게 황망하게
큰스님을 떠나보내고서 지금 슬픔을 이기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 큰스님들께서 가시면서 남기신 뜻이 슬픔만은 아님을 아는
까닭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경책(警策)이라 생각하며,
그 크신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새기는 것으로
존경과 추모의 염(念)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제,육신(肉身)은 가시지만 자오자증(自悟自證)의 삶을 사셨던
큰스님의 가르침과 자비의 실천은 영원한 법신(法身)이 되어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 하는 새해를 맞이하게
해 주시옵소서.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추모의 향을 사르며,
합장 올려 극락왕생을 비옵니다.

불기 2547년 12월 19일

문화관광부장관 이 창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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