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은 당시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30cm 가량 되는 대자로 손바닥을 맞거나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를 맞는 경우는 물론 칠판 앞에서 기다란 대걸레 자루로 허벅지를 수십대 맞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맞으면서 선생님의 거친 말투와 욕설까지 듣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졸았을때 앞으로 불려나가 이같은 일을 당했었다. 옆자리 친구는 선생님에게 싸대기를 맞아 뒤로 나뒹구라지기도 했다. 옛 어르신들은 수시로 맞고 자랐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실 정도로 일상화된 폭력에 그대로 노출됐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당시 일부 선생님들의 체벌과 막말, 욕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범죄에 해당되는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된다. (물론 대다수 선생님들은 정말 인자하셨다는 점도 분명히 밝혀둔다)

대학때는 교수님과 강사들 가운데 맛깔나게 욕설을 잘 하는 분들이 있었다. 찰진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 내심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자기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속시원하다는 느낌도 받았던 것 같다. 어떤 시간 강사 선생님은 속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내서 거침없는 말투로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감정 조절의 절차 없이 터져나온 욕설과 막말은 자기 자신에게는 속시원한 사이다 같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깊은 내상과 생채기를 남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당들도 출마자들을 상대로 막말 경계령을 내렸다. 이미 도태우, 정봉주, 장예찬 후보 등 각당의 지역구 공천자들 일부가 과거 망언과 막말이 뒤늦게 문제가 돼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과거에 이들은 자극적이고 선동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끌어올렸고 자기 진영 내에서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써온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이같은 전략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자기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상대 진영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증오와 경멸, 조롱의 수준까지 나아간다면 곤란하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다시한번 되새겨봐야할 시점이다.

언론들의 총선 관련 기사에 사용되는 언어들도 품격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어떤 학자는 언론 기사를 보면 여야 정당을 전쟁에 끌려나온 장병들로 간주하고 선거판 자체를 서로를 죽여야 사는 거대한 전쟁터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각 당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민생이나 정책 비전 같은 말들은 빠져 있다.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공세와 흠집내기, 이념 전쟁만이 난무하고 있다. 물가와 세금, 부동산, 청년 취업, 저출산 문제, 기후위기,의료대란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들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 제기, 건전한 정책 대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인물을 보고 투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포장지만 보고 물건을 선택할 수는 없어 내용물을 보려고 하는데 포장지가 잘 벗겨지지 않는 형국이다.

총선 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다음주부터는 총선 레이스가 본격화한다. 각 후보들은 이제 지역을 누비면서 온갖 말의 성찬을 쏟아낼 것이다.  양념을 가득 친 화려한 미사여구, 중독성 강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겠지만 자제해야한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오히려 자기 진영에 독이 돼서 돌아올지도 모른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만이라도 막말 대신 유머와 여유를 가득 담은 촌철살인의 언어를 써달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상대 후보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언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인간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면 유권자들에게 더 큰 호감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감히 조언을 한다면 우리 말을 더욱 품격있게 쓸 수 있으려면 우선 단어 선택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한자어나 고사성어 같은 말을 쓰면 교양있어 보이지만 현학적이고 공허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도가 심하면 잘난척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우리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정감있는 단어들을 잘 찾아봤으면 좋겠다. 순 우리말 가운데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언어들도 꽤 많다는 점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그래서 사전을 늘 곁에 두는 습관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 이번 기회에 절도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품격있는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을 훔치는 절도범 말이다. ‘살인 솜씨’도 키워보자. 연쇄살인 범죄자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촌철살인’을 할 줄 아는 언어 기술자가 되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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