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4년 3월 22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의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경주 불국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창건 당시 신라시대의 대목이 만든 기단과 초석위에 조선시대의 대목이 다시 세운 건물로,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불국사 경 내 중심 건물입니다.

북측이 높고 남측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 지형과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에 따라, 불국사 가람 동측 사역에 자하문과 대웅전 그리고 무설전을 남북 자오축선상에 놓고 주변에 회랑을 둘러 대웅전 공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좌우 측면에는 익랑(翼廊)을 만들어 동·서 회랑과 연결하였고, 남측 회랑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으며,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 돌계단 다리를 만들어 대웅전에 드나들 수 있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건축가 김대성이 서기 751년 신라 제35대 경덕왕 10년에 불국사를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 신라 제36대 혜공왕 10년 12월에 김대성이 죽자 공사를 마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서기 1436년 조선 제4대 세종 18년에 중수한 이후, 몇차례 더 중수를 하였으나 서기 1593년 조선 제14대 선조 26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경주 불국사에 참배하러 왔다가 법당에 무기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불국사 전체를 방화하여 석조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되었습니다.

그 후 서기 1659년 조선 제17대 효종 10년에 다시 복원을 한 후, 서기 1765년 조선 제21대 영조 41년에 대웅전을 중창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4년 뒤 1769년에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後佛幀)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후 일제의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몇차례 개수를 하였고,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불국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동서가 약간 긴 방형 평면으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며, 조선 후기의 다포계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면 가운데 어칸이 좌우 협칸이나 퇴칸 보다 배이상 넓게 꾸며져 있고, 기둥 위 창방과 평방 위의 공포는 어칸에는 3구의 주간포를, 협칸과 퇴칸에는 1구의 주간포를 배치하였는데, 앞으로 돌출된 살미첨차에는 봉황(鳳凰)머리를 조각해 놓았습니다.

그 중 대웅전 편액 좌측 한곳에는 봉황 대신 돼지를 조각해 놓은 것이 이채롭습니다.

그리고 정면 가운데 어칸 문은 사분합 꽃살문이고, 좌우협칸과 퇴칸 문은 쌍분합 교살문이며, 양측면의 문은 삼분합 띠살문으로 꾸며졌고, 배면 가운데 어칸문은 사분합 정자살 문이며, 배면 좌우 협칸은 벽체로 막았고 배면 좌우 퇴칸은 분합 정자살문으로 꾸며놓았습니다.

불국사 대웅전의 기단은 면석 양끝에 우주가 있고 그 사이에 탱주가 설치되어 있으며, 기단 상부에는 갑석을 덮은 신라시대의 가구식 기단입니다.

대웅전 앞‧뒤‧좌‧우 기단 중앙부에는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돌계단 양측의 소맷돌은 삼각형으로 가공하였습니다.

내부 천정은 속이 보이지 않는 우물천정인데, 층단식으로 중앙을 높게 소란반자로 꾸몄고, 마루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로 짜맞춘 우물마루로, 특히 앞뒤 긴 장귀틀은 곧지 않고 흡사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휘어진 목재로 결구하였고, 동귀틀 사이에 끼운 청판에는 당시 대목이 자귀로 거칠게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불국사 대웅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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