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전경윤 BBS 선임기자 
출연 : 한국불교태고종전국비구니회 회장 현중스님
방송 : 2024년 3월 10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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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월 10일 일요일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전경윤입니다.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어느 곳이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입니다. 3월이 이미 시작됐죠. 모두가 활기찬 새 출발을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비구니 스님 한 분을 모시고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전경윤 :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한국불교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 회장을 맡고 계신 현종 스님을 모셨습니다. 스님이 나와 계십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현중스님 : 안녕하세요.전경윤 : 스님. 또 오랜만에 뵙는데요. 이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의 역사가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스님이 활동하신 것보다 훨씬 길죠. 당연히 긴데.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의 역사와 또 그동안의 어떤 활동이라든지 이렇게 좀 소개해 주세요. 듣는 분들을 위해서.

현중스님 :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가 1978년 5월에 발족됐으니까 지금 46년 됐죠. 

전경윤 : 벌써 50년 가까이됐네요. 

현중스님 : 제가 비구니 회장 지금 한지는 5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 역사에 비하면 저는 뭐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12대째입니다. 회장이 12대 회장인데, 절차상의 어떤 그런 종단에서의 어떤 방침 때문에 7대가 되어 있어서 다시 비구니회의 역사를 12대로 재조정하는 그런 역사 발굴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그전의 역사를 이렇게 다시 이렇게 정식으로 이렇게 확정 짓고 뭐 이런 거겠죠. 

현중스님 : 네. 말로는 안 되니까 그런 것을 이제 행정부에서 그렇게 바꿔놓은 거라서 저희는 또 절차상의 어떤 그런 걸 지켜야 되니까 그것을 발굴을 해서 역사적인 그런 작업을 또 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그렇게 되면 이제 7대가 아니고 12대 회장이라는 말씀이죠.

현중스님 : 네.

전경윤 : 어쨌든 현재로서는 7대 회장이신데 작년에 7대 회장으로 다시 선출됐어요. 그러니까 임기를 지금 5년째 한단 말이죠. 올해까지.

현중스님 : 네. 맞습니다.

전경윤 : 원래 다 합치면 이제 한 8년 하시는 건가요?

현중스님 : 예 8년이죠. 4년 저희 임기니까.

전경윤 : 그래서 재선을 하셨고 재선한 지도 벌써 이제 올해가 2년 차네요. 작년에 하고 올해 이제 2년 차.

현중스님 : 아니요. 이제 2년 들어갔죠. 만 1년 됐습니다.

전경윤 : 만 1년도 됐고, 7대 집행부. 그래서 여러 행사나 이 사업들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게 제가 보기엔 ‘순국선열을 위한 한민족 영산문화축제’ 이게 정식 명칭인데요. 지난 2019년부터 행사를 열고 있고, 그런데 왜 2019년부터 이걸 하게 됐죠? 그전엔 안 하다가.

현중스님 : 제가 2019년에 회장으로 추대가 됐습니다. 비구니 회장으로 추대가 됐고 그 비구니 회장으로 추대되기 전에 회장님들은 이제 그런 행사를 추진을 안 했기 때문에 제가 회장이 되자마자 늘 이렇게 염원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러니까 한 25년 전에 우리 봉원사 신촌 봉원사에 있는 옥천범음대를 다니고 있었고, 영산재 지금 현재 전수자인데요. 영산재를 한 25년 배웠단 말입니다. 그러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어떤 그런 이고득락에 대한 개념이 되어 있었고, 또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고 또 옥천범음대 바로 뒤가 서대문 형무소예요. 그러다 보니까 봉원사, 그 동네에서 그런 어떤 형무소의 옛날 전설 같은 그런 애국지사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됐고, 그렇게 들었는데 이제 어느 종단분들하고 이렇게 만나는 계기가 됐는데 그때 또 그 말씀을 하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이런 걸 좀 하고 싶었는데, 딱 스님이 적격입니다. 이렇게 권하는 겁니다. 저한테. 제가 회장 되자마자. 제 생각은 ‘이걸 어떻게 어디서 어떻게 해나가야 되나?’, 역사박물관 안에서 좀 하고 싶어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는 찰나에 그런 얘기를 딱 들은 겁니다. 그래서 이건 꼭 해야 되겠구나. 내가 그냥 막연하게 순국선열과 애국 열사들에 대한 그런 애민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또 그 동네 그 봉원사 동네 어느 아주 나이 드신 할아버지 제가 과일을 좀 갖다 드리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를 통해서 또 그런 아주 애환을 듣게 됐어요.

아무 죄 없이 나라를 찾는다는 그런 미명 하에 그 형무소에 이렇게 갇혀 있다가 또 그런 것으로 반역이 돼서 사형을 당하면 다시 이제 그 할아버지는 거기 나무를 하러 갔다가,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이렇게 삽소리, 곡괭이이 소리가 들려서 이렇게 바라보게 됐고 이렇게 푸대 같은 데다가 말아서 뭔가를 이렇게 묻는 그런 장면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장면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다음에 다시 또 나무를 하러 가면 어딘가 또 이렇게 그런 게 재현이 되고, 그러고서 좀 나이가 이제, 초등학교 때였으면 한 고등학교 때쯤 다시 그 산을 가면 이제 그런 추억이 다시 생각이 나고, 그게 다 재현되니까 너무너무 무섭고, 그것이 애국지사들이 저기 사형당해서 묻히던 장소구나. 그러고 나서 한 20년 세월이 흘러서 거기에 서울시에 분뇨를 갖다 버릴 데가 없으니까 그 장소에 다시 분뇨를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라를 위해서 죽었는데 나라를 찾다가 죽었는데 아니 그냥 뭐 정말 거기에 어떤 위령탑이라든지 아니면 순국탑이라든지 뭐 이런 탑을 세워주지는 못할 망정, 거기에 그냥 서울시의 분뇨까지 받아들여야 되는 그런 참 참담한 그런 얘기를 제가 들으면서, 언제고 제가 종단이나 아니면 개인적으로도 힘 있는 수행이 잘 된 스님이 되면 그때는 꼭 제가 기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그때 저도 모르게 했어요. 할아버지가 우시니까. 그랬는데 그것이 어떻게 또 계기가 돼서 제가 비구니 회장이 되고 또 그 기억이 또 새록새록 나는데 또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결심을 했죠. 진짜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신 분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해드려야 되는 일이구나 이런 생각이 시작이 됐습니다.

전경윤 : 아주 굉장한 인연이 있는데. 그래서 사실은 이제 이 행사 준비하려면 할 게 많잖아요. 다행히 지난해 서울시 지원을 받았고 올해는 또 국가 지원을 받게 됐다고요. 보조금을 받는다고요? 어떻게 또 이렇게 잘 됐습니까?

현중스님 : 작년에 서울시에서 천만 원 지원을 받았어요. 이게 2019년부터 시작이 됐잖아요. 됐는데 하루 종일 하는 행사예요. 오전에는 위령제를 올리고, 그러니까 오전에 형무소를 다 돌면서 그 혼들을 사형장부터 해서 혼둘을 모셔오는 그 안행이라는 그런 의식으로 위령제를 하기 전에 준비를 하는 게 오전 시간이 다 갑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위령제를 시작으로 문화축제까지 하다 보면 저녁 6시가 되는데, 이게 뭐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또 그만큼 그렇게 하려면 자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그 자금을 구하기 위해서 전국 투어를 저희 집행부가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침 새벽 6시에 나가서 이제 어느 지역, 지역을 선정을 해서 부산이면 부산 그러면 광명역에서 모두 모입시다. 그러면 광명역에서 모여서 부산을 가서 투어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종단에 스님들이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굉장히 많으신데 이것은 비구니만의 사업으로 하려고 제가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한 것이기 때문에 비구니 스님들만 탁발을 했어요.

이게 비용이 한 6~7천 들어가는 그런 비용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략을 해서 해도 그리고 뭐 문화축제도 정말 민속적인 것만 것으로만 하고 유명인들 모시지 않아도 그 정도 금액이 들어가다 보니까 계속 제가 탁발을 해야 됐었어요. 1년 내내. 그런데 또 그것만이 있는 게 아니고 다른 행사가 또 계속 겹쳐서 굉장히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보니까 전국 투어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전국 투어 하다 보면 이렇게 막 지금도 좀 목이 감기 때문에 좀 이상해졌는데 정말 늘 목이 잠겨서 그 피곤에 해서 목이 잠겨서 그렇게 위령제를 맞이하곤 했거든요. 그러니까 전국 투어가 가장 힘들었어요.

자금을 마련해서 또 그것도 기획을 잡아야 되잖아요. 기획이야 뭐 옆에서들 다른 스님들도 도와주시고 막 그렇게 하지만 이 자금에 관한 것은 그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도 정말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가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멋진 조국에서 살 수 있겠는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경윤 :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예산 지원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종단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는 거죠.

현중스님 : 네. 작년에는 이제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아서 또 탁발을 해서 이렇게 했고, 또 올해는 이제 이 지원을 위해서 한 2년 노력을 했죠. 노력을 했고. 또 종단에서도 이제 하나의 사업에 같이 뭉쳐서 저희를 또 도와주려고 노력도 했고 그래서 이제 올해 5천만 원을 받게 됐거든요. 그런데 그 모든 게 종단의 힘이 없이는 불가능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저희 비구니회가 역사는 46년인데, 46년에 한 12대째 제가 이제 저를 빼도 10대, 열 분의 회장님을 모셨는데요. 열 분의 회장님들을 모셨지만 사실 우리 승가가 아무리 경험이 있다 해도 어떤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더군다나 비구니 스님들이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장애도 많았지만 또 할 줄도 몰랐고 뭐 이런 그런 어려움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막상 시작하니까 또 자금이 문제인데 그 종단의 힘마저 없다면 정말 이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 종단이 또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이렇게 무슨 행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정치나 뭐 이런 국가나 이런 데 말씀을 드리면 금방 흔쾌히 받아들이지를 않는데, 그래도 이제 종단에 좀 힘이 좀 생겨서 그리고 화합이 되고 좋아져서 지금 제가 이런 혜택을 또 우리 전국 비구니회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라가 굳건해야 되고 또 저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종단이 또 튼튼해야 되고 절실히 느낍니다.

전경윤 : 예.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가 지난해 9월에 라오스 갔다 오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해외 봉사 교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올해도 갈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 인도에서 몽골로 바뀌었다. 이런 얘기도 제가 들었습니다만 계획이 어떻게 돼 있습니까? 지금.

현중스님 : 예. 처음에 부처님 나라 인도를 제가 성지순례는 한 12번 정도 다녀왔구나 이런 생각을 제가 이렇게 손을 꼽아봤어요. 개인적으로. 그런데 정말 이런 곳에서 우리 부처님이 수행하셨네 이 정도는 제가 이렇게 다 인지를 하는데 정말 그 나라 가서 어떤 불교 교류를 한다든가 또 봉사를 한다든가 또 그 나라의 불자들의 어떤 생활 방식을 다 같이 접해보는 그런 것을 해보지 않아서 인도를 이제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한국 스님들이 정말 뭐 한 50여 명, 70여 명 이렇게 외국을 나갈 수 있는, 뭉쳐서 외국을 나갈 수 있는 날짜가 없어요.

그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또 백중 지나고 그때 그러면 한 10일은 나가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이제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날로 해가지고 10일을 딱 잡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추진을 하고 있었어요. 총회에서는 이제 그 날짜를 잡았고 날짜는 이제 박혀 있는 겁니다. 인도를 딱 생각을 하고 이제 인도 가서 봉사를 한번 멋지게 우리 비구니회가 해야 되겠구나 하고 준비를 했는데 날씨를 안 본 거예요. 날씨를. 그런데 그 5월 6월 달이 우기랍니다. 

전경윤 : 인도의 우기. 

현중스님 : 인도의 우기에다가, 우기는 뭐 어떻게 뭐 실내에서 뭐 이렇게 행사를 한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날씨가 40도 36도에서 43도, 심할 때는 45도까지도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전국 비구니회 임원 스님, 집행부 스님들이 지금 연로하세요. 젊은 층 반, 연로하신 층 반, 또 제가 중간층입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진짜 병이 없다 하고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그 더위에 우리 비구니 스님들이 견딜 수 있는 그런.

전경윤 : 겁이 납니다. 저도, 

현중스님 : 네 그렇죠. 겁나죠. 그래서 안 되겠다. 또 심사숙고해서 가고자 하는 스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니까 40도는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래서 다시 나라를 정해서 몽골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몽골도 불교 국가이기도 하고, 지금은 이제 민주화가 되어 있지만 공산국가일 때 공산주의를 받아들여서 생활할 때 이 불교를 말살시키고 정말 아픈 역사가 있잖아요. 그리고 불교로서는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 몽골이거든요. 이렇게 민주주의화 되어서 또 불자들이 한 50%, 국민들이 한 50%는 종교가 불교니까 불교 나라거든요. 그래서 몽골을 이번에는 해외 교류로 그렇게 책정을 하고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고 있군요.

현중스님 : 지금 너무 급박하게 나라가 바뀌다 보니까 지금 뭐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경윤 : 5월에 이제 가신다는 말씀이시고.

현중스님 : 네. 5월 부처님 오신 날 지나고 나서 바로.

전경윤 : 작년에 이제 제가 라오스 같이 갔었는데 

현중스님 : 올해도 같이 가시죠.

전경윤 : 윗선에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보니까 탁발도 하고, 나눔 봉사하고 여러 가지, 또 보시도 많이 하셨는데 올해도 그런 프로그램입니까? 몽골에서도.현중스님 : 네. 작년에 라오스 갈 때 1000kg을 봉사 물품을 1000kg를 비행기에 실어 갔습니다. 50분이 가셨는데 다 자신의 짐은 기내만 들고 갈 수 있고 다 봉사물품으로. 그때 그러셨잖아요. 

전경윤 : 하나씩 들고 가라고 그래서. 

현중스님 : 고생하셨잖아요. 기차 탈 때. 

전경윤 : 모두 들라고 그러더라고요. 하나씩

현중스님 : 기차 탈 때도 이게 봉사 물품 다 들고 가셨죠.

전경윤 : 기차 안에서도 거기다 모아서. 고생 좀 했죠.

현중스님 : 고생 많이 하셨어요. 올해도 몽골도 같은 맥락입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라오스도 저희가 비구니 스님이니까 거기는 라오스도 비구니 사원이 있었어요.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그런데 올해도 이제 몽골에 비구니 사원부터 시작으로 해서, 서로 불교 교류도 하고 또 염불도 같이 교류하고, 문화도 교류하고, 또 봉사 물품 가서 왕창 내려드리고, 뭐 이렇게. 그리고 이제 거기 비구니 스님들 승복도 좀 해드리고 뭐 이런 맥락으로 시작을 할 거고요. 시작을 그렇게 해서 이제 아직 지금 찾고 있는데 동자승 학교나 또 일반 학교 거기는 또 일반 학교를 방문하려면 미리 문서가 오고 가야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지금 이제 기간이 조금 짧긴 한데 그런 것도 준비하려고 하고 있고 또 고아원을 이번에는 좀 방문을 해서 그 몽골 고아원에 뭐가 도움이 될까 그런 것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나라, 네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수행자로서 어느 나라든 내국이든 외국이든 봉사할 수 있는 이런, 그런 어떤 기본적인 요익중생을 위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거고 그런 애민심을 가지고 해외 봉사를 시작했고요. 또 날마다 수행하는 우리 스님들이 수행을 다시 돌아보는 그런 계기도 만들어보고 싶었고요.

또 함께 몽골 불교 예불과 문화를 교환하면서 공양의식도 같이 공양을 하면서 공양의식도 교류하는 그런 계획을 잡고 있고요. 우리 영산재에서 식당작법이라는 그런 의식이 있어요. 그 의식을 좀 해볼까 이런 생각도 약식으로라도, 그리고 그쪽 발우를 가지고 비구니 스님들하고 같이 탁발의식보다도 식당작법을 한번 해보고 싶은 그렇게 준비는 지금 하고 있는데 그게 잘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라오스 때 불교 문화 교류를 통해서 느낀 수행이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 국내외 활동 방향과 미래의 역할을 모색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이번 해외 봉사도 하지만 그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어떤 불교 교류도 구체적인 그런 불교 교류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라오스에서 탁발을 하고, 탁발을 그 새벽에 그 라오스 스님들하고 비구 스님들하고 같이 탁발을 했었는데요. 몽골 탁발은 또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그것도 저희도 같이 그 탁발에 대한 것을 같이 시연해 보는 그리고 같이 실질적으로 체험해 보는 그래서 그것을 우리 수행과 같이 연결해 보는 그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여러분께서는 지금 한국불교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 회장 현중스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현중스님께서 이끄는 태고종 비구니회가 불교환경연대와 지난해 업무협약을 맺고 녹색 사찰 운동을 공동으로 전개했는데 환경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심 많으시죠? 스님께서.

현중스님 : 그렇죠. 제가 환경연대 공동 대표를 같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환경연대의 어떤 큰 행사나 모임에는 저희 단체의 일이 많아서 잘 동참은 못하지만, 저희 사찰에서도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정말 비닐 한 장이라도 손을 벌벌 떨면서 안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 이렇게 버릴 때는 이것 다시 재활용할 수 없을까를 손에 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버리는 그래서 저도 환경운동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가 청정사를 환경운동 사찰로 지정을 해서 지정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저희 전국 비구니회 해도 그렇게 환경운동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이제 드디어 업무 협약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녹색 사찰 운동을 공동으로 같이 전개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하고 있냐면 지금 이 기후위기가 굉장히 정말 심각하잖아요. 그러면은 올해 같은 경우는 너무 온도가 전체 지구의 온도가 높아져 있기 때문에 화산도 많이 폭발할 것 같고, 또 화재도 많이 날 것 같다는 이런 생각을 제가 가지고 있어요. 왜냐면 온도가 자꾸 높아지니까 저 대구에서 대구 쪽 저 아래쪽에서 사과가 더운 지역 쪽에서많이 이렇게 나던 사과나 뭐 이런 그런 과일 같은 경우도 이제는 뭐 진짜 이 위쪽 지방에서도 이제 뭐 저기 북한에서도 사과를 재배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환경이 심각하다는 것은 우리가 정말 느끼지 못하고 피부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 심각성을 잊고 있다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우리 수행자니까 정말 이 심각성이 정말 대단하다. 이런 것을 느끼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만 알고 우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알려야 되겠다. 그래서 주변에 알리는 방법은 어떡하겠어요. 운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씩 저희 임원진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4인 1조가 돼서 환경운동을 하자라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것을 알리고, 좀 더 쓰레기도 적게 버리고, 음식물 뭐 또 어떤 생활 환경을 저해하는 그런 쓰레기를 좀 적게 버리고 또 먹는 것도 또 쓰는 것도 우리가 이제는 다시 새 것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서로서로 교류해서 그런 환경 운동을 그런 곳에서부터 시작하자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저희 비구니 스님들이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이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전국 비구니회가 군부대와 자매결연도 맺었잖아요. 맺어서 군부대 등 군 포교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데 올해도 그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시죠?
 
현중스님 : 태고종 전국비구니회는 작년 5월 15일인가. 제 기억이 맞을 겁니다. 철원 육군 제7보병여단을 방문해서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저희는 처음 있는 일인데요. 청년 불자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군부대예요. 군장병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들에게 꼭 불교를 믿어라라고 하기보다는 불교를 알려주는 게 시급하기 때문에, 청년을 가장 집단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군 장병들을 만나는 일이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대중불교의 확산의 출발점을 나는 군 장병들로 시작하겠다. 이런 생각을 저는 결심을 했고, 불자들이 자꾸 종교인이 줄어드는 불교만이 아니라 비종교 시대를 지금 저희가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굉장히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종교를 떠나서 산다는 것은 사실 그냥 마이웨이, 그것은 내 마음대로 내가 살겠다. 이런 건데요. 굉장히 위험한 거거든요. 그러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는 종교가 뭐냐 그것을 가르치면 돼요. 그러면 그게 불교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려면 군부대를 위문해서 장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공략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 지금은 군 장병들이 굉장히 제가 이제 가서 공양관에 가서 밥도 해줘보고 뭐 다 해봤는데 음식도 굉장합니다. 굉장히 좋고 육식은 기본으로 나오고 그 시설이 최첨단이더라고요. 

전경윤 : 많이 좋아졌네요. 

현중스님 : 네. 정말. 뭐 모르겠어요. 그때 저희가 방문한 여단은 여단장님이 굉장히 의식이 뛰어난 분이어서 뛰어나신 분이어서 시설을 다시 해가지고 저희가 가서 또 봤던 거라서 또 어떨는지는, 또 더 열악한 곳이 있겠죠. 그렇지만 굉장히 음식이나 이런 게 굉장히 좋았어요. 그러니까 웬만큼 해줘서는 위문품도 옛날에 초코파이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완전히 화장품도 고급 화장품을 군 장병들도 이제 월급을 받다 보니까 월급을 받다 보니까 화장품 마음대로 사서 쓰고 마음대로 고기 사서, 고기는 아니구나 뭐 PX에서 사 먹는 거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고 뭐 이런 환경이 주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위문품을 가져갈 때는 PX에서 팔지 않는 그런 위문품을 가져가야 환영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마스크팩은 기본이고요. 또 이렇게 뭐야 선크림도 좀 고급으로 가져가야 되고, 뭐 이런 그런 애로사항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어떤 위문품으로 공략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기 때문에 부대를 위문해서 장병들에게 그런 것으로 위로하고 또 어찌 됐든 군대 가고 싶은, 군대 가고 싶으셨어요?

전경윤 : 아니죠. 

현중스님 : 그렇죠. 

전경윤 : 결국 안 갔습니다. 

현중스님 : 그래요. 그건 진짜 상위 3% 내에 속하는 분이네요.

전경윤 : 괴로웠습니다. 그때.

현중스님 : 그렇구나. 그런데 군대를 가고 싶은 병사는 사실 없을 거예요. 우리 애국지사들 빼고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신경 쓰고, 관심 가지고, 또 표현을 하고 우리가 진짜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전 국민이. 더군다나 이렇게 수행하는 스님들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니까 고마운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이런 위문을 하고자 이렇게 왔다. 이런 것을 마음을 다해서 지속적으로 해줘야 되겠길래 제가 자매결연을 맺었거든요.

그리고 또 우리 비구니회도 그렇습니다. 어느 한 곳에 몇 곳이든 자매결연을 맺어 놓으면 그러면은 늘 지속적으로 거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이잖아요. 올해도 변함없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뭔가를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그 부대에는 뭐 이렇게 부대에다가도 하지만 군부대 사찰이 있어요. 거기 군 법사님을 통해서 일요일 날 매번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을 통해서 그 부대에다 지원을 하고 그 외의 것은 그 사찰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지금 하고 있어요.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서울 국제불교박람회가 지난해는 10월에 있어서 그때도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의 부스가 이렇게 마련됐잖아요. 올해는 4월에 한다고 합니다. 

현중스님 : 4월 4일부터입니다.

전경윤 : 얼마 안 남았네요. 진짜. 네 이번에는 어떻게 참여할 계획이신가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현중스님 : 얼마 안 남았죠. 뭐 이제 데드라인은 다 정해놓고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라는 것은 했는데, 올해는 여태는 저희가 거기도 흥미진진이라는 그런 코너에서 연꽃 만들고 또 법화경 사경하고 염주 꿰기 하고 뭐 이런 것으로 지난 3년을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첫 해에는 제가 경험이 없다 보니까 부스 안에다가 저희 전국비구니회를 부스 2개를 해서 알리는 것으로 사진으로 다 진열을 해서 그렇게 알리는 것으로 했는데 올해는 초입에 들어가서 전국 비구니회를 한 부스를 그냥 홍보만 하는 걸로 그렇게 해서 하고, 흥미진진에 다시 세 부스를 받아서 또 그렇게 해서, 올해 저희가 4회째예요. 4회째. 4회째니까 그렇게 해서 박람회 때 적극 참여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고 올해는 또 저희만의 어떤 상품을 가지고 또 이렇게 기금을 좀 모으는 그런 것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그렇군요. 태고종이 지난해 6월에 비구니부를 신설했어요. 그래서 이제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에 올해에도 좀 이렇게 큰 변화가 있는 겁니까? 그러면 위상이 계속 올라가는 건가요?

현중스님 : 느껴지지 않으세요?

전경윤 : 글쎄요. 

현중스님 : 방송에서 느껴지지 않으시면 안 되는데.

전경윤 : 느껴진 건 꽤 좀 됐습니다.

현중스님 : 그래요. 그냥 위상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단체가 지속적으로 노력을 쌓아가야만 가능한 일이었잖아요. 또 우리 단체가 또 우리 비구니 스님들이 전국 비구니 스님들이 생각 외로 굉장히 관심들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특히 제가 하는 활동을 뒤에서 도와가고 계셨고,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지금은 종단에서도 비구니회 하면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됐습니다.

그런데 올해도 올해는 이제 국고보조금으로 위령제가 10월 12일에 위령제를 시작으로, 그전에 이제 뭐 부처님 오신 날 행사도 있고 또 저희 종단에서 또 종종스님 추대식이 있습니다. 3월 30일 날 있습니다. 그때도 저희 비구니회에서 굉장하게 또 활동을 할 수 있는 ,추대하시는데 모실 수 있는 그런 역할에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이 또 있고요.전경윤 :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네요. 그래서 오늘 한국불교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 회장 현종 스님과의 대담 뭐 할 얘기가 많은데 다음 기회에 또 한번. 

현중스님 : 꼭 좀. 한 2시간 정도는 해야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것 같아요.

전경윤 : 그것도 한번 윗선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대단히 고맙습니다.

현중스님 : 네 감사합니다. 

전경윤 : 네. BBS 뉴스와 사람들 여러분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한국불교 태고종 전국 비구니회 회장 현중스님과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전경윤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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